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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교사 에세이, 한 페이지] 그 남자 선생님의 유치원 풍경

"선생님, 대체 눈이 왜 그래요?"

 

이건 또 무슨 일이란 말인가. 허둥지둥 화장실로 달려갔다. 아뿔싸, 왼쪽 눈 흰자에 핏줄이 붉게 터졌다. 나와 여름맞이 물총놀이를 한 60명 5세 어린이의 물총 공격에 그만 나의 눈을 내어주고 만 것이다.
 

‘어휴, 안경 벗지 말고 그냥 끝까지 쓰고 있을걸.’
‘그래도 아이가 다친 것이 아니라 내가 다쳐서 다행이다.’
 

머릿속에서는 수많은 생각들이 둥둥 떠다닌다. 하지만 별 수 있으랴. 오늘 하루 퇴근 전까지 나는 물총놀이를 하다가 얻은 영광의 상처 이야기를 만나는 사람마다 해야 할 것 같다. 예상대로 마주치는 교직원과 어린이들이 걱정하며 내 눈에 관심을 보인다. 그리고 그러한 관심에 나는 60대 1로 대결한 무용담을 들려주며 웃음으로 넘겼다. 사람들의 반응은 다양하다. 혀를 끌끌 찬다거나 어이없다는 듯 입을 벌리고 듣는 반응도 있는가 하면 다친 눈이 신기해서 얼굴을 들이밀고 계속 쳐다보는 어린이도 있다.

 

나는 1% 교사다

 

그렇다. 내가 속한 이 학교는 여자 선생님이 99%, 남자 선생님이 1%의 비율을 가지고 있는 유치원이다. 그 안에서 나는 15년 차 남자 유치원 교사로 근무하고 있다. 처음 근무할 때의 남성 비율이 0.3%였다고 하는데, 지금은 그래도 그 비율이 세 배 이상 많아졌다. 그야말로 크나큰 발전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유치원 현장에서 남자 선생님으로서 경험하는 일화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생각보다 비슷하다.
 

올해 2월의 일이다. 반 배정을 받고 학부모님께 한 분, 한 분 전화를 돌렸다. 대부분 이 전화를 받으시고 처음에는 조금은 설렁설렁 "네~ 네~"하고 받으시다가, 내가 "그래서 제가 담임교사입니다"하고 말씀드리면 찰나의 멈춘 공기 사이로 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그리고 학부모님은 웃으시고, 나도 따라 웃는다. 하하하 웃고 나서 안내 사항과 함께 잘 부탁드린다고 말씀드리고 전화를 마무리한다.
 

단지 학부모님만 남자 유치원 선생님을 어색해하시는 것이 아니다. 교육지원청 연수에 가면 혹시 컴퓨터 고치러 오셨냐고 물어보신다. 또, 다른 유치원 교직원이 우리 유치원에 오셔서 인사드리면 행정실장님이냐고 하신다. 그래서 유치원 교사라고 말씀드리면 그분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리는 것을, 나는 15년 동안 경험해 왔다.
 

어린이의 첫 학교인 유치원은 그 학생의 연령 특성상 전통적인 사회에서는 주로 여성이 가르치는 역할을 담당해 왔다. 그래서 시대가 변하여 머리로는 다들 남성도 유치원 교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아시지만, 그 비율상 눈앞에서 남자 유치원 선생님을 직접 만나는 경험이 많이 없으셨기에 막상 실제로 만나서 어색해하시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렇지만 다행히도, 학부모님이나 교직원분들이나 시간이 지나면 처음보다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주신다. 역시나 시간이 약이다.
 

우리 반 교실은 늘 시끌시끌했다. 아이들 있는 교실이야 당연히 시끄러운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아무래도 어린이들은 교사를 따라가기 마련이다. 나의 첫 발령지는 경기도 가평이었다. 유치원 뒤편엔 나지막한 산이 있었는데, 아이들과 매주 산을 오르내렸다. 쑥도 캐서 떡도 해 먹고, 오가는 길에 뱀을 보고 뜨악했던 일 모두 재미있는 추억으로 남아있다.
 

이때 배운 것이 아이들에게 바깥 놀이는 축복이라는 것이다. 가능하면 매일 바깥 놀이를 나가는 이유다. 아이들이 웃으면서 마음껏 뛰어노는 모습, 집중해서 작은 생물을 관찰하는 모습, 텃밭과 화단에 신나서 물을 주는 모습을 매일 볼 수 있는 것은 나에게도 축복이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이 아이들이 정말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 생명력이 아이들을 자라게 할 것이라는 믿음이 단단해진다.

 

놀이로 자라는 아이들

 

2012년 겨울, 우리 반 교실에는 카메라 센서가 달린 한 게임기가 들어왔다. 신체를 인식해서 움직임으로 화면 속 캐릭터를 조종할 수 있었다. 겨울은 너무 춥고 아이들도 바깥에서 장시간 뛰어놀기가 마땅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하면 어린이들의 신체 놀이를 지원해 줄 수 있을까 궁리하다가 찾은 고마운 기계였다. 당시 중고장터를 오랫동안 찾다가 발견해 뛸 듯이 기뻤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요즘에는 ‘에듀테크’라는 멋진 이름이 붙었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소위 ‘게임기’를 교실로 들여오기에는 교사로서 작은 용기가 필요했다. 다행히도 관리자들과 학부모들이 나의 의도를 알아주셔서 교실에서 신체 놀이를 할 수 있었다. 이후로도 나의 관심은 유아기에 적합한 에듀테크 기기를 활용해 배움을 풍성하게 만들어주도록 지원하는 데에 있다.
 

최근에는 인공지능을 활용해 여러 가지 놀이를 하고 있다. 동화와 노래도 만들고, 환경의 날 주간에는 바다를 구하는 인공지능에 대해서도 알아봤다. 로봇 청소기를 빌려와 함께 교실에서 생활하며 인공지능이 어떻게 활용되는지도 살펴봤다. 어린이들이 게임을 기획하면 인공지능으로 코딩해 만들기도 했다. 태어나면서부터 인공지능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이 어린이들에게 인공지능은 결코 떼어낼 수 없는 자연스러운 일상이기 때문이다.
 

여름이 참 무덥다. 유치원 텃밭에 토마토가 빨갛게 익은 모습이 참 탐스럽다. 매년 이맘때 아이들과 함께 토마토를 수확하며 잘 영근 이 둘이 참 닮았다 생각한다. 어린이들에게 이 말을 들려주고 싶다.
 

‘이 토마토처럼 너희도 잘 자라났구나. 올해도 찾아와 주어서 고맙다. 함께 해주어 고맙다. 한 학기, 너희와 함께 나도 한 뼘 자랐구나. 이제 신나는 여름, 안전한 여름을 보내고 우리 2학기도 힘내보자. 사랑한다, 얘들아!’

 

-농부 같은 마음의 선생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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