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한 기억을 위해 기억은 변한다
목격자 증언이 생사람 잡을 수도…
선생님은 16세기 때 영국의 탐험가이자 군인인 월터 롤리를 아실 것입니다. 바로 ‘세계사’의 저자입니다. 이 사람에게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있습니다.
제임스 1세 즉위 후 월터 롤리는 대역죄에 몰려 런던탑에 갇혀 있으면서 ‘세계사’를 집필했습니다. 제1권을 끝내고 제2권 집필에 들어간 어느 날, 우연히 창밖을 내다보고 있는데, 큰 패싸움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그 패싸움을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자세히 관찰했습니다. 그러나 다음날 또 다른 목격자의 이야기를 들은즉, 자기가 정확하게 봤다고 생각한 것과 전혀 달랐습니다. ‘당장에 내 눈으로 본 것도 분명치 않은데, 어떻게 먼 옛날의 진실을 알아낼 수 있겠는가.’ 이렇게 생각한 그는 모든 원고를 불태워 없앴습니다. 이래서 그의 세계사는 미완성으로 끝나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기억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가령 “옆집 개가 고양이를 쫓아가다가 트럭에 치여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난 후 며칠 지나면 아마 “옆집 개가 길을 건너다가 죽었다”고 기억할 것입니다. ‘고양이를 쫓은 것’이라든가 ‘트럭에 친 것’은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또 TV의 오락프로그램 중에는 어떤 이야기를 들은 사람이 그 다음 사람에게 이야기를 똑같이 전달하면서 여러 사람을 거치는 게임이 있습니다. 이 경우 첫 이야기와 맨 나중 이야기가 상당 부분 달라지는 것이 보통입니다.
우리는 보다 완전한 기억을 위하여 상식을 이용하거나 우리가 가진 도식에 맞게 짜 맞춥니다. 그리하여 이야기 내용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어떤 틀과 맞지 않으면 내용을 삭제하거나 지나치게 확대시켜 새로운 내용을 첨가합니다. 즉 기억을 재구성합니다.
기억을 짜 맞춘다는 것은 일상생활에서 중요한 결과를 초래하기도 합니다. 바로 목격자 증언입니다. 특히 법정에서의 목격자 증언이 사실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니고 기억을 짜 맞추어서 이루어진다면 예상치 않은 결과를 초래하기도 합니다. 10여 년 전 우리나라에 법정증인 보복살인 사건이 발생한 적이 있었습니다. 자신의 범죄에 불리한 증언을 한 사람을 찾아가, 그의 아들과 아들의 친구를 살해하고 부인을 중태에 빠뜨리고 달아난 사건이었습니다. 설사 자기에게 불리한 증언을 했다 하더라도 그것이 사실이라면 이렇게까지 끔찍한 범행을 저지르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렇기에 어찌 보면 증인이 상당 부분 과장되거나 잘못된 증언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구심도 들게 됩니다.
목격자는 일반적으로 여러 정황에 대해 상당한 확신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건은 오래 전에 일어난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부적인 내용은 희미해집니다. 이렇게 희미해진 부분을 목격자는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자신이 세운 가정에 맞도록 추론하여 채워 넣습니다. 이 이 때문에 실생활에서는 자기의 눈을 과신한 목격자 때문에 생사람이 애꿎은 일을 당하는 경우가 벌어지기도 합니다.
이런 실험이 있습니다. “벤치에 놓인 가방에 한 남자가 손을 대고서는 무엇을 자기 코트 밑으로 챙겨 넣고 지나갔습니다. 주인이 돌아와 녹음기를 도난당했다고 말했습니다. 많은 목격자들이 그 녹음기에 대해 색깔, 크기, 모양 등 상세하게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그 가방에 녹음기는 원래 없었습니다.” 바로 목격자 증언의 허구성을 알아내기 위한 실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