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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연구

(21) 혈액형과 성격

혈액형 맞아 보이는 건 바넘효과 때문
복잡한 것 단순화시키는 것, 인간특성

작년 말 지방의 한 금융회사가 직원을 모집하면서 특정 혈액형으로 지원자를 제한하다 물의를 빚었습니다. 이 회사는 취업알선사이트에 “신용결격 없고 성실한 분. □형과 ☆형만 지원해 주세요. 다른 형은 지원 삼가바랍니다.”라는 내용의 채용공고를 냈습니다. 이를 한 네티즌이 다른 사이트에 올려 널리 퍼지게 되었고 항의의 글이 잇따랐습니다. 혈액형 채용공고가 큰 파문을 일으키자 채용공고 담당자는 공고내용 중 혈액형 부분을 삭제하는가 하면 사죄의 글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이따금씩 혈액형과 성격의 상관관계가 입에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혈액형을 제목으로 한 노래가 있었는가 하면 영화로도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한 케이블 방송사에서 몇 달 전 혈액형과 성격의 상관관계에 대해서 우리나라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조사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 조사 결과 전체 응답자의 75.9%가 상관관계가 밀접하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합니다. 과연 혈액형과 성격은 상관이 있는 것일까요?


원래 혈액형은 1901년 오스트리아 빈 병리학 연구소에서 일하던 세균학자 란트슈타이너가 수혈할 때 피가 엉기는 것을 막기 위해 ABO식 혈액형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1927년 일본의 다케지 후루카와라는 철학자가 “혈액형을 통한 기질 연구”라는 논문에서 처음으로 혈액형과 성격을 나눴는데, 당시 일본의 선정적인 언론보도와 라디오 프로그램을 통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이 이론에 따라 이력서에는 혈액형 칸이 생겨나게 되었고, 2차 대전 중에는 일본 육군과 해군이 병사의 성격을 파악하기 위해 혈액형을 이용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1970년대 초 일본의 노미 마사히코라는 저널리스트가 쓴 ‘혈액형 인간학’이라는 책이 나오면서 다시 불붙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혈액형에 따라 몸의 구성 물질이 다르며, 이것이 체질을 만들고 성격을 결정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래서인지 혈액형 붐은 단연 일본입니다. 일본에서는 혈액형 껌, 음료수, 달력은 물론이고 콘돔까지 나왔다고 합니다. 게다가 혈액형에 따라 원생들을 나눠서 가르치는 방법을 달리하는 유치원이 생겼고, 결혼중매업체에 등록한 남녀의 가장 중요한 목록이 바로 혈액형이라고 합니다.


성격과 혈액형에 대한 이런 견해는 의사들에게서 뿐만 아니라 심리학자들에게서도 환영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과학적 근거가 없고, 설사 맞는 것이 있더라도 우연의 일치라고밖에 볼 수 없다는 것이 이들의 생각입니다. 게다가 성격과 혈액형의 상관관계는 아주 낮다는 것도 밝혀졌습니다.


그런데도 왜 사람들은 혈액형이 자신의 성격과 맞다고 생각할까요? 그것은 바넘효과 때문입니다. 바넘효과는 점성술이나 점괘 등에서의 성격묘사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해당하는 일반적인 진술을 마치 자기 것인 양 믿는 현상입니다. 이것은 그러한 점괘가 우리의 머릿속에 저장되어 있는 기억을 인출하게끔 하는 단서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그런 인출단서가 있으면 그와 일치하는 것만을 기억해 내기 때문에 맞아 보이는 것입니다.


또한 사람들은 복잡한 외부세계를 파악할 때 단순히 몇 개의 그룹으로 나누어 알려고 합니다. 이것은 복잡한 환경을 몇 그룹으로 단순화시킴으로써 두뇌의 부담을 덜기 위한 우리의 지각체계의 특성이기도 합니다. 100인 100색인 사람의 성격을 A형, B형, O형, AB형의 네 그룹으로 파악하는 혈액형별 성격이 바로 이러한 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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