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천 년간의 교육과 그 흐름은 인류의 정신과 문화, 체제와 가치기준에 결정적 영향을 끼치면서 변화와 발전의 고비고비를 넘겨 왔다. 그렇다면 이제 새천년의 교육은 어떤 방향, 어떤 방식으로 인류의 삶을 이끌어 갈 것인가. 그 비밀의 열쇠는 아마도 지나간 천년의 교육사 안에서 찾아질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 이렇게 말했다. 역사를 모르는 자에게는 현재 사회는 물론, 미래 사회의 지휘봉을 맡겨서는 안 된다고…. 교육도 마찬가지다. 지난 천년의 긴긴 교육사를 지금 더듬어보는 이유는 새천년 미래 교육을 올바로 예측하고 지혜롭게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초기
한국사에서 연대기로 보아 1천년대 초는 고려시대(918-1392)에 해당한다. 고려는 삼국시대와 달리 건국초기부터 각종 교육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태조때 서경에 학교를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데 이는 고려가 고구려 옛 땅을 회복하여 민족통일의 대 꿈을 완성하려는 북방정책에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기 위함이었다.
고려초에 고등교육기관인 국자감을 비롯하여 개경에 東·西學堂과 지방에 鄕校를 설치하는 등 교육제도의 기반을 확립하였다. 고려의 교육사에서 큰 의미를 갖는 것은 고려 말 충렬왕 때부터 국자감 부흥운동을 통한 고려 부흥정책이었다. 이때 유학자 안향(1234-1306)은 교육부흥을 위하여 관리를 비롯한 지도층을 대상으로 교육헌납제를 실시한 바 있다. 바로 섬학전제도다.
한편, 최충(983-1068)의 문헌공도를 비롯한 12도의 사학기관은 관학이 쇠퇴한 시기에 상대적으로 왕성한 활동을 보여 유학교육의 정신을 앙양하고 인재양성에 이바지하였다. 고려말에 성리학(性理學)이 전래됨에 따라 침체된 유학의 부흥을 꾀하며 새로운 학풍이 일어나게 되었다. 이 무렵에 최충, 안향, 이색, 정몽주 등은 한국교육사적 인물들이다.
한편 서양사에서 1천년대 초기는 기독교 절대주의 사회였던 소위 서양 중세기의 후기에 해당한다. 이때는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도덕 등 모든 가치관의 기준이 오직 기독교주의에 귀착되어야만 했다. 오늘날 서양사회의 일상생활 풍습과 가치관의 대부분이 기독교적이 된 것도 이 무렵의 기독교주의 교육의 영향이다.
서양중세의 전기는 5세기부터 11세기경까지다. 이 때는 기독교적 교육내용이 교육실제를 지배하던 종교적 교육의 시기였다. 한편 중세후기는 11세기 후반부터 문예부흥이 일어난 15세기경까지의 비종교적 교육의 시기였다. 중세교육의 특징은 기독교적인 완전에 도달하는 교육, 현세를 부정하고 내세를 준비하는 교육, 교회의 권위에 의해서 교육을 엄중히 감독하는 교육이었다.
서양중세의 대표적 교육기관으로서는 문답학교, 고급문답학교, 본산학교, 수도원학교 등이었다. 기사도교육은 11세기 이후 봉건제도의 성립과 더불어 나타났다. 그 후 기존의 기독교 절대교육을 비판하면서 나타난 자유시민을 위한 실업 교육의 발생은 인류의 가치관과 삶의 질을 크게 바꾸어 놓게된 시발점이 되었다. 왜냐하면 12-3세기경에 유럽남부 지역에서부터 신흥 경제 자유도시가 나타나면서 소위 동업조합제도가 생기도 조합원의 기술확산을 위한 새롭고 폭넓은 교육의 필요성이 높아짐에 따라 조합학교(guild school)이 태동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이때의 자유시민학교는 종래의 신앙이나 기사도정신 교육과는 달리 자유시민으로서의 지식과 교양, 직업 및 생산교육도 과하므로서 근대교육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이처럼 13∼14세기경까지 신흥자유도시의 발생과 동업조합의 영향에서 비롯되었던 자유시민교육은 이전의 특권층만의 교육기회가 모든 서민에게도 허용되고, 교육내용도 성경과 교양 및 이론 위주에서 직업, 기술, 생산, 경제, 예술, 체육에까지 확대되는 등 세계 교육사상 큰 발전을 이루었다.
한편 영국의 그래마스쿨, 퍼블릭스쿨, 독일의 라틴어스쿨 같은 고급인문교육기관 등도 12∼13세기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이것은 대학의 발생과 맞물려 크게 번창하였다. 중세말기에 급팽창한 자유시민정신과 신흥상공업 및 무역도시의 발생으로 인하여 사회가 복잡화, 다양화, 전문화되어 갔다. 높은 수준의 문장력과 다양한 언어기술은 물론 법률, 신학, 의료, 철학, 예술, 면에 전문적 지식을 갖춘 사람이 필요하게 되었으므로 드디어 중세대학이 발생하였다. 세계교육사상 큰 변화의 시점이었다.
이탈리아의 사례르노(1060년), 보로그나(1088년) 대학을 비롯하여 프랑스의 파리(1109년)대학, 영국의 옥스퍼드(1167), 켐브리지(1209년)대학, 독일의 프라그(1348년), 윈(1365년), 하이델 베르그(1386년), 쾨른(1388년), 라이프니쯔(1409년)대학 등 지금도 세계적 대학으로 역할을 하고 있는 대학들이 바로 1천년대 초기에 설립되었던 것이다. 이때의 한국 역사에는 고려의 국자감이 관리양성을 목적으로 하는 대학의 역할을 하였는데 그 교육의 내용이 4서 5경을 중심으로 한 유학교육 일변도였던 것과 크게 비교된다.
◆중기
한국사에서 1천년대의 중기라고 하면 조선시대 전반부에 해당한다. 왜냐하면 14세기말에 건국된 조선이 20세기 초에 일본에게 국권을 침탈당할 때까지 500년동안의 약 반이 바로 1천년대의 중기에 걸쳐있기 때문이다. 이때의 교육은 한양에 세워진 성균관을 비롯하여 4학(四學)과 향교 등의 관립교육기관이 있었고 서원과 서당 같은 사학기관도 크게 번창하였다.
그런데 조선시대의 교육사상적 특색은 성리학적 우주관·인생관·교육관으로 표현된다. 교육사상에 있어서 성리학 일변도의 이러한 경향은 후세학자로 하여금 부정적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퇴계 이황(1501-1570)은 인간형성의 기본방향을 인(仁)에 두고 교육목적 달성의 수단을 경(敬)으로 삼았는가 하면, 교육목표를 지(知)보다 행(行)으로 본 훌륭한 교육자였다.
율곡 이이(1536-1584)는 이 시기의 대철인이요, 경세가였으며, 탁월한 교육가였다. 율곡은 이미 인간중심교육, 지행합일교육, 생활중심교육, 문제해결중심교육과 같은 현대 교육사상을 개발하고, 실천에 옮기므로써 2천년대의 교육방향에도 변함없는 영향을 미칠 것이 확실하다. 17세기에 이르러 한국교육사상에는 큰 발전의 계기가 나타났으니 이른바 실학교육사상의 태동이다. 실학교육사상은 17세기조선사회가 정치, 사회, 도덕적으로 크게 타락하여 가고 있을 때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한가닥 희망의 바람같은 것이었다.
공리공론적, 비생산적, 편파적, 형식교육으로 폐허가된 당시의 유학교육풍토를 합리적, 과학적, 주체적, 실용적 실학풍토로 개선하기 위해서 교육목적과 교육방법, 교육내용을 재구성하자는 사상이었기 때문이다. 유형원(1622-1673), 정약용(1762-1836)을 비롯하여 이익, 안정복, 김육, 김정희 등은 당대의 대표적 실학사상가로서 교육사상계에서 크게 주목되는 인물이었다.
한편 서양교육사에서 1천년대 중기의 교육은 15세기경에 나타난 문예부흥기의 인문주의 교육사상으로 뚜렷하게 구분되어 나타났다. 15세기 문예부흥운동이 자아의 자각을 통한 인간 재생운동이라면, 16세기 무렵의 종교개혁운동은 형식적 교권주의에서 탈피하여 오직 성서에 의해서만 복음을 들을 수 있다는 신앙본연으로 돌아가라는 계몽 교육운동이었다.
루터(1483-1546)에 의하여 시작된 종교개혁 운동은 그 성공을 위해서 필연적으로 교육개혁 운동의 성격을 띠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교육의 내용과 방법은 여전히 언어주의·암기와 훈련위주의 형식교육에서 탈피하지 못하였다. 따라서 교육의 내용과 방법에 있어서 일대 혁신을 가져오게 하기 위해서는 17세기의 실학주의 교육사상을 기다려야 했다.
실학주의 교육사상은 실용성 있는 구체적 지식과 실제적 직업기술 그리고 과학적인 학문연구의 방법으로 나아가는 교육사조이다. 이 실학주의 사상은 직관교수, 실물교수, 감각적 교육을 중요시하는 새로운 교육 혁명을 일으키게 하였다. 밀턴(1608-1674), 몽테뉴(1553-1592), 로크(1571-1635)와 코메니우스(1592-1670)는 17세기 실학주의 교육운동에 공헌한 대표적 인물이다. 특히 코메니우스는 근대적 교육사상과 과학적 교육방법의 발달에 획기적 공헌을 하였기에 근대교육의 아버지로 알려지고 있다.
◆후기
한국사에서 1천년대 후기라고 하면 여기서는 조선말기와 일제침탈기 및 해방후 대한민국시대로 보겠다. 조선은 강화도조약(1876) 이후 열강 제국과의 통상조약 체결로 문호가 열리게 되고, 서양의 새로운 근대문물을 활발히 접하게 되었다. 이때 선각적 개화사상가들에 의한 개화교육운동과 기독교 선교사들에 의한 서구식 근대교육이 도입되면서 한국교육은 전연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였다. 특히 갑오경장(1895)으로 신학제가 제정되고 근대지식을 보급하는 등 새로운 교육체제를 이루어갔다.
주체적 민족 개벽사상인 동학사상과 서양식 근대지식의 수용사상이었던 개화사상은 한국의 근대교육운동을 더욱 활발하게 하였다. 그러나 일본 식민지 정책의 팽창에 의하여 근대 교육운동은 새로운 도전을 받게 되었다. 그러므로 19세기말 한국의 근대교육운동은 부득이 교육 구국운동의 성격을 띠었다.
드디어 일제에 의하여 국권이 상실되자(1910), 민족교육은 파멸위기에 이르렀다. 세차례에 걸친 조선교육령의 개폐과정은 그들에 의한 민족말살과 예속을 시도한 교육적 침략행위였다. 이처럼 악랄한 침략적 만행과 탄압 밑에서도 우리 민족은 사학과 야학 등으로 교육적 저항을 계속하여 해방(1945)까지 맞았다.
이시기의 이기(1848-1909), 박은식(1859-1925), 남궁억(1863-1939), 안창호(1878-1938), 이승훈(1864-1930) 등의 교육사상은 새로운 2천년대에도 민족교육, 민주교육, 시민교육, 인간교육, 세계교육, 실용교육, 과학교육을 위해서 올바른 방향을 설정하는데 귀한 교훈을 제시하게 될 것이다.
1945년 8·15 민족해방은 한국교육사에서 실질적 민주교육의 첫 출범이었다. 우리의 뜻에 의한 우리 교육을 찾게 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해방후 홍익인간의 교육이념과 기회균등의 민주교육이념을 헌법과 교육법에 명시함으로서 명실상부한 현대 교육국가의 자리를 매김하였다.
한편 6·3·3·4제의 단선형 학제를 기간 학제로 채택하여 민주교육 이념 실천에 부응하였으나 학벌주의의 팽창, 입시경쟁의 가열, 출세주의 교육풍토, 이기적 교육목적 등의 부작용이 극에 달하여있다. 이런 비교육적 현상은 교육정책의 혼란, 교육재정 확보의 인색, 교육행정의 비전문성 등이 더욱 악화시켜오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1천년대의 끝세기인 20세기에 숫하게 많은 정치사적 소용돌이를 겪어오면서도 교육의 양과 질면에 획기적 발전을 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서양사에 있어서 1천년대의 후기는 18세기부터 20세기까지로 보겠다. 18세기에는 계몽사상이 교육의 목적과 내용 및 방법을 지배하였다. 계몽사조는 교육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나타났다. 그런데 계몽주의 교육사상은, 인간의 작위적인 전통과 인습에서 벗어나 자연으로의 복귀를 주장한 자연주의 교육사조와, 국가관념과 국가의 구속으로부터 벗어나 범애적 입장에서 교육을 시도한 범애주의의 교육사조를 낳았다. 전자의 대표는 루소(1712-1778)가 있고, 후자의 대표에는 바제도(1724-1790)가 있었다.
한편 서양사에서 19세기의 교육은 신인문주의로 대표된다. 신인문주의는 계몽사조의 주지주의·합리주의·개인주의·반역사주의·반민족주의·반국가주의에 대립되는 정의주의·역사주의·민족주의·국가주의를 특징으로 한다. 신인문주의는 교육에 있어서 인간의 지(知)·정(情)·의(意) 영역에 걸쳐 풍요하고 폭넓은 발달을 지향하였다. 이러한 신인문주의의 흐름에 속하는 교육사상가로서는 페스탈로찌(1746-1827), 헤르바르트(1776-1841), 프뢰벨(1782-1852), 피히테(1762-1814) 등이 있다.
20세기는 교육의 기회균등, 교육의 민주화를 기도한 시기였다. 그것은 전세기에 이룩된 교육의 제도적 민주화에서 내용적 민주화를 가져온 세기였음을 뜻한다. 그야말로 총체적인 새 교육운동이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이러한 새 교육운동은 학교 교육내용의 개조운동으로서 나타났다. 그리고 새 교육운동의 두 번째 특징은 아동의 해방운동이다.
새 교육운동의 세 번째 특징은 학습지도법의 개발이었다. 개성과 개인차를 존중하는 학습지도법이 여러 형태로 고안 또는 연구되어 나왔다. 새 교육운동의 네 번째 특징은 지역사회학교 운동이었다. 지역사회학교 운동은 지식중심 학교와 아동중심 학교로부터 교육의 사회화를 중요시 하는 학교교육운동이다.
이런 일련의 새교육운동의 전개로 인하여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까지 유럽을 중심으로 전개된 교육의 주도권이 20세기 초를 기점으로 하여 미국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이러한 새교육운동은 지금까지의 교육선진지였던 유럽의 교육사상을 대신하는 미국교육사상의 탄생을 뜻한다. 20세기의 미국적 교육사상의 경향은 진보주의 교육사상이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아동중심, 경험중심, 생활중심 교육을 중요시 하는 진보주의 교육철학은 죤 듀이 같은 교육사상가의 노력에 의하여 20세기 교육사상의 주류를 형성하였다. 20세기 전반기의 아동중심·경험중심·생활중심의 진보주의 교육사상은 본질주의, 항존주의, 도덕적 재건주의 교육사상으로 연결되면서 서력기원 1천년대의 세계 교육흐름을 마감하고 2천년대로 넘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