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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눈과 귀가 하나로 모였던 쿠키 한 조각

아직도 생생한 자극제가 되고 있는 교감 선생님의 훈화 말씀. 저절로 아이들의 눈과 귀가 하나로 모이게 만든 힘은 ‘훌륭한 내용’이 아니라 ‘눈높이를 맞춘 전달 방식’이었다. 집중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탓하기 전에 아이들의 눈높이를 고려해서 의사소통하고 있는지를 점검해봐야 하지 않을까. 한 번도 선생님이었던 적이 없는 아이들에게 교사를 이해해 달라고 하기보다는 교사가 그들을 이해하는 것이 더 쉬울 테니 말이다.

그날, 교감 선생님의 훈화 말씀은 충격적이었다. 아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깔깔거리고 웃었지만, 20년 넘게 교사 생활을 하고 있는 나에겐 난생처음 경험하는 훈화 말씀이었다. 그러니까 몇 년 전의 일이다. 학교를 빛낸 자랑스러운 학생들의 수상이 끝나고 오늘은 교장 선생님을 대신하여 교감 선생님께서 훈화를 하시기로 한 모양이다. 텔레비전 화면 가득 교감 선생님의 모습이 잡혔다. 아이들은 ‘와! 교감 선생님이다’하며 처음에는 관심을 보였지만 그날도 역시 아이들은 이내 자기들이 하던 일을 계속하였다. 그런데 어느새 아이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교감 선생님의 훈화 말씀에 빠져들고 있었다. 이렇게 집중해도 되나 싶을 정도….

화면 속 교감 선생님은 한 손에 빨간 주머니를 들고 계셨다. 아이들의 눈은 너나 할 것 없이 그 빨간 주머니에 쏠렸다.
“여러분, 이게 뭘까요?”
빨간 주머니에서 꺼낸 것은 바로 큼직한 초코칩이 박혀 있는 먹음직스러운 쿠키였다.
 “쿠키를 반으로 자른 제임스는 반쪽을 배고픈 강아지에게 주었어요.”
“(제임스의 목소리를 흉내 내며) 자, 이거 먹어. 귀여운 강아지야.”
교감 선생님은 진짜로 쿠키를 반으로 자르고는 강아지 인형에게 건네는 시늉을 하셨다. 그리고 마치 동화 구연을 하듯 등장인물의 목소리를 흉내 내어 익살스럽게 말씀하시는 게 아닌가!


학창 시절까지 포함하면 30년이 훌쩍 넘는 학교생활 속에서 이런 훈화를 지금까지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그저 ‘오날날(오늘날)~~’로 시작되는 교장 선생님의 중저음 목소리로 학생으로서 지켜야 할 규범적인 내용들만 들어왔을 뿐이었다. 물론 아이들도 그다지 큰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은 달랐다. 그때서야 ‘그렇지! 너희들은 초등학생들이었지. 이렇게 이야기해 주는 것을 좋아하지!’라며 그동안 아이들의 눈높이를 생각하지 않고 내 방식대로 말했던 일들이 떠올랐다.

그러면서 집중 못 하는 아이들에게 마치 문제가 있는 것처럼 착각을 해왔던 것이다. 상대방의 입장과 처지를 이해하고, 눈높이를 고려하여 의사소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수도 없이 많은 연수를 통해 배웠지만 연수를 받고 나면 그때뿐 시간이 지나면 곧 잊히곤 했었는데, 교감 선생님의 그날 훈화는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내 기억 속에 생생한 자극이 되고 있다. 상대방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차리기만 해도 서로의 관계 맺음에 한 걸음은 더 나아갈 수 있을 것 같다. 그날 채 5분이 되지 않는 훈화를 위해 빨간 주머니, 과자, 강아지 인형 등 소품을 준비하시고, 아이들 앞에서 망가진 모습도 주저하지 않으며 생동감 넘치는 훈화를 하셨던 그 교감 선생님은 아이들의 눈높이를 정확하게 아셨던 모양이다.

그 이후로도 교감 선생님의 훈화는 몇 번 더 계속되었다. 물론 담임선생님들이 아이들을 일부러 주의집중 시킬 필요도 없었다. 교감 선생님께서 화면에 나타나시면 아이들은 기대감 가득한 눈빛으로 교감 선생님의 말씀에 빨려들어 갔다. 이 순간만큼은 우리 학교 모든 학생들의 눈과 귀가 하나로 모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학생과 교사의 관계에서 상대방 입장과 처지를 이해하는 쪽은 아무래도 교사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한 번도 선생님이었던 적이 없는 아이들에게 교사를 이해해 달라고 하기보다는 교사가 그들을 이해하는 것이 더 쉬울 것이다. 교사는 이미 학생 지도과 관련하여 전문 기관에서 수많은 교육을 받았고, 또 우리 아이들 또래의 자녀까지 키우고 있으며, 무엇보다 나도 우리 학생들과 같은 그런 시기가 있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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