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원평가에 대한 국민적 성원이 그야말로 뜨겁다. 너무 뜨거운 나머지 그 당사자들인 교사들은 그저 입만 다물고 있는 실정이다. 몇몇 일부 교사들의 잘못된 언행으로 이 나라의 모든 교사들이 마치 단두대라도 올려져야 한다는 식의 주장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교사들은 절망케 한다.
이 시대 대부분의 교사들은 이 사회가 요구하는 변화는 물결을 절실하게 느끼고 있다. 그 시대적인 감각을 아이들로부터 무엇보다 먼저 보고 받아들인다. 그저 시대적인 변화 속에 뒤떨어져 가는 무능력하고 무감각한 이들로 교사를 본다면 이는 분명 왜곡된 시각이다.
교원평가도 마찬가지이다. 무조건의 반대가 아니라 제대로 된 평가가 되기 위해서는 여러 선행조건들이 우선 정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냄비처럼 뜨거워진 언론 매체들에서 이런 부분들을 전혀 찾아 볼 수 없다.
답답하던 차에 우연하게 집안의 한 모임에 참석하게 되었다. 인근에 많은 친척 분들이 살고 있는지라, 무슨 행사가 있으면 모임이 잘 이루어지곤 했었다.
“서 선생, 요즈음 편안하시나. 얼굴이 영 안 좋아 보여.” “예, 자형 잘 지내고 있습니다. 어찌 자형 가게는 잘 됩니까?” “그렇지 뭐. 다들 어렵다고 하는데 우리만 잘 될 수 있나. 그저 밥 먹고 사는 정도지 뭐.”
외갓집 큰누나의 남편 되시는 분인데, 평소 교사를 하고 있는 우리 부부에게 관심을 많이 써 주시는 분이셨다. 인근 읍에서 조그만 농약방을 하고 계시는데, 제법 그 동네에서는 알아주는 분이셨다. 사회 봉사활동도 많이 하시고, 로타리 클럽 회장도 맡고 계시는 등 매우 바쁘게 사시는 분이셨다.
“서 선생, 요즈음 교원평가 때문에 말 많지. 자네같이 젊고 유능한 교사(?)는 걱정 없겠지만, 예전에 교사자격증도 없이 마구잡이로 교사 시켜 주던 시대에 교사 한 사람들은 걱정이 많겠던데.” “글쎄요. 잘 모르겠습니다. 하면 하는 거죠. 뭐 별일이야 있겠습니까. 아이들을 위하고 아이들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데 누굴 나가라 하겠습니까.” “그건 그렇지. 하지만 무조건 열심히만 한다고 살아남는 것은 아니잖아. 나름대로 처세도 잘해야 하겠지.”
‘처세도 잘 해야 한다’는 자형의 말에 왠지 교사들은 처세도 못하는 무능한 사람들쯤으로 보이는 모양이었다.
“이제까지 교사들이 너무 안이했던 것은 맞아. 회사원들이나 다른 여타 직종에 근무하는 사람들과 비교해 봤을 때 너무 차이가 나는 것 분명해. 우리 주변만 봐도 쉽게 알 수 있잖아. 우리 같이 시장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이야 꿈도 꿀 수 없겠지만….”
시장에서 제법 큰 건어물 가게를 하시던 외갓집 형도 자형의 말을 거들며 그동안 교사들이 너무 안이하고 편하게 근무해왔다고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자신들의 처지와 너무 비교된다는 푸념을 늘어놓기도 했다.
“신문 보니까 교원평가는 대세인 것 같은데. 서 선생은 어떻게 생각해.” “모르겠습니다. 자형이나 형이 보시는 것처럼 교원평가는 대세인 것 같은데, 다만 교원평가를 했을 경우에 일어날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시는 것 같아서 아쉽네요. 그 부작용은 교사들뿐만 아니라 고스란히 우리 아이들한테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은 전혀 하시지 않으시는 것 같네요. 마치 교사들만 마구 잡아 족치면 교육이 잘 될 것이라는 일부 교육 관료들과 언론기관들의 주장이나 피상적인 생각에 대부분의 국민들이 동조하는 것 같아 아쉬울 뿐입니다.”
“하지만, 다들 평가받는 시대에, 교사만 빠질 수는 없는 것 아니겠어. 무엇보다 우리 아이들을 대학에 잘 보내야 하는 막중한 책임을 자네는 맡고 있지 않나.” “서 선생. 책임이 무겁겠어. 여하튼 서울대에 많이 보내. 예전 우리 학교 다닐 때 보니까 담임선생님들 중에서 그 반에 서울대 많이 보내면 돈도 받고 능력 있는 교사라고 대우도 받곤 하던데. 서울대에 몇 명 보내면 어떤 학부모가 능력 없는 교사라고 감히 깔보겠냐 말이지.”
교원평가가 술안주가 되다시피 한 자리가 썩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교원평가를 학부형이나 교사 아닌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단편적인 생각이나마 들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 것 같았다.
여전히 우리 교육에서 입시가 차지하는 비중은 엄청나다. 입시 제도와 관련해서 모든 것이 좌지우지 될 정도로 우리 교육상황은 여전히 후진국형 제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입시문제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채 교원평가부터 하겠다는 교육부의 의도는 도대체 정치적인 술수로밖에는 이해할 수 없다.
대한민국의 대다수의 학부모들은 자식들 대학 보내는 것에 목숨을 걸다시피 하고 있다. 더욱이 좋은 대학에 보내야 한다는 강박관념까지 가지고 있는 것이 또한 사실이다. 이런 절대 절명의 문제는 십년 전이나 지금이나 요지부동의 문제로 남아 있다.
교사 족쳐서 이런 문제를 과연 해결할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이런 근본적인 제도 자체를 보완하거나 손 볼 생각은 하지 않고 단지 정치적인 수단으로서 교사들을 평가하려고 한다면 결과는 볼 보듯 뻔할 것이다. 그 몫은 다시 한 번 우리 아이들에게로 돌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 교육은 입시의 테두리에서 조금도 벗어나 있지 못하다. ‘서울대 보내야 학부모들한테 무시당하지 않고 일등교사가 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있는 한 교원평가는 또 다른 입시교육의 한 치졸한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