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네 직업이 뭐지?” “회사원이에요.” “아 그래. 그러니까 이런 거야. 자넨 아침에 잠이 들고는 하루 종일 회사원이 되어 죽어라 일만 하는 꿈을 꾸는 거야. 그리고 저녁에 잠자리에 들면 깨어나서 밤새 진짜 자기 자신이 되는 거네.”(48쪽)
“그러니까 내 생각은 이렇다네. 자네들은 모든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데, 매일 몇 가지씩 빼앗기는 거란 말일세. 키도 작고 몸집도 조그마할 때는 반대로 굉장한 상상력을 갖고 있지만, 사실상 정확히 아는 건 아주 적지. 그렇기 때문에 자네들은 뭐든지 다 상상해야만 하는 거야. 빛이 어떻게 전등 속으로 들어오는지, 그림이 어떻게 텔레비전에 나오는지 상상해야 한단 말일세.”(26쪽)
꿈을 꾸는 삶이 진짜 내 삶인지, 아니면 먹고 살기 위해 하는 수 없이 매달려 있는 직장이 내 삶일까. 장자(莊子)의 나비처럼, 내가 꿈속에서 나비가 됐다면, 그 나비가 진짜 나인지, 아니면 인간의 육신이 진짜 나인지, 당신은 알 수 있습니까?
악셀 하케가 쓴 ‘작디작은 임금님’(미다스북스)을 읽다보면 젊다는 것, 늙는다는 것을 한번쯤 뒤집어 생각하게 해줍니다. 이 책의 주인공은 ‘십이월2세’라고 불리는 임금님입니다. 집게손가락보다 작은 몸집입니다. 작디작은 임금님은 이 책의 화자이자 회사원인 남자와 어느 날 회사원의 사무실이 있는 곳으로 외출을 합니다. 그리고 용을 발견합니다. 평소처럼 프라우엔 거리로 진입하려고 기다리고 있는 자동차들 사이에 거대하고 못생긴 용이 한 마리 있습니다.
만약 출근길에 뭔가 저항하는 느낌이 든다면, 마치 뭔가가 자신을 잡아당기면서 앞으로 가지 못하게 한다는 느낌이 든다면, 회사로 가는 길에 가슴 주변을 고리로 죄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면, 그것은 당신이 출근할 맘이 내키지 않거나, 직장 상사나 사장이 무서워서거나, 당신 업무에 대한 자신이 없기 때문이 결코 아닙니다. 그게 바로 용 때문입니다. 그 용이 당신을 잡아당기거나 뒤에서 팔로 가슴을 꽉 감는 것입니다.(77쪽)
그렇습니다. 우리는 늘 용과 싸움을 하고, 또 용과 싸움을 하면서도 용이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합니다. 이 세상 진실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곳에 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 몸이 얼마나 큰지 작은지는 아무런 소용도 없는 기준입니다. 우리는 만물의 일부이며, 우리는 우주 자체입니다. 별들은 우리 안에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별이 됩니다. 우리 몸통이 그대로 확 퍼져서 흩어지는 기체가 되듯, 그렇게 우주로 퍼져 나갑니다. 이 책은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작디작은 임금님은 태어나자마자 어른이었습니다. 임금님이 사는 세상은 사람들이 커다란 몸으로 태어납니다. 그 후로 그들은 잊어버리기 시작하고 몸집도 줄어들기 시작합니다. 어린 시절은 끝에 찾아옵니다. 믿기 어렵다고요?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 보면, 육체의 크기야 어떻든, 우리는 매일매일 스스로 자라고 있는 게 아니라 작아지고 있다고 느끼며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말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어렸을 때는 우리는 그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사람이었지만, 한 살 한 살 나이테를 늘려가면서 우리는 그 가능성을 반납하면서 늙어가고 있지 않느냐 말입니다. 그렇게 점점 줄어들어 나중에 작디작은 임금님처럼 새끼손가라 만해지고, 어느 날은 보이지도 않게 사라져 버리고 있지 않느냐 말입니다.
아버지가 말하셨다죠. 인생을 즐기라고‥. 작디작은 임금님 십이월2세 역시 우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아, 세월은 얼마나 짧은 가요! 시간을 마음껏 써요. 당신의 삶은 결코 끝나지 않으니까요!”(9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