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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을 위한 마음 챙김 철학] ‘그만하면 괜찮은 선생님’ 이어도 충분하다 

“문제아가 희망이다?”
현실에 만족하는 사람이 개선과 혁신을 꿈꾸는 경우는 별로 없다. 왜 이래야 하는지 납득이 안 될 때, 하라는 대로 고분고분해도 미래가 보이지 않을 때, 우리는 새로운 길을 꿈꾸기 마련이다. 이렇게 보면 불만 가득하고 삐딱선을 타는 반항아들은 괜찮은 친구들이다. 아인슈타인도, 스티브잡스도 학교 다닐 때 모범생은 아니지 않았던가. 혁신가들 가운데는 학창시절 불퉁거리던 반항아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이들을 상대했을 선생님들은 어땠을까? 넘치는 반항의 에너지를 내뿜는 친구들을 상대하기는 늘 버겁고 힘들다. 그래서 신학기를 준비하는 2월이면 마음이 걱정으로 가득하다. 수업과 학급경영을 열심히 준비하면 뭐 하겠는가. 어깃장 놓는 몇몇 아이가 나의 모든 노력을 헛되고 망신살 뻗치게 만들지도 모르는데. 올해만큼은 착하고 성실한 학생들만 나의 교실에 있었으면 좋겠다. 안타깝게도 이런 바람이 이루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상황이 어떻게 되건 우리는 또다시 교실에 서야 한다. 그러니 바뀌지 않는 현실을 탓하고 두려워해봤자 소용없다.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런 절박한 고민에 영국의 의사이자 정신분석가인 도널드 위니컷(Donald Woods Winnicott, 1896~1971)은 선생님들이 마음을 쓸어내리게 하는 혜안을 안긴다.

 

“훌륭한 선생님은 이기려 하지 않는다”
위니컷은 문제아를 상대한 경험이 많은 전문가였다. 그는 반항기 넘치는 아이들을 매우 좋게 보았다. 핵(核)은 매우 중요한 에너지다. 그러나 핵의 넘치는 힘을 관리하지 못할 때는 무척 위험해진다. 삐딱한 친구들, 날카로운 눈매를 번뜩이는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이 친구들은 학교가 정해놓은 질서와 규칙에 감히 맞설 만큼 혈기가 끓고 있다. 이들의 에너지를 잘 길들이며 바람직한 쪽으로 이끌 수는 없을까? 그렇게 된다면 이들은 순둥순둥한 모범생들보다 더 훌륭한 인재가 될 수도 있겠다. 이를 위해 선생님은 어떻게 해야 할까? 


위니컷은 무엇보다 교사들에게 ‘완벽하게 유능한 선생님’이 되려는 마음을 내려놓으라고 충고한다. 그는 부모들에게 탁월한 육아를 꿈꾸지 말라고, ‘그만하면 괜찮은 부모(good enough parent)’여도 충분하다고 마음을 다독인다. 우리가 어떻게 어른이 되었는지 찬찬히 생각해 보라. 위니컷에 따르면, 허점 하나 없는 부모는 되레 아이가 성장하는 데 좋지 않다.

 

부모가 하라는 대로만 하는 삶에서는 자기다움을 펼칠 기회가 없는 탓이다. 언제나 부모의 마음에 들려고 노력하는 아이가 성실하고 바람직하기는 하겠다. 그렇지만 이런 태도가 몸에 배면 평생을 늘 눈치 보는 새가슴이 되어버릴 수도 있다. 착하고 말 잘 들어서 가축처럼 부림 당하다가 결국 자기주장도 못하고 일터에서 밀려나던 이들을 떠올려 보라. 이런 인생이 좋아 보이던가?


너무 깨끗한 환경은 되레 아기의 면역력을 떨어뜨리기도 한다. 부모의 육아도 마찬가지다. 부족하고 결점 있는 부모는 아이에게 정당(?)하게 반항할 기회를 준다. 아이는 자기주장을 펼치며 주도적인 인간으로 바뀌어 갈 터다. 성장이란 결국 부모에 맞서며 자기 생각을 키워 스스로의 삶을 만들어 가는 과정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위니컷의 육아이론을 교실로 가져와 보자. 우리는 빈틈없는 계획과 준비, 넘보기 힘든 권위로 수업을 뜻대로 이끄는 선생님이 되고 싶어 한다. 그렇지만 빈 곳 하나 없는 교사가 학생들에게 언제나 좋지는 않다. 완벽에 가까운 교사는 자기 뜻대로 수업을 이끌려는 바람이 매우 크다. '

 

그럴수록 학생들은 설계된 수업대로 반응하며 선생님의 뜻에 맞추려 애쓰곤 한다. 아이들이 수업의 주체가 아닌 객체가 되어버린다는 의미다. 이런 상태가 학생들에게 즐겁고 재미있을까? 물론 모범생들은 인정받는 맛에 수업이 기다려질지 모른다. 그렇지만 위니컷은 ‘주도성’을 눈여겨본다. 내가 잘 못한다고 해서, 실력 좋은 누군가가 나 대신 게임을 해준다고 생각해 보라. 그래도 나는 게임하기가 즐거울까?


사람은 자기가 주인공이 되어 상황을 이끌 때 참여도와 집중력이 끓어오르는 법이다. 수업에 참여하는 학생들도 다르지 않다. 따라서 선생님은 조금 허술한 편이 낫다. 어린아이에게 부모는 세상 전부와도 같다. 부모를 설득해서 자기 뜻을 펼쳤을 때, 아이에게는 자신이 주어진 현실을 이겨낼 수도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다.

 

마찬가지로 선생님의 가르침과 다른 생각을 펼쳐서 자신의 주장이 먹혀들었을 때, 비로소 자기 삶을 풀어나갈 때 필요한 자신감이 한껏 높아질 터다. 그러니 선생님은 아이를 이기려고 아득바득할 필요가 없다. 때와 장소에 맞게 잘 져주는 교사가 아이의 성장과 발전에 더 도움이 되는 까닭이다. 

 

“중간 대상에 관심을 기울여라”
하지만 드센 아이들에게 시달리는 선생님에게 위니컷의 말은 현실적인 조언이 되기 어렵다. 마음가짐을 바꾼다고 해서 수업의 맥을 끊는 학생들을 상대하기가 갑자기 편해질 리 없는 탓이다. 그래서 위니컷은 조금 더 실질적인 수업 팁(tip)을 안긴다. 서걱거리는 아이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싶은가? 그러면 먼저 ‘중간 대상’에 관심을 기울여라. 


부모와 떨어지는 경험은 아기에게 무척 불안하고 힘들다. 따라서 아이는 담요나 인형 등을 손에 쥐며 마음을 달래곤 한다. 이것이 위니컷이 말하는 ‘중간 대상’이다. 자신이 ‘애착하는 무엇’으로 ‘엄마를 대신하는 대상’을 삼는 셈이다. 아기는 중간 대상을 움켜쥐며 엄마가 없는 불안을 버티는 능력을 갖추어 간다. 연예인에게 매달리기, 게임에 빠져들기, 좋아하는 스포츠나 음악에 몰두하기 등도 성장기에 있는 학생들의 ‘중간 대상’이라 할만하다. 


위니컷은 아이가 인형을 안고 있으면, 인형에게 말을 걸었다고 한다. 아이는 마음을 의지하는 대상에게 친근한 의사를 보며 마음을 열곤 했다. 두려움과 외로움으로 날이 선 아이에게 위니컷처럼 해보면 어떨까? 아이가 좋아하는 연예인, 게임이나 취미 등을 살피며 관심을 기울일 때, 마음이 쉽게 열릴지 모른다.  


위니컷은 좋은 성장이란 ‘참 자기’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양육자가 아이의 말과 표현에 섬세하게 주의를 쏟을 때, 아이는 자기의 욕망과 바람이 소중하다고 느낀다. 이런 경험이 많은 아이들은 자기 생각과 감정을 스스로 존중한다. 그래서 이를 어떻게 하면 세상이 받아들일까를 고민하며 자라난다. 자신이 바라는 대로 자신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 곧 성장이 되는 모양새다. 


반면 양육자가 자기가 원하는 대로만 아이를 이끌려 할 때는 어떨까? 아이는 사랑받기 위해 양육자가 바라는 바대로 움직이려 눈치 본다. 이런 친구들은 자랄수록 자신의 감정과 생각은 억누르고 감추는 습관이 몸에 배어 버린다. 남이 바라는 모습인 ‘거짓 자기’가 자기 생활의 중심이 되어버린 꼴이다. 그래서 이들은 마음이 헛헛하고 외로운 어른으로 자라나기 쉽다. 세상의 인정을 받아도, 진솔한 자기감정과 욕망은 스스로 소홀히 여기기 때문이다.

 

따라서 관심과 사랑을 쏟아주는 일은 좋은 수업만큼이나 아이에게 중요하다. 때때로 수업에서 유능한 교사가 되고 싶다는 마음을 내려놓고, 힘든 아이들과 친해지며 감정을 헤아리는 데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우리는 이미 괜찮은 선생님이다”
하지만 교직은 감정노동이 무척 심한 직업이다. 몇몇 버거운 친구들을 보듬느라 성실하고 착한 전체 학생들을 소홀히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정신의학 전문의의 상담실과 교실 상황이 같을 리는 없다. 교사에게는 여러 얼굴이 있어야 한다. 학급을 꾸리고 수업 진도를 나가며 생활 지도할 때, 선생님은 한 분 한 분이 ‘교육을 대표하는 국가기관’과도 같다. 마땅히 주어진 권위를 갖고,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학생들을 마땅하게 벌 줄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위니컷의 조언은 원칙 없는 교사, 훈육을 저어하는 교사가 되라는 소리는 아니다. 아무리 모범적인 사회에서도 어긋나는 이들은 있다. 몇몇이 일탈했다 해서 그 사회 전체가 잘못되었다고 하지는 않는다. 나아가 이들을 엄벌한다고 해서, 어긋나는 자들이 다시 생기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우리의 교실도 그렇지 않을까? 아무리 애를 써도 우리는 모두에게 완벽한 교사가 될 수는 없다. 


그렇기에 위니컷의 ‘그만하면 괜찮은(good enough)’이라는 말은 큰 격려로 다가온다. 학생들은 성장과정에서 반항과 처벌, 실패와 후회를 겪기 마련이다. 거친 과정을 겪는 아이들을 햇살처럼 비춰주며, 같이 버텨주는 역할만으로도 선생님인 우리는 충분히 제 역할을 하고 있다. 신학기를 앞둔 2월은 걱정과 불안이 많은 달이다. 학생들을 사랑한다면 우리는 이미 괜찮은 선생님이다. 용기를 내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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