師道는 人道보다 우선해야할 상위개념
계율 어길수 없다
혜원(慧遠)이라는 고승이 계셨다. 많은 제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임종을 하고 있었다. 안타까워하는 제자들이 술이라도 조금 드시고 기운을 차리십사하고 여쭈었다. 술은 불도의 계율을 어기는 것이니 연명하고 싶어 계율을 어길수는 없다며 거절했다.
이에 제자들은 굳이 그러하시다면 ‘미음으로도 드셔 기운을 차리셔야 합니다’하고 미음상을 드려 간곡하게 청했다. 그 시점이 정오를 지났던지 스승은 출가한 자는 정오를 넘어 식사를 하지 않는다 하고 미음상을 물리는 것이었다.
다급해진 제자들은 굳이 그러하시다면 꿀물이라도 입안을 적셔야 하옵니다고 하자 혜원은 병중에 꿀물을 먹지 말라는 계율의 유무를 몰랐던지 찾아보고서 먹던말던 하겠다면서 경서를 갖고 오도록 시켰다.
갖고 온 경서를 뒤적이다가 스승은 임종을 하고 만 것이다. 이 이야기는 스승의 고지식한 일면을 빗댈때 곧잘 인용되는 고사이기도 하고 스승의 길이란 세속의 일이나 죽고 사는 인생사보다 웃도는 상위 개념이라는 것을 말할 때 인용되기도 한다.
사도는 인도에 우선돼야하며 그 권위나 위신은 이치나 사리에 어긋나더라도 지켜져야한다는 전통적 인식은 우스개 이야기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옛날 서당은 한 마을의 문화센터였고 그 서당 훈장은 아이들에게 글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대체로 문맹인 마을 사람들의 편지를 써주고 외지에서 온 편지를 읽어 주었으며 이사하고 장담글 날받이를 해주고 또 결혼단자나 제사축문을 써주는 일까지 도맡았었다. 어느 날 한 마을사람의 장모제사를 당해 축문을 써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훈장은 책을 뒤져 장모 제사 축문을 써주었는데 자칫 실수를 하여 친어머니 제사때 읽는 축문을 써주었다.
모두들 엎드리고 축문을 읽어내려가 누군가가 그 축문이 좀 이상하다는 말이 나왔다. 제사를 중단하고 훈장한테 달려갔다. 축문 잘못 읽으면 제사 지내나 마나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서 이 대목이 장모가 돼야하는데 친어머니로 됐다고들 한다하여 다시 써달라고 부탁했다. 이에 훈장은 휭 돌아앉으며 이렇게 말했다. “야 이사람아 자네 장모가 틀리게 죽은 것이지 내가 틀릴리 있나”
스승은 몰라서도 안되고 틀려서도 안된다. 몰라도 모른체 말아야 하고 틀려도 틀린체 말아야 한다. 심지어 제자 앞에서 스승은 뭣인가를 먹거나 졸거나 뒷간에 가서는 안되었다. 곧 짐승이 하거나 여느 사람이 하는 짓을 스승이 해서는 안된다는 발상은 스승이 대행하는 진리와 도리는 그같은 짐승이나 사람들의 보편성으로 오염시켜서는 안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감정을 억제 못해도 스승으로서 결격이었다.
몰라서도 안되고
조광조(趙光祖)가 회천에서 김굉필(金宏弼)에 사사하고 있을 때 일이다. 어머니에게 보내드리고자 말리고 있는 굴비를 고양이라는 놈이 물고가는 것을 김굉필이 보고 ‘저놈의’하고 화를 냈다. 이를 곁에서 보고있던 조광조가 그 흠을 아뢰었고 김굉필은 그 실수를 자인했던 것이다. 스승되기가 그토록 어려웠던 전통사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