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제 인생에서 훌륭한 선생님이었어요. 절망적 상황에서도 웃음을 지을 수 있는 천진한 낙천성은 성숙한 인간의 길과 문학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최근 '내가 만난 아이들'의 한국어판 출간을 기념해 내한 강연을 가진 일본의 대표적 작가이자 교육자인 하이타니 겐지로(灰谷健次郞ㆍ70)는 자신의 체험에서 우러나온 교육관과 문학세계를 이렇게 피력했다.
"집안형편이 어려워 일거리를 찾아 헤매고, 야간고교를 다녔습니다. 아버지는 노름에 빠져 있었습니다." 가난하고 어두웠던 어린 시절 이야기부터 진솔하게 털어놓은 그는 17년 간 교사생활 중, 그에게 첫 깨달음을 준 '아이'는 초등학교에 부임해 만난 2년 생 사토루라고 말했다.
'나는 유치원 때 트럭에 치였다/…전기톱으로 다리를 잘랐다/나는 병원에서 맨날 울기만 했다/퇴원하고는 텔레비전만 봤다/그리고 한참 있다 뼈가 자랐다/나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뼈야, 너는 나한테 다리가 있는 줄 알고 자라주었구나'
사토루의 이 시(詩)와 의족을 차고도, 운동회 때 당당하게 다른 아이들과 함께 운동장을 달리는 모습에서 그는 '어린이의 영혼은 자신의 생명을 지킬 수 있을 만큼의 낙천성을 가지고 있다'는 말을 실감했다. 가장 절망적인 순간에서조차 생명에 대한 무한한 낙관으로 삶을 꾸며 가는 '아이'를 통해서 그도 딛고 일어설 힘을 찾았다.
가난하고 불행했던 어린 하이타니를 비롯, 그가 만났던 아이들의 세계를 들여다보게 하는 이 책에는 사토루 만큼이나 절망에 부딪친 아이들이 등장한다. 부모에게서 버림받은 소년, 아오야마 다카시. "집안에 짐이 하나도 없다/나만 남겨두고 이사를 가버렸다/나만 남겨두고" 그러나 소년은 자신의 점심값으로 받은 200엔으로 빵을 사지 않고 어린 동생에게 줄 장난감을 산다.
배가 고프지만, 나중에 아기가 돌아오면 주기 위해서. 그런 다카시를 보며 하이타니는 "절망 속에서도 동생을 생각하는 상냥함을 잃지 않는 이 아름다운 인간 앞에서 나는 할 말을 잃었다"고 쓰고 있다.
장애아와 한 반이 된 아이들이 당번을 정해 장애아를 돌보는 이야기 역시 하이타니가 목격한 '희망'의 이야기다. 힘들어 울면서도 친구를 버리는 아이는 한 명도 없었다는 사실에서, 그는 진정한 상냥함을 배웠다고 말한다. '진정으로 좋은 사람은 자기 안에 다른 사람을 살게 하는 사람'이라는 그의 다른 작품 '태양의 아이'에 나오는 말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나는 아이들로부터 생명의 의미를 배웠습니다. 하나의 생명을 성립시키기 위해 다른 무수한 생명이 그 생명을 떠받치고 있다는 사상, 내 생명 또한 다른 생명을 떠받치고 있다는 사상이 인간의 성실함을 낳고 상냥함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하나의 '생명' 속에는 수많은 '죽음'이 살아 있으며, 온갖 고통과 번민이 깃들어 있습니다. 그것이 흙 속의 양분처럼 새로운 생명을 길러내고 미래를 만들어 나가는 것입니다."
'어린이는 어른의 스승'이라는 말만큼 색 바랜 경구가 있을까마는 "내 반평생은 회한의 세월이었습니다. 내게 용기라고 할 만한 게 있다면, 나 자신을 응시할 수 있다는 것과 내 고통을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이라고 고백하며 평생 '아이들한데 배우는 삶'을 작품 속에 담아 온 노 교육자,
하이타니의 마지막 한 마디는 바래어진 그 경구에 색을 입히기에 충분하다.
"무엇인가 가르치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교사의 생명은 끝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함께 숨쉬고 함께 배우려는 자세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