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어제다. 시월의 마지막 날이다. 올해가 바로 두 달 남았다는 말이다. ‘시월’ 하면 생각나는 노래가 이 용의 ‘잊혀진 계절’과 김동규의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다. 아마도 역사로 보면 ‘잊혀진 계절’이 더 오래 되었다. 리포터는 주경야독을 하던 80년대 야간대학 시절, 국문과 학생들과 대학 골목길을 지나며 이 노래를 불렀었다.
시월의 마지막 날 대낮, 우리 아파트에서 내려다보이는 서수원의 힐링 공간인 일월공원을 둘러보았다. 왜? ‘시월의 마지막 밤’이 있으면 ‘시월의 마지막 낮’도 있는 것이다. ‘시월의 마지막 밤’은 여러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있는데 ‘시월의 마지막 낮’은 입에 오르내리지 않는다. 나의 오기가 작동한 것. 역사는 밤에 이루어진다고 하지만 낮에도 역사는 진행이 된다.
카메라를 들고 일월공원 물놀이장으로 향하였다. 이곳에 오면 한 여름철 어린이들의 함성이 들리는 듯하다. 물놀이장 입구의 느티나무는 가을을 알리고 있다. 늘어선 느티나무의 황금빛 잎이 산책객을 반겨준다. 또 마로니에의 길고 커다란 잎도 황금빛을 자랑하고 있다. 여기서 장관 하나를 발견했다. 바로 우람한 왕참나무. 위용도 대단하거니와 갈색이 이렇게 여러 색으로 나타날 줄 미처 몰랐다.
이제 호수 쪽으로 발걸음을 향한다. 일월 화장실 인근 작은 나무에 꽃이 피었다. ‘헉, 이 가을에 꽃이 피다니? 명자나무다. 이 꽃 그냥 지나치면 보이지 않는다. 가다가 발걸음을 멈추어야 한다. 꽃과 시선이 맞아야 한다. 스마트 폰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셔터를 누르게 된다. 기록 사진이다.
빠알간 산수유 열매는 투명하기까지 한다. 노오란 꽃은 봄을 알려주더니만 열매는 가을을 알려준다. 호수를 지나가는 산책객을 원경으로 하고 산수유 열매를 근경으로 하니 작품 사진 하나가 나온다. 아무 생각 없이 찍으면 평범한 사진이 되고 아이디어를 넣고 구도를 생각하면 의미 있는 사진이 된다.
일월공원 산책로는 입구에서부터 수양버들길, 왕벚나무길, 메타세콰이어길, 왕벚나무길, 메타세콰이어길로 이어진다. 호수 둑은 중국단풍길이다. 호수를 바라보면서 걸어간다. 흰뺨검둥오리와 물닭의 유영을 보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뿔논병아리가 잠수하여 작은 물고기를 물고 나오는 것을 보면 탄성이 나온다.
안타까운 것은 지난번 태풍으로 논에 있는 벼가 쓰러진 것. 부지런한 농부라면 한 톨이라도 건지려고 벼 세우기를 했을 터인데. 몇 몇 논은 물에 잠긴 벼에서 싹이 돋아난다. 아마도 수확을 포기한 듯하다. 벼가 쓰려져 있는 논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농부가 밭을 갈아엎는 것도 마음이 아프지만 추수하지 못하는 논을 보는 것도 그렇다.
일월공원엔 수원청개구리 서식지가 있다. 이곳에 수원청개구리가 살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수원청개구리 복원을 위해 서식지를 마련해 놓은 것이다. 입구 오른쪽에는 하얀 억새가 눈길을 끈다. 수원화성 성곽 산책길도 억새가 장관이라는데 여기서도 억새가 볼만하다.
내가 맨 마지막으로 들리는 곳은 둑 아래 텃밭, 여기엔 농작물만 자라는 것이 아니다. 10개의 정원이 꾸며져 있어 산책객의 시선을 잡는다. 얼마 전까지 추억정원이 화려하더니 지금은 무지개 정원에 여러 가지 꽃이 피었다. 꽃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평온해진다. 어린 시절 추억에 잠기기도 한다.
학교 현장에 있을 때 학생들이 등하교 할 때 보라고 교문입구에 정서 순화를 위해 동시를 게시했었다. 바로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예쁘다. 너도 그렇다’라는 나태주 시인의 ‘풀꽃’이라는 시다. 일월공원을 산책하면서 애정 어린 시선으로 자연을 관찰하면 아름다움이 보인다. 야외공연장 인근에서도 봄에나 볼 수 있는 철쭉꽃을 보았다. 여기서는 가을에도 봄꽃을 볼 수 있다. 일월공원 가을 풍경에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