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육신문 정은수 기자] 헌법재판소가 자사고 지원자들의 일반고 이중지원을 금지한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조항은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그러나 자사고와 일반고를 함께 후기전형에 선발하도록 한 조항에 대해서는 합헌 결정을 했다.
헌재는 11일 홍성대 산상학원 이사장, 최명재 민족사관학원 이사장과 자사고 지망 학생·학부모 등 9명이 제기한 헌법소원에 대해 이같은 결정을 내렸다.
재작년 12월 정부는 자사고·외고 폐지 대선 공약에 따라 자사고와 일반고의 입시를 일원화하고 이중지원을 금지하도록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개정했다. 시행령 80조에는 선발 시기 일원화를, 81조에는 이중지원 금지를 명시했다.
청구인들은 이에 지난해 2월 해당 조항이 학생·학부모의 학교 선택권, 평등권, 사립학교 운영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헌법소원과 법령 효력정치가처분신청을 냈다. 헌재는 지난해 6월 가처분신청을 인용해 자사고 지원자의 일반고 이중지원을 금지하는 조항의 위헌 여부가 결정될 때까지 효력을 정지한 바 있다.
헌재는 이날 자사고와 일반고의 이중지원을 금지한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81조에 대해 재판관 전원 일치 의견으로 위헌을 결정했다.
다만, 동시선발을 규정한 80조에 대해서는 4(합헌) 대 5(위헌) 의견으로 합헌 결정했다. 위헌 의견이 많았지만, 위헌 결정은 헌법재판관 6명 이상이 찬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합헌 의견을 낸 유남석, 이석태, 이은애, 김기영 재판관은 “국가가 후기학교로 자사고를 정한 건 재량권한 범위 내”라고 판단했다.
반면, 위헌을 낸 서기석, 조용호, 이선애, 이종석, 이영진 재판관은 “고교서열화 완화를 위해서는 궁극적으로 일반고의 경쟁력을 강화시켜야 할 것인데, 동시선발 조항은 손쉬운 자사고에 대한 규제를 택해 전체 고교를 하향평준화시킬 수 있다”며 “동시선발 조항은 침해의 최소성 원칙에 위배되고, 달성하려는 공익보다 청구인 학교법인이 침해받는 사익이 훨씬 커 법익의 균형성도 인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헌재 결정에 따라 앞으로 자사고는 현행과 같이 일반고와 함께 후기전형을 유지하고, 지원하는 학생도 양쪽에 이중지원을 계속할 수 있게 됐다.
교육부는 헌재 결정에 대해 “헌재의 결정을 존중해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에 대한 개정을 신속히 추진해나갈 계획이며 시‧도교육청과 함께 고입 동시 실시가 안착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교총도 입장을 내고 “자사고의 설립 취지와 입지가 약화되고, 학생·학부모의 학교선택권이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어 우려된다”며 “전기 선발이라는 정부의 정책을 믿고 자사고로 전환해 막대한 재정을 투입하며 인재 양성에 헌신해 온 학교의 신뢰를 저버린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재지정 평가가 더욱 중요해지면서 갈등과 충돌이 더 격화될 우려가 높다”며 “공정하고 합리적인 평가가 담보돼야 한다”고 밝혔다.
교총은 또 “이번 결정으로 정권에 따라 학교제도가 수시로 바뀔 수 있다는 면죄부를 준 게 된다면 앞으로 교육의 안정성과 예측가능성은 더욱 약화되고, 교육법정주의는 훼손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특히 “이번 헌재 결정을 빌미로 자사고를 일방적, 일률적으로 폐지해서는 안 된다”며 “오히려 지원을 통해 육성해 나가야 한다”고 촉구했다.
공정사회를 위한 국민모임도 이날 헌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교육정책의 예측가능성과 안정성은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자사고 폐지를 위한 급진적인 정책추진에 제동을 건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교육 불평등과 고교서열화를 조장하고 있는 것은 자사고가 아니라 학생부종합전형”이라며 “자사고를 폐지하더라도 과학고나 영재학교로의 쏠림현상이 나타나고 강남8학군이 부활할 것”이라고 했다.
사교육계에서도 이날 결정에 대해 지역 내 명문 일발고로 쏠림이 가속화하고 명문 일반고가 있는 교육 특구로 이동 현상이 높아질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놨다.
반면 재지정 평가로 가장 큰 갈등을 겪고 있는 서울시교육청은 “자사고 지원 학생이 떨어져도 일반고를 중복 지원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둠으로써 여전히 자사고 등의 학교가 학생 선점권을 갖게 한 부분은 일반고와의 형평성을 고려할 때 아쉬움이 남는다”고 평가했다.
전교조도 “자사고 이중지원 보장은 헌법상 보장되는 권리가 아니라 특혜”라며 “정부는 자사고 등의 존립 근거인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조항을 삭제해야 한다”고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