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질문을 못 만들겠어요." "질문하는 게 너무 어려워요." 질문 수업을 시작할 때 교사가 마주하는 가장 흔하고도 당혹스러운 풍경이다. 배움의 주도권을 학생에게 돌려주기 위해 야심차게 ‘질문 만들기’를 제안하지만, 교실은 이내 침묵에 잠기거나 막막함을 호소하는 목소리로 채워지곤 한다. 이 막막함은 아이들만의 것이 아니다. 교사들 역시 정답을 외우고 지식을 받아들이는 공부에 익숙해져 있었기에, 무언가에 의문을 품고 질문을 던지는 행위 자체가 낯설고 고통스러운 과정일 수 있다. 이 첫 번째 벽을 어떻게 넘을 수 있을까? 그 열쇠는 질문의 수준을 따지기 전에, 질문이 싹트고 자랄 수 있는 ‘구조’와 ‘시간’을 마련해 주는 데 있다. 혼자 질문을 만들지 못해 쩔쩔매는 아이는 자존감이 떨어지고 결국 배움에서 소외된다. 이를 해결하는 가장 강력한 방법은 ‘짝과 함께 질문 만들기’다. 짝과 대화하며 머리를 맞대면 질문에 대한 두려움은 순식간에 사라진다. 친구가 툭 던진 한마디에서 새로운 궁금증을 발견하고, 대화의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해답의 실마리를 찾아가는 기쁨을 맛보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원칙은 ‘같이 또 따로’다. 질문을 만드는 과정은 짝과 함께 충
AI 시대 교육환경도 변화할 때다. 학생이 주도적으로 배움을 열어가는 수업. ‘질문수업’은 사고력 증진과 메타인지 발달을 위한 도구로 활용된다. 분석·판단·추론·문제해결에까지 ‘질문’을 통한 ‘수업’의 변화를 소개한다. 편집자주 질문, 더 깊은 배움을 향해 “정답입니다” 퀴즈쇼에서 사회자가 외치는 이 말은 교실에서도 자주 울려 퍼진다. 교실수업에서도 퀴즈쇼처럼 ‘정답입니다’를 외쳐야 할까? 수업과 퀴즈쇼가 외형적으로는 다른 모습일지 모르지만 정답을 지향하는 점에서는 닮아 있다. 지식의 정확성을 강조하는 교육은 외형상으로 그럴듯해 보인다. 그러나 지식 전달 위주의 정답식 수업으로는 미래 사회가 요구하는 역량을 길러주기 어렵다. 십여 년 전부터 정답식, 주입식 교육의 한계를 지적하며 패러다임 전환을 모색해 왔다. 이제 생성형 AI의 등장은 더 이상 과거방식에 머물 수 없고 교실 수업의 방향이 근본적으로 달라져야 함을 더욱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이제 배움의 본질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배움은 단순히 지식의 암기에 있지 않다. 지식이 학생의 내면에 자리 잡아 삶으로 연결되기 위해서는 단순한 암기를 넘어 능동적이고 자발적 탐구가 필요하다. “
“왜 이렇게 말을 안 들을까요?” “학년이 올라갈수록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어요” 학부모 상담을 하다 보면 교사들이 자주 듣는 말이다. 부모는 자녀가 잘되고 행복하게 살아가길 바란다. 하지만 아이는 원하는 대로 자라주지 않고, 부모는 내가 과연 잘하고 있는 건지 의심하게 된다. 그러나 불안감을 떨쳐낼 비법이 있다. 바로 ‘자녀의 존재 그 자체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하는 것이다. 갓 태어난 아이를 처음 품에 안았던 순간을 떠올려보자. 아이는 그저 살아 숨 쉬는 것만으로도 세상의 기적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는 그 시선을 잃는다. 잘 먹어야, 잘 자야, 무엇이든 잘해야 좋은 아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존재는 곧 조건으로 바뀌고, 그 조건이 채워지지 않으면 실망과 짜증, 미래에 대한 불안과 걱정까지 따라온다. 그러나 자녀에 대한 고마움은 지금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바라보게 한다. ‘잘했어’는 성과, ‘고마워’는 존재 중심 자녀가 부모의 마음에 드는 행동을 보이면 자연스럽게 ‘잘했다’, ‘역시 너는 최고야’라는 말을 하게 된다. 이러한 칭찬은 아이에게 긍정적인 피드백처럼 들리지만, 때로는 조건적인 사랑의 메시지가 될 수 있다. ‘잘했어’는 결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