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학기 체육수업에 씨름 경기가 있었다. 그런데 아이들은 씨름은 재미가 없으니까 피구나 발야구, 축구 경기를 하자는 것이다. 씨름에 대해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고민이었다.
씨름 수업을 진행하겠다고 하자 남학생들보다 여학생들이 더 싫어했다. 한창 사춘기인 여학생들에게 샅바를 잡고 씨름을 하게 하는 것은 너무 창피하고 가혹하다는 것이다. 이겨도 힘만 세고 무식하다고 남학생들이 놀릴 것이라며 발을 동동 구른다.
결국 씨름경기를 하면 아이들이 좋아하는 파티를 열기로 약속하고 우승상품도 학생들이 좋아하는 음료수로 걸었다. 학생들의 신장과 체격을 고려해 비슷한 친구끼리 대진표를 작성했다.
드디어 씨름경기가 있는 날, 남학생들이 먼저 시작했다. 처음에는 의욕이 없는가 싶더니 막상 경기가 시작되자 자존심을 걸고 지지 않기 위해 긴장감 있는 경기를 펼쳤다. 모래판 주변에 동그랗게 앉아있던 학생들 입에서 “잘한다!” “파이팅!” “와아!”하는 탄성과 환호가 절로 튀어나왔다.
준결승전에서는 다빈이와 병호가 경기를 펼치게 됐다. 다빈이는 키도 크고 얼굴도 잘생기고 싸움도 잘하는 아이였다. 장난도 심해서 친구들을 싫어하는 별명으로 부르곤 했다. 반면 병호는 키도 보통에 삐쩍 말랐다. 평소에 말이 없고 친구들이 놀려도 빙그레 웃기만 한다.
호루라기 소리에 경기가 시작됐다. 항상 웃기만 하던 병호의 얼굴에도 진지함이 가득하다. 순간 샅바를 잡은 병호의 손에 불끈 힘이 쥐어지고 다빈이가 모래판에 퍽 소리를 내며 내동댕이쳐졌다.
모두 병호가 우승이라도 한 듯 “어야 디여~” 손을 흔들며 축가를 부른다. 항상 다빈이에게 놀림만 받던 병호가 다빈이를 이기다니, 놀림 받던 친구들도 병호가 이겼다는 사실이 통쾌하고 즐거웠나 보다. 그날 일기장에는 온통 씨름 경기 이야기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