부석사로 오르는 길은 풍경화처럼 아름다웠다. 좁은 편도 1차로 양옆으로는 라일락이 2열종대로. 늘어서 방문객을 맞았다. 부석사는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95호로 서산시 부석면 취평리 160번지에 위치한 조그마한 사찰이다. 규모면에선 작지만 풍광이 아름다워 한번 방문한 사람은 해마다 찾을 정도로 매력이 많다. 부석사의 창건 설화를 보면 다음과 같다.
신라 제28대 임금 진덕여왕 4년 서기 650년에 복흥사라는 절에 의상 대사라는 승려가 있었다. 의상 대사는 큰 뜻을 품고 당나라에 들어가 지장사에서 지엄법사라는 노스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열심히 공부를 하였다. 뒤늦은 나이에 시작한 공부지만 얼마나 열심히 공부를 하였는지 의상 대사는 스승으로 부터 칭찬을 많이 들었다
이때 지장사 아랫마을에는 선묘낭자라는 예쁜 차녀가 살고 있었는데 이 낭자는 신라에서 온 의상 대사를 남몰래 흠모하게 되었다. 그러나 의상 대사는 이러한 사실도 모르고 열심히 공부하여 마침내 문무왕 1년에 신라로 돌아가게 되었다.
의상대사가 고국으로 돌아간다는 말을 들은 낭자는 떠나기 전날, 의상 대사를 찾아와 사랑을 고백하였고 이에 의상 대사는 불도를 닦는 사람으로서 불가함을 설명하자 물러갔다.
다음날 의상대사가 배를 타려고하자 그 낭자가 어느새 승복차림에 결혼은 못하더라도 스님 곁에서 불도를 배우겠다고 말하자 의상 대사는 다시 점잖게 꾸짖으며 집으로 돌아갈 것을 권하였다. 하지만 아무리 애원해도 의상의 마음이 움직여지지 않을 것을 안 낭자는 죽을 것을 결심하고 깊은 바다로 뛰어들고 말았다.
의상 대사는 자기 때문에 죽은 낭자를 생각하며 몹시 괴로워하고 있는 데 죽은 낭자가 용이 되어 의상대사가 탄 배를 따라 신라까지 오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는 의상대사가 가는 곳마다 숨어 따라 다니고 있었다.
어느 날 의상 대사는 자기 때문에 죽은 여인을 생각하고 그 여자의 혼을 위로하기 위해 절을 세우기로 작정하고 절터를 찾았다.
"당나라의 그 낭자를 위해 아담한 절을 창건하여 그의 넋을 위로 하리라."
의상 대사는 이곳저곳 절터를 물색하다가 서산시 부석면 도비산 중턱에 절을 짓기로 하였다.
"산수가 수려하고 앞에 바다가 탁 트였으니 그 낭자가 좋아할 것 같군."
의상 대사는 좋은 곳에 절을 짓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하였으며 그때가 문무왕 10년이 되는 해였다.
그러나 그곳 동네 사람들은 도비산에다 절을 짓는 것을 반대 하였다. 동네 사람들이 반대하는 데도 의상 대사는 절 짓는 일을 계속하였으며 사람들은 거의 다 지어가는 절을 쇠스랑을 들고 쫓아와서 부수어 버리려고 하였다. 동네 사람들이 흥분하여 절에 불을 지르려고 할 때 갑자기 큰 바위가 공중에서 둥둥 떠오더니 큰소리로 말하는 것이었다.
"모두 들어라. 너희들이 절 짓는 것을 계속 방해하면 이 바위 돌로 너희들 머리를 부수겠다. 지금 당장 물러가라. 머뭇거리고 있는 사람들은 내가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라며 산이 흔들리도록 큰 소리로 꾸짖는 것이었다.
동네 사람들은 혼비백산 쫓겨 가면서도 이것이 어찌된 일인지 알도리가 없었다. 의상 대사는 생각하기를 저 바위는 당나라 낭자가 용으로 변하여 그 용이 다시 바위로 변하여 나를 도와주는 거야!"
의상 대사는 죽은 낭자가 가엾다고 생각되었다. 바위는 훌쩍 날아가 절에서 바로 보이는 바다에 떠 있으면서 절 짓는 공사를 지켜보고 있었다. 사람들은 이 돌을 물 위에 떠 있다 해서 ‘부석’이라고 이름을 지었으며 절 이름도 ‘부석사(浮石寺)’라고 부르게 되었다.
부석사에서 눈여겨 볼만한 곳이 바로 만공토굴이다. 만공토굴은 우리 한국 현대 불교에서 대선사로 추앙받고 있는 만공 스님께서 면벽 수행을 하던 토굴이다. 산신각에서 약 30미터 정도를 오르다보면 산 중턱에 겨우 한 사람이 들어갈 정도의 아주 작은 토굴이 보인다. 토굴 앞에는 빗물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차양을 쳐놓아 안이 잘 들여다보이지 않는다. 차양을 걷고 안을 살펴보면 한 사람이 자리 잡고 수도하기에 딱 좋은 공간이 보인다. 신기한 것은 겨울이나 여름이나 사시사철 온도가 일정하다고 한다. 만공 스님께서 이곳에서 수년간 면벽 수도를 하다가 드디어 대오각성 성불하셨다고 한다.
만공은 생전에 수많은 일화를 남겼다. 하루는 만공이 고명하다는 말을 듣고 궁궐에서 상궁과 나인들이 만공의 법문을 들으려고 말사를 찾았다. 그러자 만공이 다음과 같은 노래를 들려주었다고 한다.
“앞산에 사는 딱따구리는 없는 구멍도 뚫는데, 우리 집 그 양반은 있는 구멍도 못 뚫네.”라는 내용이었다. 나중에 궁인들이 돌아가고 나자 상좌들은 그 뜻을 몰라 만공에게 물으니 내가 부른 그 노래가 바로 법문이라 답하였다. 한참을 생각하던 상좌들은 나중에 은유적으로 풍자한 그 뜻을 비로소 이해하였다고 한다.
또 하루는 만공이 다른 승려들과 함께 탁발을 아주 먼 곳까지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이었다. 걸어서 하루는 족히 걸리는 높은 산을 오를 때였다. 시주미를 메고 묵묵히 걸어오던 스님들이 만공에게 쉬었다가자고 졸랐다. 해는 이미 서산에 걸렸고 산을 넘으려면 아직은 한참이 남았는데 계속 젊은 스님들이 쉬었다 가자고 보챘다. 그때 만공 스님은 화전에서 일하고 있는 여자를 보았다. 순간 만공은 갑자기 밭갈이를 하던 여자를 더듬고 키스를 하였다. 놀란 여자가 비명을 질렀고 그녀의 남편이 낫을 들고 분노하여 쫓아왔다. 놀란 스님들은 그길로 줄행랑을 쳤고 단숨에 산 정상에 이르렀다. 한숨을 돌리고 만공이 스님들더러 다리가 아프냐고 하니 “아니요.”라고 답하였고, 더우냐고 하니까 “아니요.”라고 답했다고 한다.
극락전 왼쪽으로 난 돌계단을 오르다보면 아담한 전각이 하나 보인다. 바로 부석사 산신각이다. 왼쪽으로는 정자와 부속건물이 위치해 있다. 정자에는 낡은 의자들이 놓여있어 심신을 쉬어갈 수 있도록 했다. 문을 열어보면 허연 수염을 길게 늘어뜨린 산신이 늙은 호랑이 등에 올라탄 채 방문객을 바라본다. 산신과 산신을 태운 호랑이도 모두 늙어서 무서운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중앙엔 산신님이 자리하고 우측엔 선묘낭자 좌측엔 용왕님이 모셔져 있다. 산신각 뒤에 있는 거북이 형상의 거북바위에 소원을 빌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전설도 있다.
부석사의 마애 아미타여래석불이다. 이곳은 유독 시야가 좋다 생각했는데 다 이유가 있었다. 창건 설화에 나오는 검은여가 한눈에 보이는 곳에 모셔진 석불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운산의 마애삼존불상과 태안의 마애불과 더불어 우리나라 국사책에도 실려 있는 유명 마애불이다. 이곳 서산지역에 마애불이 많은 이유는 백제시대 때 이곳이 당나라와 교역하던 길목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항상 위험에 노출된 뱃사람들이 무사 안녕을 빌기 위해 곳곳에 마애불을 세우고 기도를 드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필자 또한 우리 가족의 안녕과 딸아이의 취업을 위해 부처님께 삼배하고 약간의 정성을 시주함에 넣어드렸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많은 부석사. 부석사는 큰 법당인 극락전을 중심으로 이어져 있는 목룡장과 심검당이 마치 누워 있는 소의 모양을 닮았다고 한다. 그래서 심검당 아래의 약수를 우유 약수라고 부르고, 법당 옆의 큰 바위는 소뿔의 형상이라고 부른다. 법당 건너편엔 소가 마실 물이 흐르는 구유가 있는데, 이 구유에 물이 계속 넘치는 한 부석사에서는 식량 걱정이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 부석사의 약수가 끊어져 이상하게 여긴 스님들과 마을 사람들이 부석(검은여)에 가보니 누군가 몰래 무덤을 썼기에 주인을 찾아 무덤을 이장시키니 다시 약수가 솟았다고 한다. 그래서 부석사와 검은여 간에 신령스러운 기운이 통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져온다. 검은여는 부석사에서 차로 10분정도 거리에 떨어진 바닷가에 있는 바위 무더기라고 한다.
요즘 템플스테이가 유행이다. 도시에서 번잡한 생활을 하다 잠시 일상을 떠나 산사에서 고요히 명상에 빠지며 지친 심신을 치료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주로 1박2일로 진행되는데 첫날 일정은 다음과 같다. 15시 입재(방 배정 및 수련복 지급), 16시 사찰안내 및 예절습의, 17:30분 저녁공양, 18:30분 저녁예불, 19시 자유 시간, 21시 세면 및 취침. 둘째 날은 04:30분 새벽예불, 06:30분 아침공양, 09시 108염주 만들기, 10시 자유 시간, 11:30분 소감문 작성 및 방사 정리, 12시 점심공양 후 회향. 참가비용은 성인기준으로 1박2일 5만원, 2박3일은 9만원이다.
부석사(浮石寺)에는 유독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많다. 느티나무는 계획적으로 식수한 듯 규칙적으로 잘 배치되어 있다. 수령도 수백 년에서 수십 년으로 다양하다. 이처럼 느티나무가 많아 '느티나무 절'이라는 인상이 우선 든다. 영주 부석사와 닮은 듯하면서도 색다른 맛이 느껴진다.
절에서 바라보는 전망도 시원하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멀리 간월도까지 훤히 보인다. 의상 대사와 선묘낭자의 전설이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바다에 몸을 던진 선묘낭자의 넋을 위로하기에는 당나라를 마주하는 이곳이 적지였을 것이다. 부석사 바로 뒤가 도비산(島飛山)이다. 야트막해서 정상까지 1시간 이내로 다녀올 수 있다. 가는 길에 느티나무 고목이 있어서 마치 밀림 속에 들어온 듯 자연을 만끽할 수 있다.
정말 별 기대 없이 찾았다가 혼마저 빼앗겨버리는 부석사이다. 그러고 보니 서산은 생각보다 갈 곳, 볼 곳, 좋은 곳이 참 많은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