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네주신 감, 잘 먹겠습니다.”
감사 인사를 전하고도 감 몇 알에 담긴 마음을 오래 들여다보았다. 누군가에게는 가을이면 흔히 만나는 과일이겠지만, 내게는 어린 시절의 기억과 한 사람의 정성을 함께 건네받은 선물이었다.
어릴 적 우리 집에도 커다란 감나무가 있었다. 그 나무에서 열리는 감을 우리는 ‘고동시’라고 불렀다. 나무에 매달린 감이 붉게 익어 홍시가 되면, 그 달고 부드러운 맛으로 가을이 왔음을 느꼈다.
감이 익기 한참 전부터 감나무는 우리에게 즐거움을 내주었다. ‘감똘개’라 부르던 감꽃을 지푸라기 끈에 엮어 목걸이를 만들어 목에 걸고 다녔으며 하나씩 따 먹으며 나무 아래를 맴돌았다. 꽃은 놀이가 되고 열매는 먹거리가 되었다. 감나무는 그렇게 어린 날의 몸과 마음을 함께 키워 주었다.
큰 나무에서 거둔 감은 곶감으로 말리고 홍시로 익혀 겨우내 먹을 간식으로 갈무리했다. 집안에 특별한 날이 있으면 어머니는 직접 팥시루떡을 만드셨다. 방앗간에서 빻아 온 쌀가루와 삶아 으깬 팥을 켜켜이 시루에 안치고 김을 올리셨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팥시루떡 위에 장독에 보관해 둔 살얼음 낀 홍시를 얹어 먹던 따뜻한 떡과 차가운 홍시가 입안에서 어우러지던 맛은 어머니의 모습과 함께 생생하다.
이번에 선물받은 감이 열린 나무도 우리 집 감나무만큼 오랜 세월을 살아온 듯했다. 어쩌면 우리가 태어나기 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을 것이다. 아이가 자라 어른이 되고 가족의 모습이 달라지는 동안에도, 나무는 해마다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며 그 자리를 지켰으리라.
무성했던 감나무는 이번에 가지를 잘라 단발머리를 한 듯한 모습이었다. 오래 뻗어 있던 가지와의 인연은 거기까지였겠지만, 남은 자리에서는 다시 건강한 순이 돋을 것이다. 새 가지는 햇빛과 바람을 맞으며 자라고, 다시 열매를 맺을 것이다.
사람의 삶도 그러하지 않을까. 익숙한 역할을 내려놓고 오래 붙잡았던 일을 마무리하면 한동안 허전하다. 내 삶을 가득 채웠던 일이 사라진 자리를 무엇으로 채워야 하나 할때가 있었다. 그러나 그 빈자리에서 새로운 배움이 시작되고, 뜻밖의 만남이 찾아오기도 한다.
가지를 덜어 낸 감나무를 보며, 가지를 덜어 낸 뒤에도 다시 맺을 열매를 기다려 볼 것이다. 감보다 더 오래 마음에 남은 것은 '잘아서 미안해요'다. 비움과 나눔에는 겸손도 있음을 배움으로 체험한다. 나에게는 추억과 함께 건네준 이 귀한 것 이 얼마나 큰선물인지. 나도 누군가에게 이런 따뜻한 마음을 건네며 값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