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요즘 침잠하는 분은 ‘망우당 곽재우’입니다. 임진란 최초로 의병을 봉기한 그의 업적과 사상에 대해서는 많은 논의가 있지만, 남명 조식의 제자로 유학자인 그가 거병하고 전장에서 겪었을 고뇌에 대한 논의가 부족하다는 느꼈습니다. 그래서 망우당에 대한 연구와 업적, 행장을 읽고 살펴보는 일을 봄이 끝날 즈음에 시작하였습니다. 홀린 듯 일어나 그의 출생지와 전쟁터를 답사하고 그의 문집을 찾아 읽었습니다.
그가 말년에 살았던 낙동강의 강사에서 바라보는 풍경을 아름다웠습니다. 망우당 선생과 함께 살았을 느티나무가 시원한 그늘을 드리우고 있어서 무더위를 식힐 수 있었고요. 그러면서 제가 쓰는 그 분의 고뇌가 과연 망우당의 생각일까 고민을 하였습니다. 이런 제 마음에 답을 하듯 책꽂이에 『칼의 노래』가 보였습니다.
충무공의 고뇌를 따라간 소설 『칼의 노래』를 다시 읽었습니다. 책을 펼치면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꽃피는 숲에 저녁 노을이 비치어, 구름처럼 부풀어 오른 섬들은 바다에 결박된 사슬을 풀고 어두워지는 수평선 너머로 흘러가는 듯싶었다. 로 시작하는 첫 문장과 마주 합니다.
참으로 지랄(?)맞게 멋지고 아름답습니다.^^
김훈에 의해 채색된 충무공의 고뇌 속으로 들어가 영혼이 탈탈 털립니다. ^^ 작가 김훈의 독특한 문체에 대해 장석주는 매우 건조하다고 평하고 있으며 의도적으로 형용사와 부사를 배제하여 때때로 금욕주의자 같다는 말을 통하여 이야기의 내밀한 규범을 가로질러간다고 하였습니다. 또 ‘사실과 사실 사이의 인과관계를 밝힐 때 더욱 삼엄하게 건조해지며 말들은 건조한 사막에 뒹구는 뼈와 같이 살점 하나 붙이지 않은 채 가파른 뜻으로 선다’라고 하였습니다.
내 시체를 이 쓰레기의 바다에 던지라고 말하고 싶었다. 졸음이 입을 막아 입은 열리지 않았다. 나는 내 자연사에 안도했다. 바람결에 화약 연기 냄새가 끼쳐왔다. 이길 수 없는 졸음 속에서, 어린 면의 젖냄새와 내 젊은날 함경도 백두산 밑의 새벽 한개 안개 냄새와 죽은 여진의 몸 냄새가 떠올랐다. 멀리서 임금의 해소기침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충무공 그가 견뎠을 임진란의 어둠과 참담함을 생각합니다. 김훈은 한 인간 존재로서의 이순신을 그리면서 사회 속에서 한 개인이 가질 수 있는 삶의 태도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의 고뇌가 결국 김훈 작가에 의해 빙의되어 표현된 것이겠지요.^^
여름 더위는 폭약처럼 사납습니다. 금세라도 터질 듯이 노려보고 있습니다. 그래도 칠월을 지나 팔월이 되었습니다. 세월 앞에 장사 없듯이 곧 가을이 올 것입니다. 어제 학교도서관에 새 책이 들어왔습니다. 잔치처럼 펼쳐진 새 책을 정리하며 개학하여 반짝이는 눈으로 책을 빌릴 아이들을 기다리며 행복하였습니다. 새 책 같은 가을을 기다리며 이 무겁고 질긴 더위를 견디는 힘을 냅시다. 호호^^
참고문헌 : 장석주, 『나는 문학이다』, 나무이야기, 2009,
이 책에서 장석주는 문체가 강이 아니라 강을 건너는 나룻배라고 말하고 있다. 김훈의 문체는 소설에서 나룻배가 아니라 강의 노릇을 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김훈의 문체는 끝없이 진화하고 있으며, 앞으로 진화할 것이다고 하여 김훈의 역사소설은 그의 쉼표이며 빠르게 건너갈 것이라 하였다. 김훈 소설의 본질은 독백에서 나왔으며 그의 독백이 다향(多響)의 울림을 가질 것으로 기대하였다.
『칼의 노래』, 김훈지음, 문학동네, 2012(개정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