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질하지 않은 텁수룩한 머리에 사슴을 닮은 선한 눈빛. 어수룩한 얼굴. 그래서 보는 것만으로 왈칵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선량함. 한번 한 약속은 결코 어기지 않는 투박하지만 바위 같은 신의를 가진 남자. 그래서 기적 같은 사랑을 얻은 남자'
'온달, 바보가 된 고구려 귀족’(푸른역사)의 공동저자인 소설가(이기담)의 가슴속에 있던 온달의 모습입니다. 바보 온달과 평강공주. 어려서부터 들어온 이 이야기를 통해 우리들 속에 가라앉아있던 온달의 이미지도 이기담 선생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는 않습니다.
소설가와 역사가(임기환)가 만나, 고증되지 않은 하나의 이야기를 더듬어 가는 과정은 상상할 수 있는 바와 같이 녹녹치 않았습니다. 설화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의미를 건져 올리려는 소설가의 풍부함과 고증을 통한 진실의 전달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역사가의 엄격함. 3년이라는 기간 동안 이기담 선생은 온달의 이미지를 놓지 않았고 그의 상상력이 실증의 선을 벗어나려할 때, 임기환 교수는 옷자락을 붙잡아 제자리에 도로 앉혀두었기 때문입니다.
처음의 순박하고 바보스럽던, 그리고 기적 같은 사랑을 통해 기적 같은 변화를 겪은 온달은 그렇게 점점 구체화되어갑니다. 소설가는 마침내, 온달을'쉬이 공주와 혼담을 놓을 정도로 상층부는 아니지만 그래도 귀족, 아마도 고구려에 새로이 등장한 신흥귀족세력이었고 무장(武將)이었으며 쇠약해가는 고구려의 국운을 다시 일으킬 국민적 영웅'으로 결론을 내립니다. 물론 이 결론 역시 '아마도'입니다. 확실하게 밝혀진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하필이면 왜 온달이냐고요. 이기담 선생은 이 질문에 이렇게 답합니다. '지금은 바보가 그리운 시절'이라고. 영악스럽고 자기 잇속만 챙기는 얼어붙은 사회, 우리는 바보가 그리우니까요. 어수룩하고 늘 손해 보지만 마음은 군불처럼 따뜻한 그에게 다가가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고 싶으니까요.
설화의 세계는 그런 것, 아닐까요. 현실이 시궁창이라고 현실의 투영인 드라마까지 시궁창일 필요는 없듯 설화와 신화역시 늘 사람들이 간절히 바라는 것들을 따뜻하게 그려내는 것일 테니까요. 고증에 근거한 엄격한 사실 추적은 당연히 필요한 것이지만, 팍팍한 삶에 한 방울 윤기가 되는 것은 늘 그렇듯 따뜻한 꿈, 이지 않습니까. 바보가 그리운 시절, '온달’정신을 아이들에게 심어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