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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책가방 없는 가을날

가을 운동회, 그 많던 아이들은 어디로 갔을까

가을운동회가 열리는 날이면 책가방을 들지 않고 학교에 갔다. 머리에는 청색 머리띠를 두르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교문을 들어섰다. 책가방 없는 등굣길은 그 자체만으로도 특별했다.

 

운동회는 대개 추석 무렵에 열렸다. 타지에 나가 있던 가족들이 고향을 찾아오는 때라 온 가족이 함께 운동회를 즐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한 달 전부터 달리기와 무용, 응원 연습을 했다. 운동장은 아이들의 구령과 발소리로 가득했고, 청군과 백군의 함성은 가을 하늘 높이 퍼져 나갔다.

 

초등 1학년  때 나는 여섯 명이 함께하는 현대무용 공연에 뽑혔다. 키가 작아 맨 앞줄 가운데에 섰다. 많은 사람의 시선을 한몸에 받는 자리는 어린 나에게 무척 무담되었을까, 아니면 철없어 담담 했을까? 돌이켜 보면 그때 받은 관심과 칭찬 속에서 내 자존감도 작은 싹을 틔웠을 것이다.

 

운동회 연습이 한창이던 날 추석에 큰언니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언니가 날마다 기다렸다. 연습을 마친 뒤에도 언니가 타고 올 저녁 버스를 기다리는 그리움은 지금의 표현으로 사무침 같은 것이었다. 인내가 어려운 시기 지금의 손녀손자가 초1학년 또래의 정서였다. ‘오늘은 언니가 올까.’ 어린 마음에 품었던 그리움은 해마다 추석이 돌아올 때마다 더욱 짙어진다. 그 때의 큰언니가 그리운 것이다.

 

그 시절 운동장에는 학생과 가족들이 가득했다. 언니와 동생, 부모와 친척들이 한자리에 모여 돗자리를 펴고 둘러앉아 도시락을 먹었다. 김밥과 삶은 달걀, 사이다 한 병도 운동장에서 함께 먹으면 잔칫상이 되었다. 그러나 그 많던 학생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지금 고향 학교에는 학생 수가 크게 줄어 성인 학습자 몇 명만 교실을 지키는 실정이다. 

 

요즘 학교 운동회의 모습은 많이 달라졌다. 온 가족이 모여 도시락을 나누던 풍경은 학교 급식으로 바뀌었고, 청군과 백군이 승부를 겨루던 경기는 등수를 가리지 않고 모두가 함께 참여하는 활동으로 변해 가고 있다. 경쟁보다 협력과 안전을 중시하는 변화에는 분명 교육적인 의미가 있다. 다만 온 마을이 학교 운동장에 모여 웃고 응원하던 정겨운 풍경이 사라지는 것은 못내 아쉽다.

 

내게 가을운동회는 책가방 없이 걷던 가벼운 등굣길이며, 청색 머리띠를 두르고 무대 한가운데 섰던 설렘이다. 기다림과 그림움이 있었고 가족과 도시락을 나누던 따뜻한 가을날이었다.

 

오늘의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 가을운동회를 무엇으로 기억할까. 등수와 승패는 없더라도 친구와 손을 맞잡고 달리던 순간, 가족의 박수 소리, 선생님의 따뜻한 격려만은 오래도록 마음속에 남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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