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원평가에 대한 국민적 성원이 그야말로 뜨겁다. 너무 뜨거운 나머지 그 당사자들인 교사들은 그저 입만 다물고 있는 실정이다. 몇몇 일부 교사들의 잘못된 언행으로 이 나라의 모든 교사들이 마치 단두대라도 올려져야 한다는 식의 주장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교사들은 절망케 한다. 이 시대 대부분의 교사들은 이 사회가 요구하는 변화는 물결을 절실하게 느끼고 있다. 그 시대적인 감각을 아이들로부터 무엇보다 먼저 보고 받아들인다. 그저 시대적인 변화 속에 뒤떨어져 가는 무능력하고 무감각한 이들로 교사를 본다면 이는 분명 왜곡된 시각이다. 교원평가도 마찬가지이다. 무조건의 반대가 아니라 제대로 된 평가가 되기 위해서는 여러 선행조건들이 우선 정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냄비처럼 뜨거워진 언론 매체들에서 이런 부분들을 전혀 찾아 볼 수 없다. 답답하던 차에 우연하게 집안의 한 모임에 참석하게 되었다. 인근에 많은 친척 분들이 살고 있는지라, 무슨 행사가 있으면 모임이 잘 이루어지곤 했었다. “서 선생, 요즈음 편안하시나. 얼굴이 영 안 좋아 보여.” “예, 자형 잘 지내고 있습니다. 어찌 자형 가게는 잘 됩니까?” “그렇지 뭐. 다들 어렵다고 하는데 우리만 잘 될
교원평가라는 말이 본격적으로 흘러나오자 일선 학교들은 어수선한 분위기이다. 교사들의 입장에서야 ‘교원평가’라는 말 자체부터 반갑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입장에 평가를 쉽사리 수긍하고 받아들이는 분위기는 분명 아니다. 그 사안이 사안이니 만큼 간혹 가끔 흘러가는 말로 푸념들을 늘어놓곤 한다. 하지만 교원평가가 시대적인 대세니 뭐니 하면서 자꾸만 교사들을 이 시대에 뒤떨어진 무능한 이들도 자꾸 몰아대는 부분에 대해서는 때로는 분노 섞인 말들을 쏟아내는 분들도 계신다. 우연히 몇몇 젊은 선생님들이 우연하게 한 자리에 모이게 되었다. “참, 이제 본격적인 구조조정이 교직에도 이루어지는 것 아닌가요.” “몇 해 교사가 되기 위해 정말로 목숨 걸고 열심히 했는데, 이거 보람이 없이 벌써 이런 말이 나오다니….” “뭐 꼭 나쁘게 볼 필요는 없잖아요. 이 시대가 요구하는 교사상이 그렇다면 우리가 맞추는 수밖에요.” “그래도 너무 교육현장을 모르고 하는 소리들이 많아 속상하기도 해요.” “이제까지 우리 학교가 아이들과 학부모들에게 보여준 것이 미약하고 부족했기 때문에 일이 이 지경까지 온 것이니 누굴 원망하겠어요.” “그래도 이번 교원평가는 좀 그래요. 교사를 양성하고 뽑는 체
철밥통 운운하며 교사들을 마치 시대에 역행하려고 몸부림치는 이들로 다루는 언론을 대하며 이 시대 교사로 살아간다는 것이 만만하지 않음을 느낀다. 필자는 고등학교에서 국어를 맡고 있는 교사로, 불과 교직에 발을 들여 놓은지 만 6년을 넘어선 교사이다. 사범대를 졸업하고, 몇 년간의 공부 끝에 임용고사에 합격에 현재까지 교사로서의 길을 걷고 있다. 최근 언론에 일련의 교사평가와 맞물려 터져 나오고 있는 교사 길들이기식 보도에 정말로 경악을 금치 않을 수 없다. ‘과연 내가 이런 소리까지 들을 정도로 잘못했다 말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교직의 문에 들어서기 위해 몇 년간을 정말로 목숨 걸어 놓고 공부했던 지난 시절이 후회스럽기까지 했다. 최근에 흘러 나오는 교사 죽이기, 혹은 교사 길들이기식 보도는, 다름 아닌 이 시대 교원평가는 당연한 흐름이고, 이는 무능하고 안일한 사고방식에 젖어 있는 교사들을 현장에서 쫓아내겠다는 발상에 다름 아닌 것이라 여겨진다. 교원평가 그 실시 의도의 본질은 무엇인가! 교사는 정치와 권력의 장으로부터, 때론 시대가 요구하는 급진적인 사상의 흐름으로부터 독립적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교육을 ‘백년지대계’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