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정운찬 총장은 18일 제주 중문 신라호텔에서 열린 제30회 최고경영자 대학 강연에서 “교육의 목적은 한편으로는 가르치는 데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솎아내는 데도 있다”면서 “국가발전을 위해 고교평준화 제도를 재고해야 한다”고 주장, 다시 한 번 ‘평준화 정책’이 도마에 올랐다. 지난 30여 년 동안 공교육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평준화 정책. 정책으로 인해 학력은 정말 하향 평준화되었을까. 류한구 한국교육개발원 교육조사연구실장은 교육개발 7월호에 지난해 각기 다른 결론을 내놔 논란이 된 서울대 보고서 ‘입시제도의 변화: 누가 서울대학교에 들어오는가?’(이하 성기선 연구)와 한국개발연구원(KDI)의 ‘고교 평준화 정책이 학업성취도에 미치는 효과에 관한 실증분석’(이하 김태종 연구)중 어느 연구가 더 실증적인가를 분석한 ‘평준화정책이 학업성취에 미치는 효과’라는 글을 실었다. 보고서 내용을 요약한다.
1974년 정책 시행 이후 전개된 논쟁을 살펴보면, 과학적 검토가 이루어진 경우는 거의 없었지만, 최근의 두 연구는 학업성취도에 대한 실증적 검토를 담고 있다. 성기선의 연구는 평준화 지역 학생들이 비평준화 지역 학생에 비해 높은 학업성취수준의 변화를 보인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김태종의 연구는 비평준화 지역 학생이 평준화 지역 학생에 비해 높은 학업성취 수준의 향상을 보이고 있다고 보고한다. 그러나 이 두 연구는 모두 평준화 정책의 효과를 검증하는데 있어서 완벽한 해답을 주지는 못한다.
김태종의 연구는 중소도시 지역 중에서 평준화 지역 학생과 비평준화 지역 학생들의 학업성취도 변화를 비교해 평준화 정책의 효과를 검증하려 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동일 학생의 학업성적 변화를 추적할 수 있는 자료를 구성할 수 없었기 때문에 동일 지역에 있는 서로 다른 학교의 고교 1년생과 2년생의 성적 변화를 비교, 평준화 지역에 비해 비평준화 지역의 학생들이 더 높은 성적 향상을 보이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결국 서론 다른 학교에 재학하고 있는 학생들의 성적을 비교했기 때문에 그 결과를 신뢰할 수 없다.
성기선의 연구는 위계적 선형모형(Hierarchical Linear Models) 분석 방법을 통해, 평준화 지역과 비평준화 지역 학생들의 모의고사 성적 변화를 비교, 평준화 지역이 오히려 비평준화 지역에 비해 학업성취도의 향상 정도가 더 높다고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 연구는 사설학원의 모의고사 성적 자료 활용이라는 표집 구성으로 인해 조사대상자가 전체 집단을 대표하는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한계를 갖는다.
그렇다면 어느 쪽 연구 결과를 더 신뢰할 수 있을까. 섣부른 결론을 내리기는 어렵지만 잠정적 결론을 제시한다면, 성기선의 연구 결과를 보다 신뢰할 수 있다. 김태종의 연구는 모형 설계에서 본래의 연구 모형에서 많이 벗어나 있어 연구 결과를 신뢰하기 어려운 반면 성기선의 연구는 자료의 대표성과 성취도 검사의 신뢰성이라는 부분에서 문제점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이 문제점이 연구결과를 왜곡할 만큼 심각하지는 않다. 따라서 현재의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잠정적 결론을 내린다면, 평준화 지역 학교와 비평준화 지역 학교 사이에는 학생들의 학업성취도 향상에 차이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평준화 지역 학교와 비평준화 지역 학교 사이에 학업성취도 차이가 나타나지 않는 이유는 현재 한국교육개발원의 평준화정책연구실에서 추진하고 있는 평준화 학교와 비평준화 학교에 대한 참여관찰연구 결과가 나오면 보다 분명하게 밝혀질 수 있을 것이다. 현재까지 연구 과정으로 볼 때, 평준화 학교와 비평준화 학교의 교육과정 운영이나 수업방법에는 차이가 없고, 학생들의 구성만 다를 뿐이어서 학업성적에는 차이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