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게 생긴 인간이로군!”
요즘 우리 반에는 도깨비가 출몰한다. 그들은 쉬는 시간마다 인간들을 잡아먹겠다고 난리다. 하지만 걱정 없다. 도깨비 사냥꾼이 지켜줄 거니까. 사냥꾼들은 도화지로 만든 칼을 휘두른다. 심지어 빨간색, 파란색 등 색깔도 다양하다.
“얘들아, 이게 무슨 놀이야?”
“이거 귀멸의 칼날 놀이잖아요. 선생님은 아직 영화 안 보셨어요?”
귀멸의 칼날이라니, 제목만 들어도 일본 애니메이션 냄새가 났다. 필자는 사실 일본 애니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다. <슬램덩크>, <드래곤볼>, <원피스>도 제목만 들어본 정도였으니까. 그래도 이번에는 관심이 갔다. 학생들이 워낙 열광했기 때문이다.
인터넷에 영화 제목을 검색했다. 열흘 만에 누적 관객 수 300만 명을 달성했단다. 이 정도면 어른도 푹 빠졌다는 증거였다. 그래서 그 열기에 올라타 보기로 했다.
며칠 뒤, 영화를 보고 깨달았다. 우리 반 아이들이 휘두르던 칼의 비밀을 말이다.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검은 주인을 닮는단다. 화염의 기술을 쓰는 주인공의 칼은 빨간색이었다. 물의 호흡을 쓰던 검객의 칼은 파란색이었다. 번개처럼 빠르게 적을 무찌르는 캐릭터는 노란색 칼을 휘둘렀다.
“그럼, 아무 색깔이 없는 검도 있어?”
아이들은 내게 친절히 설명해 줬다. 검은 특별한 재질로 만들어진단다. 처음에는 아무 색깔이 없지만, 그 검을 집어 드는 사람에 따라 색이 변한다고 했다. 한 번 색이 정해지면 다른 사람이 칼을 집어도 색이 바뀌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데 칼자루를 잡아도 아무 변화가 없다면? 그건 검술에 재능이 없는 것이란다. 그런 사람들은 거기서 수련을 멈추고 다른 일을 찾는다고 했다.
‘이거 완전 블로그 글쓰기잖아?’
필자가 블로그 교육을 수년째 하면서 느낀 게 있다. 같은 주제로 글을 써도, 학생마다 문체가 다르다는 것이다. 어떤 학생은 불의 글을 쓴다. 처음부터 끝까지 활활 타오른다. 물의 글을 쓰는 학생도 있다. 글을 읽다 보면 어느새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물론 번개의 글을 쓰는 친구도 있다. 짧고 굵게 휘갈긴 뒤, “선생님 다 썼어요!”라고 번쩍인다.
그런데 가끔 아무 색깔이 없는 글을 만날 때도 있다. 필자는 그런 글을 볼 때마다 혼란스럽다. 불도 아니고 물도 아니면 도대체 뭐란 말인가? 바위? 바람? 안개?
“사실 AI가 썼어요.”
역시! 인공지능의 솜씨였다. AI가 대신 써준 글은 참 잘 읽힌다. 맞춤법도 맞고, 문장도 부드럽다. 기승전결 논리 구조도 명확하다. 하지만 단 하나 아쉬운 게 있다. 바로 색깔이 없다는 것이다.
색깔이 없는 글은 맛이 없다. 쉽게 쓰였기 때문이다. 독자들은 바보가 아니다. 5초 만에 뚝딱 만들어낸 글을 5분 동안 읽어줄 사람은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직접 써야 한다. 투박해도 괜찮다. 어딘가 어설퍼도 괜찮다. 나만의 색깔이 있으니까.
이 만화영화의 최종 보스는 불멸의 존재다. 심지어 목을 베어도 다시 살아난다. 그에 맞서는 인간들에겐 한계가 있다. 피가 나고 뼈가 부러지면 회복하기 힘들다. 하지만 결국에는 인간이 이긴다. 빨갛게, 파랗게 빛나는 칼로 적을 무찌른다.
블로그도 마찬가지다. 글 쓰는 건 항상 어렵다. 다른 사람들이 내 글을 읽어주지 않아서 속상할 때도 있다. 몇 번이고 불멸의 인공지능에게 맡기고 싶을 수 있다. 하지만 영화 속 검사들이 칼날을 예리하게 가는 것처럼, 우리도 직접 키보드를 두드리자. 언젠간 나만의 색깔을 발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