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입 수능시험이 코앞에 닥친 한국과 마찬가지로 호주도 지금 입시철을 맞고 있다. 정확하게 말하면 전국이 아니라 시드니가 속한 뉴사우스 웨일즈 주에서 지금 대입 시험을 치르고 있는 중이다.
왜냐하면 퀸즈랜드 주를 비롯한 몇몇 다른 주에서는 별도의 시험없이 고등학교 11, 12학년(고2, 고3) 내신 성적으로 대학에 응시하기 때문이다. 한 나라 안에서 두 가지 입시제도가 아무 마찰없이 각기 30년, 40년간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상이한 평가방식으로 성적을 받아도, 전국 어느 대학이나 응시기회는 동일하게 주어진다. 비록 다른 기준으로 받은 점수이지만 이를 다시 환산해 각 대학에 적용하고 있는 것이다.
중반기로 치닫고 있는 뉴사우스 웨일즈 주의 대입고사는 지난 10월 18일에 시작되어 11월 13일까지 치러진다. 근 한 달에 걸쳐 시험을 치르는 이유는 수험생들의 선택 과목이 엄청나게 다양하기 때문이다.
올해의 수험과목도 총 110개에 이르는데 학생 각자는 자기가 선택한 과목의 시험이 있는 날마다 사 나흘 간격으로 징검다리 건너듯 응시를 해야 한다. 학생 한 명당 보통 6개 과목을 선택하는데 총 과목수는 100개가 넘으니 과목에 따라서는 단 한명의 학생이 응시를 하는 경우도 있다고 봐야 한다. 일례로 제 2외국어를 선택하는 경우 각 나라 언어가 거의 해당하기 때문에 생소한 언어를 수험과목으로 택하는 학생들은 자칫 '나홀로' 수험생이 되기 쉬운 것이다.
수험생들의 선택과목은 영어, 수학, 과학 등 이른바 '주요과목'이 대세를 이루지만 올해는 특히 호텔 등 숙박 및 요식 접객업과 관련된 과목과 경영 등 실업과목을 선택한 수험생이 부쩍 늘어난 점이 특징적이다. 전체 수험생의 3분의 1 정도가 6개 응시 과목 가운데 실업계통의 과목을 1개 이상 선택했으며, 특히 접객 관련 과목은 경제학이나 지리 등 이른바 전통적으로 대학 입시의 비중이 높은 과목 을 제치고 110개 선택 과목 가운데 15위를 차지했다.
호텔 숙박 요식업 계통 과목 다음으로는 정보기술(IT), 비즈니스 서비스, 건설, 소매업 경영법 등의 순으로 수험생들의 응시율이 높았고 특히 건설은 실업과목 중 선택 학생수가 가장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과목으로 수험생이 3분의 1이나 늘었으며, 금속엔지니어링도 선택 과목의 우위를 차지했다.
실생활에 유용한 분야나 아니면 현재 기술 인력난을 겪고 있는 직업 분야와 연관된 곳에 학생들이 몰리는 현상은 호주에도 대졸자의 취업이 만만치 않다는 방증으로 풀이된다. 호주 국민 가운데 대학을 나온 사람은 20% 정도에 불과하며, 대학은 커녕 고등학교도 제대로 마치지 않고 중학교 과정에서 학교를 그만두는, 쉽게 말해 중졸자도 전체 인구의 40% 를 차지한다.
그러나 대졸 학력들 간의 취업 경쟁들은 인문학이나 자연과학, 사회학 계통의 순수학문의 외면 현상을 부추기며, 상대적으로 취업에 유용한 과목쪽으로 비중을 높이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4년제 대학을 졸업한 후 취업이 마땅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다시 기술전문대학으로 재 진학을 하는 경우도 최근 점차 늘고 있는 추세이다.
대학 진학을 위한 가장 큰 이유는 결국 먹고 살기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는 호주도 예외가 없다. 뒤집어 말하면 대학을 안 나와도 먹고 사는 데 지장이 없다면 대부분은 구태여 공부를 더 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는 의미도 된다. 부모의 가업을 이어받거나 아니면 일찌감치 적당한 자리를 찾아 취업해 버리는 영국계 백인들에 비해, 사회 환경적으로 열세에 처할 수 밖에 없는 이민자녀들의 대학 진학률이 높은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백인들에게 밀리지 않기 위해 이민자들 특히 아시안 계의 학업성취 노력은, 시간이 흐르면서 다시 백인 학생들에게 자극이 되어, 대학 진학률이나 졸업 후 취업시장의 경쟁률을 전에 없이 달구는 현상을 빚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