俗人과 달라야 한다는 인식
스승 풍자한 ‘호질’
우리 옛 전통사회에는 스승에 대한 곱지않은 시각도 없지 않았다. 그 시각 가운데 하나로 공자 맹자를 내세워 도학자연 하면서 위선적인 생활을 한다는 허점을 들 수 있다. 곧 가르치는 내용과 행실이 일치하지 않은데 대한 공감대가 여염에 형성 돼 있었던 것이다.
이 스승의 허점을 신랄하게 풍자한 것이 박연암의 소설 ‘호질(號叱)’이다. 도학자연한 훈장 북곽선생이 동리자라는 이웃 동네의 청상과부집에 가서 몰래 데이트를 하는데 그 과부의 아들들이 그 밀회의 말소리를 엿듣고 의논을 했다.
북곽 선생같은 도학자가 그러할리는 만무한지라 뒷산에 여우란놈이 북곽 선생으로 둔갑해서 과부 어머니를 꼬시는 것으로 판단, 작당을 해서 몽둥이질을 하며 여우를 쫓았다.
도망치다 오줌독에 빠졌고, 간신이 빠져나오자 호랑이가 앞을 막고 으르릉거린다. 이에 호랑이의 인격을 찬양하고 목숨을 구걸하자 호랑이는 북곽 선생의 위선적인 생활을 준엄하게 꾸짖는다.
우리 여염에 떠도는 우스개 이야기도 도학군자이길 기대하는 서당 훈장의 당위성과 그러하지 못한 실제 행실을 두고 하나의 유형을 형성하고 있다.
훈장이 글을 가르치다 문득 잠이 들었다. 눈을 깨고 보니 아이들 앞인지라 변명을 했다. “물어볼 것이 생겨 꿈속에서 공자님을 찾아가 잠시 뵙고 왔다”했다. 그 이튿날 제자들이 스승의 흉내를 내어 낮잠을 잤다. 매로 쳐 잠을 깨우자 “저도 낮잠 잔 것이 아니라 공자님 뵈러 갔었습니다”했다.
훈장이 “갔더니 공자님이 뭐라 하시데”하고 묻자 대꾸는 이러했다. “공자님 말씀 하시길 어제 훈장이 오지도 또 만나지도 않았다 하십데다”
제자가 낮잠을 자자 훈장은 일깨워 꾸짖었다. 논어의 구절을 인용 썩은 나무나 분토(糞土)나 다름없는 놈이라고 꾸짖었다. 이에 제자는 꿈에 공자님을 뵙고저 갔는데 왜 꾸짖으십니까 하자 훈장은 “공자님이 대낮 낮잠자는 놈따위의 꿈에 나타나리라고 보느냐”했다.
이에 대한 제자의 대꾸는 이러했다. “공자님께서 훈장처럼 발소리 죽이며 밤마실 다니지는 않을 것 이기에 낮에 뵙고져 한 것 입니다”
격에 맞지 않거나 어울리지 않은 것을 빗댈 때 ‘열두자녀 둔 훈장꼴’이라 했다. 열두 자녀는 흥부처럼 과분하게 많은 아이를 줄줄이 낳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흥부가 가난하지만 않았던들 많은 아이를 둔것은 선망받을 일이요. 훈장도 도학군자여야만 하는 훈장만 아니면, 열두 자녀는 선망받을 오복(五福)중의 하나다.
낮잠자는 것도 안돼
한데 어울리지 않고 격에 맞지 않는 것은 스승에 대한 여염에 형성된 인식이나 선입감 때문이다. 도학군자여야만이 아이를 가르칠 수 있고, 도학군자는 아이를 낳는 등의 속인들이 하는 본능적 행위와는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당위성에 묶여살아야 했던 스승이다.
그래서 낮잠도 자서는 안되고 밤마실 다닐때도 발소리를 죽여야하며, 이웃마을 청상과부를 짝사랑해도 안되었다. 인식과 본질틈에서 너무 고달픈 삶을 영위해온 우리 전통사회의 스승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