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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2022 교단수기 은상] 나의 영원한 멘토, 소병룡 선생님

‘앞마을 냇터에 빨래하는 순이 뒷마을 목동들 피리 소리 그리운 고향 그리운 친구 정든 내 고향 집이 그리워지네~’

 

지금으로부터 52년 전 여름 1969년 6월, 딸 부잣집으로 소문난 우리 집 5자매가 엄마와 함께 전라북도 옥구군 교육청 가족합창대회에서 불렀던 노래 중 하나다. 당시 개정국민학교(현 개정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나는 지금도 언니들과 만나면 자연스럽게 화음을 맞추며 이 노래를 부르곤 한다. 그때 큰언니는 결혼하여 만삭의 몸을 이끌고 무대에 올랐고 둘째 언니는 고등학교 3학년 셋째 언니는 중학교 3학년 넷째 언니는 초등학교 6학년이었다. 우리 가족은 음악에 대한 애정이 커 평소에도 전축을 틀어놓고 노래를 즐겨 부르곤 했었다.
 

그즈음, 호랑이 선생님으로 불리던 소병룡 선생님께서 우리 가족의 노래 사랑을 알아봐 주시고 가족합창대회에 출전을 권하셨다. 유난히 큰 눈으로 우리를 보며 열정적으로 지휘하셨고 우리는 선생님의 작은 가르침 하나하나를 열심히 배우며 연습했다. 그때 선생님의 입 모양을 보며 똑같이 하려고 노력했던 난, 입이 살짝 삐뚤어지기까지 했는데 이를 보고 있던 친구들이 깔깔거리며 놀려 댔었다. 우리는 이 대회에서 금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고 지금은 흔하지만, 그 당시에는 아주 귀했던, 상품으로 받은 파란 플라스틱 쌀통은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무려 30여 년 동안 애지중지하셨던 물건이었다.
 

6학년 담임이 된 선생님께서는 방과 후 풍금을 치며 동요를 지도해 주신 후에 "배고프지~ 밥 먹자" 하시며 네모난 양은 도시락을 꺼내 젓가락으로 반을 가른 후 밥을 챙겨주셨다. 선생님 도시락 위에 얹혀 있었던 유난히 노란 빛깔의 계란프라이도 떠오른다. 생각해 보면 나에게 밥을 챙겨 주려고 일부러 도시락통에 밥을 꾹꾹 눌러 담아오셨던 것 같다.
 

그렇게 노래를 연습하던 중, 전주에서 열린 독창대회에 출전했다. 당시 너무 떨려 노래를 어떻게 불렀는지 모를 정도였다. 등수 안에 들지 못해 아쉬워하던 내게 "덕정아, 풍금으로 반주하다가 처음 피아노를 치니 잘 안되더라. 나도 엄청 떨었어"라고 너스레를 떨며 어린 나를 달래 주셨던 선생님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지금도 추석 즈음이면, 선생님과 함께 불렀던 잊지 못할 노래가 생각난다. 보름달 둥근 달 동산 위에 떠올라 어둡던 마을이 대낮처럼 환해요. 초가집 지붕에 새하얀 박꽃이 활짝들 피어서 달구경 가지요~’이 노래를 흥얼거리며 올해도 안녕하신지 궁금해하곤 한다.
 

선생님 밑에서 즐거운 음악과 함께 초등학교를 마친 후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 합창부 솔로를 도맡았던 나는 고등학교 2학년이 되어 서울로 전학했다. 잉크로 펜글씨를 쓰던 시절, 쭈욱 써왔던 일기장에 실수로 잉크 한 통을 모두 쏟아 일기장을 못 쓰게 된 일이 있었는데 이를 어떻게 아셨는지 예쁜 새 일기장을 선물로 보내 주셨던 기억이 있다. 훌쩍 커버린 옛 학생에게도 소중한 선물을 보내주신 자상하고 따뜻한 분이셨다.
 

유년 시절에 선생님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자란 나는 당연히 교사가 되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1984년 고등학교 과학 교사로 교직에 들어선 후 MRA 청소년단체를 창단하여 음악과 함께하는 Sing-Out 활동을 해오던 중 2000년 중학교로 발령을 받으면서부터 대학 시절 동아리 활동으로 즐겨 했던 요들송과 작은 악기 연주를 장애 학생들과 함께했으며 이는 내가 통합교육에 관심 갖게 된 계기이기도 했다.
 

‘졸졸졸졸 흐르는 요로레잇디오 레잇디오 레잇두리리 산골짜기 찾아서 요로레잇디오 레잇디오 레잇두리리~’처음에는 쑥스러워 소리를 내지 못하던 학생들이 조금씩 자기 소리를 내는 모습을 보며 더욱 신바람이 났다. 이 소식을 들으신 소병룡 선생님께서는 나에게 구족화가가 그린 그림엽서를 잔뜩 보내주셨다. 학생들에게 도움말을 주고 싶을 때마다 이 엽서를 활용하곤 했다. 그렇게 음악으로 한마음이 된 학생들과 경로당, 양로원에서 요들송 봉사활동을 할 때는 내가 교직에 있는 동안 가장 행복한 시간이기도 했다.
 

이렇게 학생들과 함께하는 음악 활동을 통해 보람있는 교직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어린 시절 선생님께서 내게 베푸신 음악을 통한 교육과 그 안에 내재한 학생들을 향한 진심 어린 애정 그리고 사제 간의 교감이 바탕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우리 선생님을 닮아가고 싶었고 또 닮아가고 있었다.
 

그동안 서울에 올라오셔도 바쁜 나를 배려해 굳이 만나려 하지 않고 내려가시기 직전에야 안부를 전하시던 선생님께서 20여 년 전 어느 날, 서울에 출장을 온다며 연락을 주셨다. 반가운 기별에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선생님을 찾아뵙기로 했다. 오랜 기간 뵙지 못하였기에 어떤 모습일지 무척 궁금했다. 문 앞에서 선생님을 기다리는 동안 설레고 떨리기까지 했다. 정년을 앞두셨던 때라 내가 기억하는 청년 시절 선생님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세월과 함께 달라진 선생님의 그때 모습을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 한켠이 먹먹해진다. 선생님을 어떻게 모셔야 할 지 고민하다가 노래 부르시는 모습이 그리워 노래방에 가시자 했더니 무척 좋아하셨다. 춤추고 노래 부르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중에도 당시 마흔이 다 되어가는 우리에게 발성법을 알려주시고 발음 교정도 해주셨다. 우리도 초등학교 시절로 돌아간 듯 열심히 따라 불렀던 잊을 수 없는 추억이었다.
 

코로나로 인해 원격수업 준비를 하던 중 능숙하지 못한 동영상 작업으로 개학이 걱정될 정도로 힘들어하던 나는, 2021년 2월 손 글씨 주소가 적힌 선생님의 반가운 편지를 받았다. 세 가지 후회, 반드시 소유해야 할 세 가지, 세 가지 목표, 세 가지 복, 인간을 감동시키는 세 가지, 내가 진정 사랑해야 할 세 사람, 살아가는데 가장 가치 있는 세 가지, 성공적인 사람을 만들어 주는 세 가지, 실패하는 사람을 만들어 주는 세 가지. 여든을 넘기긴 선생님께서 제자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씀을 A4용지에 빼곡히 적어 보내주신 <삶의 세 가지>라는 내용이다. 이 편지를 읽고 가슴이 뭉클하여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특히 세 가지 복에 관한 내용, ‘첫째, 부모를 잘 만나야 한다. 둘째, 선생님을 잘 만나야 한다. 셋째, 배우자를 잘 만나야 한다.’라는 글귀가 마음에 깊이 와 닿았다. 힘들어하는 나의 모습을 마치 가까운 곳에서 지켜보고 계신 것 같아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2021년 9월 부모님 성묘길에 개정초등학교에 들렀다. 교문의 위치가 바뀌어 있었고 엄마와 함께 손잡고 달리다 넘어진 그렇게 커 보이던 학교 운동장이 매우 작아 보였다. 밴드부 활동으로 멜로디언을 연주하며 운동회 시작을 알렸던 구령대가 저렇게 낮았던가, 선생님과 노래 불렀던 교실은 어디쯤일까, 추억을 더듬어 학교를 둘러보다 보니 선생님이 더욱 보고 싶어졌다. 돌아오는 길에 연락 드렸더니 "내가 요즘 숨도 차고 귀도 잘 안 들린다" 하시며 예전보다 통화를 힘들어하시니 마음이 많이 아팠다.
 

당시 태중이었던 큰 조카와 여전히 노래하기를 좋아하는 언니들이 모두 모여 선생님의 풍금 반주에 맞춰 노래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천금 같은 소중한 말씀을 편지로 보내주시는 우리 선생님, 선생님과 다시 한 번 선구자를 열창할 수 있을까요? 저도 어느새 정년을 일 년 정도 앞두고 있습니다. 제가 늘 선생님 같기를 다짐하며 남은 기간 성실히 임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소중한 인연, 우리의 영원한 멘토 소병룡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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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 소감] 사표(師表), 소병룡 선생님

 

‘선생님의 선생님’이라는 교단 수기 주제를 보는 순간, 어린 시절 소병룡 선생님이 떠올라 마음이 설레기 시작했습니다. 누렇게 변한 국민학교 앨범을 꺼내어 선생님의 얼굴을 다시 보는 순간 오래전 함께 했던 선생님과의 시간이 물밀 듯이 떠올랐습니다. 오랜 인연의 사이사이에 소중하게 놓여있는 선생님과의 추억들을 하나씩 되짚어 보며 이 수기를 쓰는 동안 진심으로 행복했습니다.
 

소병룡 선생님은 저에게 사제지간을 넘어서 가족과 같은 정을 나누었던 분이셨습니다. 선생님의 교육관이 부모님의 가치관과 맞닿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부모님처럼 존경하고 따르고 싶은 선생님을 평생 한 분이라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여느 학생에게나 주어지는 행운은 아닐 것입니다. 한국교육신문에 실린 이 수기를 품고 선생님을 찾아뵐 생각을 하니 벌써 가슴이 벅찹니다. 
 

교사 생활을 해온 지 어언 38년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교사라는 직업을 천직으로 알고, 보람차게 교육활동을 해나갈 수 있었던 데에는, 소병룡 선생님께서 베풀어 주신 참된 교육에 대한 진심 어린 열정이 바탕이 되었습니다. 얼마 남지 않은 교직 생활을 잘 마무리할 수 있도록 초심으로 돌아가 선생님께서 몸소 가르쳐주신 ‘3정(진정, 열정, 다정)’을 실천하는 교사가 되기를 다짐해 봅니다. 마지막으로 이 수기를 준비하며, 잠시 잊고 있던 선생님과의 추억들을 함께 떠올려주고 그 시절 노래들을 부르며 같이 울고 웃어준 언니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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