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교시 수업 중 맨 앞에 앉은 세호가 얼굴이 창백해지더니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선생님, 화장실에 가고 싶어요” 한다.
항상 떠들썩한 평소 모습과는 달리 얼굴이 점점 노래지며 미동도 하지 않는 것이 심상치가 않았다. 사태의 급박함을 눈치 챈 나는 속에 단단히 탈이 난 모양이라고 생각하며 얼른 세호를 화장실로 보내 주었다.
그런데 잠시 후 교실로 돌아온 세호는 뭔가 미진한 듯 표정이 영 개운치가 않아 보였다. 시원스레 볼 일을 봤으면 천하를 다 얻은 듯한 표정이어야 할 텐데 전혀 반대되는 분위기를 풍기는 것이 아닌가. 혹시 화장실에 휴지가 없었나 하는 별의별 생각까지 다 들었다.
“세호야! 아직도 배가 많이 아프니?”
넌지시 물었더니 세호의 대답은 예상 밖으로 ‘작은 볼 일’이었단다. 뭔가가 이상해 가르치는 짬짬이 계속 의자에 얌전히 앉아있는 녀석을 슬쩍 살펴 보았다. 그랬더니 가슴 아랫부분부터 무릎 위까지가 물로 흥건히 젖어있는 것이었다.
과연 눈치 빠른 녀석이었다. 내가 자꾸만 쳐다보는 것을 알아챘는지 묻기도 전에 “하하하. 볼 일보고 손 닦다가 잘못해서 물이 사방에 다 튀었어요” 하고 선수치는 것이 아닌가. 게다가 여유 있는 척하며 너털웃음까지 터뜨리다니….
오랜 수사경력(?)을 가진 교사의 육감으로 볼 때 뭔가 수상한 조짐이 보였다. 나는 삼십년 경력의 베테랑답게 호들갑을 떨며 일인극을 펼치기 시작했다.
“세호야, 옷이 다 젖어서 어떡하니? 너 손 닦으면서 또 물장난했지? 감기 들겠다. 어서 집에 전화해서 엄마한테 옷 가져오시라고 해야겠다. 연구실로 가서 집에 전화하자.”
세호를 복도로 불러내서 살며시 물었더니 역시나 화장실로 가는 도중 못 참고 바지에 실례를 해서 아이들이 눈치 못 채도록 티셔츠에도 물을 팍팍 뿌렸단다. 세호 넌 역시 내 제자다. 이 선생님도 언제 한번 써 먹어야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