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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사진은 사실을 다 담지 못한다

사진은 눈앞의 한순간을 기록한다. 그러나 그 순간에 이르기까지의 과거와 그 뒤에 이어질 미래까지 담아내지는 못한다. 사진 속에 스며 있는 사람들의 사연과 시간의 깊이도 온전히 보여 주지 못한다.

 

하나의 거대하고 평평한 화강암 바위가 품어 온 세월과 가치를 어찌 사진 한 장에 모두 담을 수 있을까. 수천 년 동안 흐르는 물을 받아 내며 몸을 깎고, 수많은 사람의 발자국과 이애기를 기억해 온 바위의 이야기는 사진만 남아 있다.

 

금강산을 갈 수 있었던 때가 있었다. 정부의 햇볕정책과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소떼 방북 등으로 남북 화해의 물꼬가 트이면서 1998년 11월 18일, 동해항에서 금강산 관광선이 처음 출항했다. 처음에는 배를 타고 북한의 장전항으로 들어갔고, 2003년부터는 버스를 타고 비무장지대와 군사분계선을 넘어가는 육로도 열렸다.

 

나는 금강산을 두 번 찾았다. 한번을 바닷길로, 또 한 번은 통일교육으로 육로로 다녀왔다.

 

첫 번째 방문을 앞둔 전날, 우연히 금강산 사진전을 보았다. 전시장 벽을 가득 채운 금강산은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그러나 마음 한편에는 ‘사진이니까 저렇게 아름답게 보이는 것이겠지’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튿날 실제 금강산에 발을 디디는 순간, 나는 전날의 생각이 얼마나 짧았는지를 깨달았다. 사진이 금강산을 아름답게 꾸민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사진이 금강산의 진실을 다 담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눈앞에 솟은 기암괴석과 깊은 골짜기, 바위 사이로 흐르는 맑은 물은 사진보다 훨씬 웅장하고 생생했다. 아무리 좋은 사진이라도 산의 깊이와 바람의 결, 그 앞에 선 사람의 벅찬 마음까지 담을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거대한 바위마다 새겨진 글씨였다. 조선 시대 문인 양사언이 금강산의 빼어난 기상과 아름다움을 노래한 시를 비롯해 수많은 글이 바위 위에 남아 있었다.

 

‘봉래산 높고 높아 하늘에 닿았으니...신선이 학을 타고 오가는구나’

 

교과서에서 보았던 옛사람들의 글을 금강산 바위에서 직접 마주하니 더욱 가깝고도 분명한 우리의 산으로 다가왔다.

 

산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글밭이었다. 바위는 종이가 되고, 글씨는 세월을 견딘 문장이 되어 있었다. 교과서 속에서 평면으로 머물던 역사와 문학이 금강산의 바위 위에서 비로소 숨을 쉬었다. 현장 체험의 중요한 까닭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눈으로 보고, 발로 걷고, 온몸으로 느낀 배움은 오래도록 마음속에 남는다.

 

두 번째에는 버스를 타고 육로로 금강산을 찾았다.

 

“이 길을 넘어서면 북한입니다.”

 

안내자의 말이 들렸지만 처음에는 실감이 나지 않았다. 차창 밖에는 사람의 모습이 거의 보이지 않는 넓은 들판이 고요하게 펼쳐져 있었다. 같은 하늘 아래 이어진 같은 산천인데도 쉽게 오갈 수 없는 땅이었다. 말없이 계속되는 들판을 바라보며, 가까우면서도 너무나 먼 분단의 현실을 비로소 가슴으로 느꼈다.

 

2008년 7월 금강산 관광이 중단된 뒤 다시 갈 수 있는 길은 열리지 않았다. 처음에는 잠시 닫힌 문이라고 생각했다. 기다리면 곧 다시 열릴 줄 알았다. 그러나 잠깐이라고 여겼던 시간이 어느덧 긴 세월이 되었다.

 

그곳에서 부를 노래 「그리운 금강산」의 음정과 가사를 외워 부르고 자주 허밍(humming)을 하곤한다. 박자 맞추기가 여간 까다롭지 않다. 첫 가사가 넷째 박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하나-둘-셋-누구의 넷에 첫가사를 시작하면 음을 노치지 않는다. 맛을 살리기 위한 작곡자의 전략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 노래를 부르면 사진 속 금강산이 다시 살아난다. ‘이제야 자유만민 옷깃 여미며 그이름 다시부를 우리 금강산’ 거대한 바위와 맑은 물, 바위마다 새겨진 글씨, 군사분계선을 넘을 때의 떨림, 사람 없는 들판을 바라보며 느꼈던 먹먹함까지 하나씩 되살아났다.

 

금강산을 처음 마주했을 때의 벅찬 숨결도, 바위에 새겨진 글을 발견했을 때의 반가움. 춘원 이광수의 금강산 예찬 새김글도 다시 와서 아이들과 감상할거라 생각했다.

 

“옥류동이 어이하여 옥류동인가 흐르는 물은 벽옥이요 바위가 백옥이라 벽옥이 백옥으로 흐르니 옥류인가 하노라.”

 

사진은 한 시대의 흐르는 역사와 그 뒤에 이어질 세월까지 설명하지는 못한다. 사진 속에 머물러 있는 그리운 금강산. 언젠가 길이 다시 열려 아이들의 아이들과 손을 잡고 그 금강산을 올라 그리운 금강산을 부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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