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어 죽겠어요. 천천히 좀 가세요!”
국토순례를 위한 ‘지옥훈련’에 처음 들어가면 아이들은 이렇게 말한다. 끈기도 참을성도 부족한 요즘 아이들. 그러나 열흘에 불과한 ‘국토 도보순례’는 이런 아이들을 눈에 띄게 성장시킨다.
해마다 여름방학이면 열 명 남짓한 제자들과 국토 도보순례를 떠나는 윤병용(45· 서울 창북중· 과학)선생님. 10년 국토순례의 노하우와 에피소드를 담은 ‘우리는 걷는다’(효형출판)라는 책을 펴낼 만큼 국토순례에 대한 그의 애정에는 남다른 무언가가 있다.
“독일에 ‘반더포겔운동’이라는 청년여행운동이 있어요. 이 운동이 국토사랑을 북돋워 독일 통일에 기여했다는 글을 읽고서 우리 아이들에게도 이런 교육을 하면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1995년. ‘국토순례반’은 그렇게 첫 발자욱을 내딛었다. 처음엔 국토 종단과 횡단을 번갈아 했지만, 2001년부터는 강원 화진포를 출발, 경기 임진각까지의 350㎞ 코스를 그들만의 순례지로 확정지었다. 백두대간을 넘는 것이 힘들기는 하지만 분단 현장을 체험하며 통일의 당위성을 체득하고 우리 땅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데는 이 코스가 제격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10㎏이 넘는 배낭을 지고 여름 무더위 속에 하루 9시간씩 걷기란 어른들도 쉽지 않아요. 하지만 아이들은 끝까지 잘 해냅니다. ‘우리는 하나’라는 협동심과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함께 땀 흘리는 과정을 통해 자연스레 몸에 체득하는 것입니다.”
5월이면 희망자를 뽑는다. 그리고 매주 산행(6월). 운동장 구보(7월)로 체력을 키우고 걷는 법, 배낭 꾸리기, 텐트 설치법, 취사, 설거지, 응급처치 훈련까지…. 해마다 그는 이 힘든 과정을 되풀이한다.
“중독성이 있는 것 같아요. 참가 학생들 중 절반은 다음 해 다시 신청하고 졸업생이 다시 참여하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학생들이 줄어드는 것 또한 현실입니다. 힘든 거 싫어하고, 방학에도 빡빡한 학원 스케줄에 휘둘리는 요즘 세태 탓이겠지요.”
그래도 그는 교단에 서는 한 아이들과 국토 도보순례를 계속할 것이라고 한다. 논두렁, 밭두렁 사이로 난 비포장 길 걸으며 야생화를 배우고, 개울을 만나면 헤엄치고, 밤이면 별자리를 찾고 별똥별을 헤며, 촌로들의 푸근한 고향 사랑 이야기를 듣는 것과 같은 체험교육을, 교실 속 교과서를 통해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정서교육을, 포기 할 수 없기 때문이다.
“350km라는 긴 거리를 걸어냈다는 성취감은 맛보지 않은 사람은 모릅니다. 마지막 임진각에 섰을 때 아이들의 미소를 보면 알 수 있어요. 처음 연습 산행 때 힘들다며 천천히 가자던 아이들의 모습은 간 데 없습니다. 그리고 성취감과 자신에 찬 아이들이 이렇게 말하죠. ‘나는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가자! 영 맨!’이라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