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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

강마을에서 책읽기- 상상력과 가스통 바슐라르

상상력의 코페르쿠스적 전환

방학이 시작되자 병원 몇 곳을 다녀왔습니다. 저만 이런 것이 아니라 같이 사는 사람도 치과에서 시술을 받아야 해서 보호자인 저는 서너 시간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래서 책 한 권을 가지고 갔습니다. 몽상의 달인 ‘가스통 바슐라르’ 입문서입니다. 마스크를 쓰고 대기실 구석에서 만나는 바슐라르의 글이 너무나 매력적이었습니다. 시간이 금세 지나갔습니다.^^

 

흔히 바슐라르의 업적을 ‘상상력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는 이성을 기반으로 한 서구 문명의 객관적 과학의 세계에서, 이미지와 상상력을 기반으로 한 주관적 상상의 세계가 우위에 있음을 주장한 사람입니다. 상상력이야말로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장 원초적 능력이자 소중한 능력이고, 이성의 발달조차도 사실은 상상력의 활동 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바슐라르는 생애는 무척 감동적이었습니다. 그는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대학에 진학할 수 없어 우체국에 근무하면서 독학으로 대학 학사 자격증을 취득합니다. 병약한 아내를 간호하며 군대 장교와 교사를 전전합니다. 하지만 딸을 출산한 지 7개월 만에 아내는 세상을 떠납니다. 얼마 후 아버지와 어머니가 연이어 돌아가십니다. 세상에 홀로 남겨진 바슐라르는 5살 난 딸 쉬잔을 데리고 학교로 출근하였다고 합니다. 이렇게 사람들이 엄두도 내지 못할 과중한 업무와 불행 속에서도 쉬지 않고 학문의 길을 계속하여 소르본 대학에서 독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합니다.

 

그가 상상력의 주된 무대로 생각하는 것은 몽상입니다. 우리가 어떤 문제에 대해서 집중을 하면서 논리적 해결을 찾는 사색과는 달리, 몽상은 뚜렷한 의지가 없이 자연스러운 상상력에 의해 이루어지는 정신 활동입니다. 이전까지는 인간의 가장 쓸데없는 정신 현상으로 여겨지던 것이지만 바슐라르는 이 몽상이야말로 인간 정서에 가장 중요한 활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몽상 속에서 꿈을 꾸고, 그 꿈속에서 상상력이 활동합니다. 몽상은 완전한 의식의 상태도, 완전한 무의식의 상태도 아니라는 점에서 인간의 독특한 정신 활동입니다. 밤에 꾸는 꿈을 꾸는 주체는 자신의 자아를 잃어버린 어둠인 데 비해서, 몽상을 꾸는 주체, 즉 몽상가는 몽상하는 자신의 중심에 있고, 생각하는 주체로 자신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바슐라르는 이전에 이미지와 상상력이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했던 것 비현실의 세계에 속해있는 가치들을 현실을 잣대로 평가하려 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바슐라르가 새로운 생명을 부여한 이미지와 상상력은 현대 사회를 이해하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해 주고 있습니다. 현대 사회에서 가장 많이 접하는 용어 중의 하나가 이미지라는 말에서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는 범람하는 이미지가 넘쳐납니다. 그런데 개인적 차원에서 이루어지던 이미지가 이제는 소수자에 의해 대량 생산되고 대량으로 소비되는 생명이 짧은 이미지입니다. 이렇게 시각 중심의 영상문화는 수동적 소비자들의 가치 판단을 마비시킵니다. 매일 반복적으로 저장된 이미지는 가치 판단의 시간을 주지 않아 제작자의 의도에 이끌리게 됩니다. 그 결과 현대 대중은 이미지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집니다.저 역시 현대의 이미지 범람 문제에 깊이 공감합니다. ^^

 

올해 바슐라르의 책을 집중적으로 읽어보자고 공부를 같이하는 친구와 약속을 하였습니다. 상상력과 몽상에 새로운 생명을 부여한 매력적인 과학철학자이자 문학비평가인 그를 알아가는 행복한 시간을 기다립니다.

 

『상상력과 가스통 바슐라르』, 홍명희 지음, 2005, 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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