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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언·칼럼

적대적(敵對的) 관계의 교실을 공존(共存)의 배움터로

오늘 아침도 산책길에 거주지 아파트 단지 인근의 고등학교 정문을 들어서는 아이들의 발걸음이 눈에 들어온다. 하루가 시작되는 이 순간에 상쾌한 배움에 대한 기대가 아닌, 전쟁터에 임하는 병사들의 중압감이 묻어나고 한없이 무겁게만 느껴진다. 사실인즉, 현행 교육 체제 속에서 교실은 반가운 얼굴의 친구들을 만나 꿈을 가꾸는 터전이 아니라, 곁에 앉은 친구를 딛고 올라서야 내가 살아남는 일종의 격투장으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주지하는 것처럼 학교에서의 내신 성적은 삶의 첫 관문인 대학 진학을 좌우하는 절대적 지표가 되었고, 등수 하나에 희비가 갈리는 일상을 매일 반복하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냉혹한 현실을 방치한 채, 아이들에게 “친구와 사이좋게 지내라”, “협동심을 키워야 한다”는 비현실적인 훈계를 넉살 좋게 아무런 거리낌 없이 던진다. 성적표의 소수점 아래 숫자로 친구를 적대시하도록 구조화된 교실에서 나눔과 연대를 말하는 것은 역설이자 기만이다. 2025년부터 전면 도입된 고교학점제조차 이러한 줄 세우기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진로와 적성에 따라 과목을 스스로 선택한다는 당초의 거창한 취지는 간데없고, 학생들은 오직 수강 인원이 많아 내신 등급을 따기 유리한 과목이나 수능 출제 과목으로만 쏠리고 있다. 최근 개선된 내신 5등급제와 상대평가 병기라는 제도적 안착 속에서도 ‘성적 유불리’가 진로 탐색이라는 교육적 이상을 여전히 압도하고 있는 탓이다.

 

상대평가 체제 아래서 학업 성취는 내가 얼마나 깊이 이해했는가가 아니라, ‘남보다 얼마나 앞섰는가’로 측정된다. 많은 학생이 고득점을 해도 상대적으로 등급을 가르니 결코 기쁘지 않은 것이다. 이는 교육적으로 가장 치명적인 도덕적 해이를 낳는 후유증을 유발한다. 예컨대, 내가 100점을 맞아도 친구들이 모두 100점을 맞으면 내 가치는 하락하고, 반대로 친구가 시험을 망쳐야 나의 석차가 올라가는 비정한 생존 방식이 내면화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교육개발원과 주요 교육 연구 기관의 조사에 따르면, 고교생의 절반 이상이 학업으로 인한 극심한 스트레스를 호소하며, 친구를 동반자가 아닌 ‘잠재적 경쟁자’로 인식한다고 응답했다. 타인의 실패를 은근히 바라는 교실에서 공동체적 공감이나 다정한 협력은 설 자리를 잃는다. 상대평가가 유발하는 소모적인 내신 전쟁은 아이들의 영혼을 피폐하게 만들고, 교실 내 무관심과 교우 관계의 파탄을 부채질하는 근본 원인이 되고 있다.

 

​우리가 바라는 교육의 모습은 단순히 이상론에 머물지 않는다. 세계의 많은 교육 선진국은 일찍이 상대평가에 의한 등수 매기기가 아이들의 창의성과 협동 역량을 파괴한다는 점을 파악하고 평가의 체질을 획기적으로 바꾸었다. 가장 대표적으로 ​핀란드의 평가 혁신을 보자. 핀란드 교육은 표준화된 상대평가 고사를 배제하고 철저한 성취 기준 중심의 절대평가와 교사 자율 평가를 시행한다. 경쟁 대신 ‘모든 아이의 완주’를 목표로 삼으며, 성적이 부진한 학생을 위해 보충 수업과 협력 학습을 집중 지원한다. 그 결과 핀란드는 세계 최고 수준의 학업 성취도와 동시에 가장 낮은 학생 스트레스 지수를 기록하는 성과를 거두고 있다.

 

또한 ​미국의 프로젝트 기반 학습(PBL)을 보자. 미국 다수의 혁신학교에서는 집단 지성을 활용한 프로젝트 평가를 도입하고 있다. 혼자 독점하는 지식이 아니라, 팀원들과 소통하고 협력하여 공동의 과제를 해결하는 과정 자체를 평가함으로써 ‘함께 성장하는 배움’을 몸소 체득하게 한다. ​이들 국가가 증명하는 진실은 명확하다. 남을 누르는 상대적 수치보다, 한 인간이 전날에 비해 얼마나 성장했는가를 측정하는 ‘절대적 기준과 성장 지향 평가’가 도입될 때 비로소 교실이 정상화된다는 사실이다.

 

우리 ​교실이 한 줄 세우기의 경쟁터에서 다채로운 잠재력을 피워내는 배움터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교육 대전환을 향한 담대한 결단이 필요하다. 첫째, ​상대평가제도의 해체와 절대평가의 안착이다. 내신 등급을 나누어 석차를 매기는 가혹한 상대평가 기재 방식을 단계적으로 폐지하고, 학생이 도달한 학업 성취 기준만을 엄격히 평가하는 성취 평가제로 완전히 전환해야 한다. 타인을 마주 보는 경쟁이 아닌, 자기 자신의 성장을 목표로 삼을 때 고교학점제 본연의 다양성과 과목 선택권도 비로소 살아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지식을 암기해 객관식 정답을 찾는 시험 대신, 서술형·논술형 평가와 모둠별 탐구 프로젝트의 비중을 획기적으로 늘려야 한다. 동료의 의견을 경청하고 조율하는 과정 속에서 성과를 낼 때, 친구는 ‘딛고 넘어설 상대’가 아니라 ‘함께 먼 길을 걸어갈 소중한 동반자’로 재인식될 것이다.

 

셋째, ​대학 입시제도의 다변화와 귀천 없는 학벌 해체이다. 수능과 내신의 단일 점수로 정렬되는 대입 구조를 깨부수지 않고서는 교실의 평화는 요원하다. 각 대학이 학생의 수치화된 등수뿐만 아니라, 교실 안에서 보여준 협동적 인성과 탐구의 깊이를 다각도로 반영할 수 있도록 입시 전형의 공공성을 대폭 강화해야 할 것이다.

 

​교육의 궁극적 목적은 승자를 선별하고 패자를 낙인찍는 잔인한 선발 투수가 되는 것이 아니다. 교육은 미완의 존재들이 서로의 온기를 나누며 함께 자라나도록 돕는 인자한 조력자여야 한다. ​아이들에게 친구를 사랑하라고 가르치기 전에, 친구를 사랑해도 내가 손해 보지 않는 교실 환경을 먼저 만들어 주는 것이 어른들의 최소한의 도리이자 책무이다. 남을 넘어서야만 승리하는 서바이벌의 룰을 깨부수고, 서로를 끌어주며 함께 성장의 기쁨을 누리는 배움터로 바뀔 때, 우리 교육은 비로소 희망을 말할 수 있다. 승자도 패자도 없는 교실, 모두가 저마다의 빛깔로 피어나는 공존 즉, 상생의 배움터를 향해 이제 온 사회가 용기 있는 첫걸음을 과감하게 내딛도록 제도를 만들어야 할 때가 바로 지금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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