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9일은 매헌 윤봉길 의사께서 상하이 의거를 행한 지 93년이 되는 날이다. 요즈음 윤 의사의 의거를 폄하하거나 ‘테러’라고 말하는 상식 이하의 사람들이 있다. 이것은 윤 의사의 의거를 제대로 알리지 못하고 독립운동사에서 확고하게 정의를 내리지 못해 나타난 것이라 생각된다. 윤 의사의 의거는 일제 침략 전쟁에 맞서 일본의 군관 수뇌부를 겨냥한 ‘전투 행위’이자 ‘독립 전쟁’이었다.
임시정부 승인받은 특수 작전
윤 의사는 1932년 중국 상하이 훙커우 공원에서 열린 ‘일왕 생일(천장절) 및 상하이 사변 전승 기념식장’에서 일본군 총사령관 시라카와 대장 등 군관 수뇌부를 물통형 폭탄으로 기습 공격했다. 이는 윤 의사가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창설한 특공대 ‘한인애국단’ 단원으로 임시정부 국무회의의 승인을 받고 수행한 특수 작전이자 독립 전쟁이었다.
일본 정부도 윤 의사의 상하이 의거를 전쟁으로 규정했다. 일본 육군이 1932년 9월 작성한 ‘상해 천장절 식중 폭탄 흉변 사건’ 문서를 보면, 거사를 ‘조선 독립을 위한 편의대원(민간 복장의 특수부대원)의 공격’이라고 규정하고, 시라카와 대장의 사망을 전쟁 중 입은 부상에 의해 사망한 것인 ‘전상사(戰傷死)’로 기록했다. 또 기념식장은 ‘상해전장(上海戰場)’으로 표기하고 있다. 이렇듯 일본도 의거가 ‘전쟁’이며 ‘테러’가 아니었음을 인정하고 있다.
윤 의사의 의거는 건물 임대료도 제대로 못 내던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가 독립운동의 중심 역할로 부활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당시 중국 국민당 장제스(蔣介石) 총통은 “중국 4억 인구와 100만 대군이 해내지 못한 일을 조선의 한 청년이 해냈다”며 임시정부를 물심양면으로 지원하고 사실상 공식 정부로 인정했다.
이승만 전 대통령도 김구 선생이 한인애국단 활동에 대하여 기록한 ‘도왜실기(屠倭實記)’의 국역판(1946) 서문에서 “한국 해방의 단서가 된 카이로 회담에서 장제스 총통이 솔선해서 한국의 자주독립을 주창해 연합국의 동의를 얻은 것은 그 원인이 윤 의사의 장거에 있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또한 테러는 ‘불특정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로 일반인의 피해가 많이 따르지만, 윤 의사의 의거는 침략국의 군관 주요 인사만 처단됐을 뿐 일반인은 전혀 피해가 없었다.
테러 아닌 독립전쟁으로 기록해야
이제 윤 의사의 거사는 의열 투쟁이라고 하기보다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승인하에 침략국 일본과 싸운 항일무장투쟁이자 독립 전쟁으로 기록해야 할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국내외의 여러 환경 요인으로 인한 불안정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런 때일수록 윤 의사의 나라와 겨레에 대한 순국의 정신을 깊이 상기해 양보와 상생의 정신을 갖고 위기를 극복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