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기존 출제방식의 틀을 완전히 탈피해 수험생들이 서로 다른 답지유형의 시험지로 시험을 치르는 파격적인 방안을 검토하고 나서 주목되고 있다.
정부는 시험 부정행위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이 같은 내용의 '답지 재배열' 출제방식을 도입키로 하고 21일 고려대 100주년 기념관에서 공청회를 개최할 예정이라고 국무조정실이 20일 밝혔다.
국조실은 2004년 수능에서 휴대폰을 이용한 대규모 부정행위가 적발되는 등 각종 국가시험에서 부정행위를 방지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지난 7월 관련 전문가들로 이뤄진 위원회를 구성, '답지 재배열' 프로그램 도입의 타당성을 검토해왔다.
'답지 재배열' 방식이란 컴퓨터 소프트웨어로 문항별 답지를 무작위로 조합.재배치한 시험지를 배포하는 '보기 섞기'를 통해 수험생별로 각기 다른 시험지로 시험을 보게 하는 시스템.
가령 5지 선다형 객관식의 경우 문항 배열은 동일하지만 1∼5번의 답안(보기) 배열은 시험지별로 각기 다 다르다. 즉, 한 시험지에 1번으로 배치된 답안이 다른 시험지에서는 다른 번호로 배치되기 때문에 커닝이나 외부에서 휴대폰 등을 통해 답안을 문자로 보내는 등의 부정행위가 아무런 효력을 얻지 못하게 된다.
현재 수능이나 사시.행시.외시 등 고시에는 A, B형으로 나눠 문항 배열 방식을 두 가지로 달리한 '문항 섞기' 방식이 적용되고 있다.
'답지 재배열' 방식의 경우 이론상 답지를 서로 다르게 배열할 수 있는 시험지 수는 '보기 개수'의 '문제수 제곱'으로, 예를 들어 5지 선다형으로 10개 문항이 주어진다면 5의 10제곱, 즉 980만개에 달하는 다른 종류의 시험지를 만들 수 있다.
이는 국내 시험 중 최대규모인 수능의 응시생(약 60만명)수를 크게 상회하는 것이어서 이론적으로는 모든 시험에서 모든 응시자가 서로 다른 시험지로 시험을 치르는 게 가능해진다. 이 프로그램은 ㈜한국시험평가가 개발, 특허로 등록했다.
이 방식을 적용하려면 윤전기를 통한 기존의 인쇄방식과는 달리,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인쇄정보파일을 자동으로 인식해 각기 다른 시험지를 출력하는 POD (Print On Demand, 주문형 인쇄)라는 특수 인쇄시스템을 사용해야 한다.
위원회의 연구책임자인 고려대 박도순 교수는 20일 미리 배포한 공청회 자료에서 "표본 검증을 실시한 결과 답지배열 위치가 점수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다"며 "답지재배열 시험지 제작이나 POD 인쇄방식, 채점, 전산처리의 시행가능성 측면에서도 오류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지난달 서울시내 고등학생 2만명을 대상으로 2천명에게는 동일한 시험지를 배포하고 나머지 1만8천명에게는 답지재배열 방식을 적용한 각기 다른 시험지를 나눠준 뒤 성적을 분석한 결과, 양 집단간에 유의미한 점수차가 나지 않았다.
정부는 내년 1월께 위원회로부터 최종보고서를 제출받은 뒤 상반기 안으로 관계부처 협의 등을 거쳐 규모가 작은 국가자격시험부터 이 같은 방식을 시험에 적용하고, 장기적으로는 수능 및 고시에도 이 방식을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그러나 시험지 유형을 얼마나 세분화할지 등 구체적 내용은 아직 논의되지 않은데다 신규 시스템을 도입하기 위해선 기기 장비 구입비 등 추가 예산이 소요되고 오류 등에 대한 추가검증이 필요해 실제 시행까지는 적지 않은 어려움이 예상된다.
수능을 기준으로 기존 윤전 시스템과 같은 시간안에 시험지 인쇄를 마치려면 POD 시스템 10대가 필요해 장비 구입에만 15억원 가량이 소요되는 것으로 추산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