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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

신금숙 화가의 달항아리에 담긴 삶의 지혜

33년 교직의 성실함, 붓끝에서 꽃피다
제5회 개인전 ‘비움과 채움’, 인사동서 33점 선보여

 

 

“무엇을 더 채울 것인가보다 무엇을 비우고, 그 자리에 무엇을 채울 것인가를 생각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7일 오전 11시, 서울 인사동 갤러리 라메르 1층 제2전시실. 신금숙 화가의 제5회 개인전 ‘비움과 채움’ 오픈식에서 작가는 전시장을 찾은 이들에게 이 같은 바람을 전했다. 33점의 작품에는 달항아리와 들꽃, 국화, 작약, 포도밭 등 자연의 아름다움이 펼쳐져 있었다. 그러나 작품이 건네는 이야기는 단순히 꽃과 풍경의 아름다움에 머물지 않았다. 욕심과 집착을 덜어낸 자리에 감사와 이해, 용서와 포용을 채우자는 삶의 성찰이었다.

 

이날 오픈식에는 가족과 친지, 동덕여고 동창, 세종대학교(옛 수도여자사범대학교) 동문, 서울과 울산에서 함께 근무했던 교직 동료 등 30여 명이 참석했다. 현재 하남 미사지구에서 운영하는 그림방의 어린 제자까지 전시장을 찾아 스승의 5번째 개인전을 축하했다. 오랜 세월 이어온 인연들이 한자리에 모인 전시장은 작품을 감상하는 공간인 동시에 삶의 궤적을 함께 돌아보는 따뜻한 만남의 장이었다.

 

이날 사회는 며느리가 맡아 눈길을 끌었다. 참석자들을 소개하고 전시의 특징과 대표작을 안내하며 가족의 시선으로 작가의 삶과 작품을 소개했다. 작품 감상에 이어 신금숙 작가의 인사말과 오빠 신재옥 전 초등교장의 격려사가 이어졌다. 참석자들은 오랜 인연을 나누며 작가의 새로운 출발을 응원했다.

 

 

신 작가는 “전시회를 준비하느라 잠 못 이루는 날도 있었지만, 좋아하는 분들의 격려가 큰 힘이 됐다”며 “귀한 걸음을 해 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작품을 보시면서 무엇을 비울 것인지, 남은 인생을 무엇으로 채울 것인지 생각해 보셨으면 좋겠다”며 “잠시 시름을 내려놓고 행복하고 밝은 마음으로 돌아가시길 바란다”고 전했다. 그는 또 “앞으로도 잘 지켜봐 주시고, 더 좋은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응원해 달라”고 덧붙였다. 작품을 통해 관람객과 마음을 나누고, 그 격려를 다시 창작의 힘으로 삼겠다는 다짐이었다.

 

이번 전시의 중심 소재인 달항아리는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철학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둥글고 넉넉한 형태는 풍요를 떠올리게 하지만, 그 안의 비어 있는 공간은 비움의 의미를 품는다. 신 작가는 달항아리 위에 꽃을 피워내며 비워진 자리가 새로운 아름다움으로 채워지는 모습을 표현했다.

 

달항아리 위로 오색 들꽃이 만발하고 와인잔이 어우러진 작품에서는 여백과 화려한 색채가 조화를 이룬다. 은은한 회색 배경 위로 노란 국화가 피어난 작품은 절제된 화면 속에서도 생명력을 드러낸다. 푸르고 보랏빛을 띠는 야생 국화가 달항아리의 넉넉한 여백과 만나는 작품에서는 화려함보다 고요함이 먼저 다가온다.

 

 

안개 낀 포도밭을 그린 작품도 같은 맥락에서 읽힌다. 흐릿하고 넓게 펼쳐진 공간은 비움을, 풍성하게 열린 포도송이는 채움과 감사를 상징한다. 작가에게 비움은 결핍이나 포기가 아니다. 새로운 가치를 받아들이기 위해 스스로 공간을 마련하는 적극적인 선택이다.

 

신 작가는 전시 주제를 정한 이유에 대해 “현대는 너무 빠르게 변화하고 있고, 사람들은 그 속도에 맞춰 자신을 채우기 위해 바쁘게 살아간다”며 “저 역시 작품 활동을 하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미움과 탐욕, 시기, 권력에 대한 욕망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비우고 내려놓아야 행복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렇게 남겨진 공간이 있어야 비로소 감사와 이해, 용서와 포용으로 채울 수 있다”며 “비움이 있어야 채울 수 있다는 진리를 작품을 통해 표현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전시장에 소개된 작가의 글 「비움이라는 그릇, 그 위에 피어나는 진정한 채움」도 이러한 생각을 구체적으로 풀어낸다. 채움에만 매달리면 마음은 욕심과 불안으로 가득 차지만, 불필요한 감정과 집착을 덜어내면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선명해진다는 이야기다. 작품은 관람객에게 ‘얼마나 많이 채웠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잘 비우고 바르게 채웠는가’를 묻는다.

 

 

신금숙 작가의 화업은 33년간 이어온 교직 생활과 맞닿아 있다. 세종대학교 미술과를 졸업한 그는 여러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으며, 울산교육청 장학사를 거쳐 상안중학교 교장을 역임했다. 교사로서 학생의 성장을 기다리고 학교를 이끌었던 시간이 이제는 작품 한 점을 완성하기 위한 인내와 정성으로 이어지고 있다.

 

신 작가는 교육자로 살아온 시간이 그림에 어떤 영향을 주었느냐는 질문에 “33년 동안 교직에 있으면서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감과 성실함이 몸에 밴 것 같다”며 “작업하는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성실하게 정성을 다해 그림을 그리게 된다”고 말했다. 작품을 세상에 내놓는 일은 여전히 조심스럽다. 작가는 이를 자신의 민낯을 보여주는 것에 비유했다. 그럼에도 한곳에 머물지 않고 예술적으로 발전하기 위해 도전하며, 그 과정을 여러 사람과 나누는 시간이 무엇보다 가치 있다고 했다.

 

전직 교육자에서 전업 화가로 삶의 방향을 넓혀온 그는 은퇴 이후에도 배움과 창작을 멈추지 않았다. 2017년 예술의전당 개인전을 비롯해 꾸준히 작품을 발표했고, 현재도 하남 미사지구의 그림방에서 붓을 잡고 있다. 이번 전시는 그동안 쌓아온 작품 세계를 선보이는 자리이자, 새로운 시선으로 삶을 바라보려는 작가의 현재를 보여주는 무대다.

 

 

이번 오픈식에서 특히 눈길을 끈 것은 그림방의 어린 제자까지 스승의 전시장을 찾았다는 사실. 하남 미사초 3학년 조윤찬 학생의 어머니 김희숙 씨는 아들이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그림방에 다녔다고 전했다. 김 씨는 “아이가 원래 그림을 좋아했는데, 특히 색칠할 때는 흥얼거리면서 재미를 만끽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며 “학교 미술 시간에도 자신감이 생긴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작가가 전시장에 내놓은 작품과 그림방에서 어린이들과 나누는 시간은 서로 다른 듯하지만, 그 바탕에는 공통점이 있다.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표현할 수 있도록 기다려 주고, 각자의 가능성이 자라날 수 있도록 돕는 일이다. 교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던 경험은 화가로서 어린 제자들의 성장을 지켜보는 지금도 살아 있다.

 

오빠 신재옥 전 초등교장은 격려사에서 예술의 길을 걸어온 동생의 노력을 돌아봤다. 그는 “힘들고 어려운 예술의 길에서 자신의 혼을 갈아 넣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봤다”며 참석자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고 앞으로도 동생을 격려해 달라고 당부했다. 작품 한 점을 완성하기까지의 고뇌와 노력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가족의 말은 전시의 의미를 더욱 깊게 했다.

 

 

이날 모인 동문과 교직 동료, 가족과 제자들은 서로 다른 시절에 작가와 인연을 맺었지만, 한 공간에서 그림을 매개로 다시 만났다. 신 작가는 “저의 개인전을 축하하기 위해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찾아와 주신 분들께 너무나 감사하다”며 “소중한 인연을 오래 간직하기 위해 더욱 낮은 자세로 베풀고, 더 좋은 작품으로 기대에 부응하겠다”고 다짐했다.

 

그에게 이번 전시는 작품을 보여주는 자리를 넘어 자신을 돌아보고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는 시간이었다. 교직에서 배운 성실함, 오랜 세월 그림을 그리며 얻은 성찰,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응원이 하나로 모였다. 신금숙 작가의 ‘비움과 채움’은 10월 12일까지 인사동 갤러리 라메르 1층 제2전시실에서 관람객을 만났다. 달항아리의 빈 공간에 꽃이 피어나듯, 우리 삶에도 무엇인가를 덜어낸 뒤에야 비로소 들어설 수 있는 가치가 있다.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작가는 조용히 질문한다. 지금 내 마음에는 무엇이 가득 차 있는가. 그리고 앞으로 무엇을 비우고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그 질문에 잠시 귀 기울이는 것만으로도 전시장을 찾은 이들에게는 또 하나의 배움과 채움이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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