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사립대들이 입시 전형에서 수험생들의 내신 격차를 사실상 무시하는 방안을 세운 것으로 알려지면서 일선 교육현장이 혼란에 빠졌다.
연세대, 이화여대 등 유명 사립대들이 2008학년도 입시에서 내신 3~4등급 이상을 모두 만점처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방침이 공개되자 대다수 고교 교사와 수험생들이 대학측 조치와 교육부의 책임 방기에 대해 반발하고 있다.
14일 서울 여의도여고 진학담당 이종대 교사는 "학생들이 황당해한다. 지난 3년 동안 시험 때마다 열심히 하라고 했는데 이제 와서 3,4등급까지 1등급 점수를 줘버리겠다면 학생들로서는 그 동안 내신 성적을 위해 노력했던 것이 모두 헛수고가 되는 것이 아니냐"라며 불만을 터뜨렸다.
이 교사는 "몇년 전부터 2008학년도부터 내신이 중요하다고 해 아이들에게 '올해는 내신이 중요하다. 학교 시험을 잘 봐라'고 지도했는데 막판에 대학들이 저렇게 나오는 것은 일선 고교를 우롱하는 것이다. 고교 사정은 생각지 않고 좋은 애들을 뽑으려는 욕심으로 아이들을 흔들어놓는 것이다"라고 비판했다.
경기고 한상배 교사도 "언제 교육부나 주요 대학들이 입시안을 내놓으면서 일선 학교에 의견 한 번 물어본 적이 있느냐. 이젠 이런 논란에 별로 신경쓰고 싶지 않다. 민감하게 반응하면 입시지도만 더욱 혼란스러워진다"라며 고개를 저었다.
지방의 한 인문계 고교 장모 교사는 "이번 조치는 수능에 집중하라는 이야기인데 대학이 또 이제 와서 확정된 것이 아니라는 말을 하고 있다. 내신을 무시하는 것도 문제지만 확정된 것처럼 소문을 내놓고 다시 오락가락하는 것이 더 문제다. 입시생과 학부모, 고교를 모두 기망하는 셈이 아닌가"라며 사립대 태도를 비난했다.
가락고 3학년에 재학 중인 이모(18)군은 "대학의 이 같은 방침은 고교생 내신 부담을 덜어주는 게 아니라 수험생의 혼란만 가중시키고 있다. 내신 1~4등급에 같은 점수를 부여하겠다는 것은 특목고 학생을 겨냥한 것으로 본다"며 "교육부도 대학들의 움직임을 알고 있었을텐데 미리 방지하지 못한 것은 문제"라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대학이 어차피 내신 성적을 크게 반영할 리가 없다고 보고 이에 대비해왔다는 반응도 나왔다.
휘문고의 한 3학년 담임 교사는 "입시지도를 하는 교사나 수험생들이 혼란스러워할 수 있겠지만 크게 동요하는 모습은 아니다. 현장에서는 이미 대학들이 내신성적을 많이 반영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라고 전했다.
수험생 딸을 둔 학부모 이자영(51.여)씨도 "아이가 진작부터 수능 위주로 공부해왔다. 대학들이 그 동안 내신이 중요하다고 해왔지만 실질적으로 반영이 되지는 않았지 않나. 역시 내신이란 것을 다 믿을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라고 말했다.
사립대 '내신 무시'의 수혜자로 지목됐던 특목고도 이번 조치가 별로 유리할 것도 없다는 입장이다.
한영외고 김종인 교감은 "내신 4등급이면 우리 학교의 경우 보통 연대나 이대 등의 학교에 진학을 하고 있다. 실제로 작년에도 70%가 서울대, 연대, 고대에 진학했다. 따라서 작년처럼 내신 등급간 격차를 두는 것이나 4등급 이상에 모두 만점을 주는 것이나 별 차이가 없다"라고 말했다.
김 교감은 "이번 조치는 사립대가 특목고 학생을 더 유치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일반 인문계 고교들의 학교간 격차가 심하기 때문에 이뤄진 것으로 본다. 내신 성적이 똑같이 우수한 아이들을 뽑아도 수능 성적 등에서 차이가 많기 때문에 그런 것 아니겠나"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