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호주 학교들이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일종의 '약정서'를 체결할 것으로 보인다. 시쳇말로 자녀 교육에 목숨을 거는 한국인으로서는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인데다 호주 가정이 정말로 이런 지경인지 의문이 들 정도이다.
이른바 '학부모 교육 헌장'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는 이 서약서는 한마디로 부모로서 자녀의 학교 생활과 가정 교육에 기초적인 관심을 기울여 줄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학교에서 내주는 과제물과 숙제를 제대로 하는지, 수업 준비물을 잘 챙기는 지, 진도는 제대로 따라가고 있는지 신경 써 줄 것과, 교우관계나 방과 후 여가활동에 대한 배려, 심지어 등교하는 자녀들의 기본적인 위생상태도 점검해 줄 것을 강하게(?) 당부하고 있는 것이다. 위생 상태나 불량한 복장 등 신체 및 외부 관리가 깔끔하지 못하면 집중력과 정신 자세 또한 흐트러지기 마련인 법이니 가장 기본적인 것이 가장 중요한 것임을 주지시키기 위함이다. 여기에 학교에서 주관하는 학부형 면담시간에 얼굴을 비쳐줄 것과 학교 행사에도 최소한의 관심과 성의를 보여줄 것을 내용에 담고 있다.
호주 빅토리아 주 중고등학교 교장단이 주축이 되어 제안한 이른바 '학부모 헌장'을 준수하지 않을 경우 해당 부모의 태도를 복지부에 회부할 것이라는 제도적 강경장치도 마련되어 있다. 약정서 체결의 배경은 한마디로 가정에서 방치된 아이들을 학교 측이 대신 부모노릇을 하는 것도 이제는 지쳤다는 의미로 짚을 수 있다. 아이들의 가정생활을 엉망으로 하게 내버려둔 채 마치 학교를 전담 탁아기관 쯤으로 그 역할을 떠넘기는 것이 위험수위에 달한 것을 보다못한 학교측의 따끔한 대응인 것이다.
물론 '학부모 헌장' 의 내용이 적용되는 부모보다는 그렇지 않은 부모들이 대다수 이지만, 일부의 경우라 해도 자녀들에 대한 호주 부모들의 무관심정도가 도를 넘어서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자식에 대한 지나친 관심이나 과잉기대도 문제지만 아무리 무관심하다해도 자식이 잘못 되기를 바라는 부모는 없을텐데 이렇게 반 강제적으로 '부모노릇 제대로 할 것'을 지적하고 있다는 것에 적잖이 당혹감이 든다. 옳든 그르든 자식들 위주의, 오직 자식 잘 되기만을 바라는 부모관이 자녀 교육에 '목매닮'을 만들어 내는 것과 비교하여, 자녀는 어디까지나 2차적인 관계일 뿐, 철저히 부부 중심인 호주사회의 가치관이 그 원인인지 혼란스럽기만 하다.
부부 중심으로 가정을 꾸린다하여 둘 사이의 사랑으로 태어난 자녀들에게 무관심하거나 심지어 방치를 한다는 말은 억지소리다. 하지만 내 몸 하나는 어떻게 되더라도 죽자사자 자식 잘 되기만을 바라는 부모들의 '과잉 희생' 분위기에서는 이런 기본 중의 기본에 해당하는 사안이 사회 문제로 떠오르는 일은 극히 미미하겠기에 하는 말이다.
호주처럼 자녀에 대한 책임감을 부부 결속력의 일차적 요소로 여기지 않는 사회일수록 당사자 중심의 높은 이혼율과 이에 따른 가정혼란으로 인해 자녀들에게 신경을 쓰지 못할 상황이 보다 많아질 수 밖에 없다는 생각도 그 때문이다. 호주 사회는 '자식들 때문에 그냥 참고 산다' 거나 '애들 장래 생각하면 이혼은 절대 안된다' 는 등 우리 같으면 자녀의 존재가 가장 크게 의식되는 '이혼 불가'의 사유를 쉽사리 납득하지 못한다. 그러다보니 생계가 한쪽 어깨에만 걸려있는 한부모 가정이나 부모의 결정에 좌지우지되는 재혼가정의 이질적 환경에서 방황하며 학교 생활에 충실할 수 없는 학생들이 많아지면서 학교가 그 짐을 떠앉게 되는 것은 아닐까.
자의든 타의든 아무리 자식이라해도 어떤 환경에서 양육하느냐에 따라 부모의 관심과 영향력에 한계가 올 수 밖에 없다. 예상치 못한 어그러짐과 극히 사소한 부주의가 자녀 방치로 이어지는 것은 순식간에 발생하는 예도 흔하다.
학교의 역할과 가정의 역할은 상호 연계적이되 분명한 구분이 존재한다. '당연히' 가정에서 맡아야 할 자녀보호 영역의 둑이 무너지고 있다는 경고로서 학교측이 고육책으로 제시한 '학부모 헌장'에 대해 부모들의 깊은 반성이 따라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