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의 담록(淡綠)이 꽃보다 아름답다. 미래의 희망인 청소년과 같은 빛깔이다. 이 좋은 계절에 우리의 청소년들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최근 대구에서 발생한 초등학생에 대한 집단 성폭행 사건은 너무나 충격적이다. 차제에 우리의 교육 현실을 돌아보며 근원적 문제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본다. 우리는 자라나는 세대들을 어떻게 교육하고 있으며 그들의 앞날을 얼마나 걱정하고 있는가. 교육에 종사하는 한 사람으로서 깊은 자괴심을 느낀다.
우리는 지금 21세기 첨단 과학문명의 시대를 살고 있다. 물질문명은 우리의 생활을 급속도로 발전시켰다. 그러나 물질문명의 혜택이 우리의 생활에 긍정적인 면만 제공한 것은 아니다. 정신문화의 피폐라고 하는 부정적인 면도 가져 왔다. 각종 정보화 기기가 그들의 생활을 지배하고 있다. 입시위주의 학습과정에서 지나친 성장과 경쟁의 논리가 그들을 압박하고 있다. 자연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들은 충동적이고 모방적인 행동양식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다 보니 아무 죄의식 없이 단순한 생각을 가지고 성범죄를 저지르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 중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는 인터넷이 가장 큰 문제다. 중고교 남학생의 경우 40% 이상의 청소년들이 인터넷을 통한 음란 사이트에 접속한 경험이 있다는 통계가 나와 있다. 그 밖에도 동영상물이나 케이블 방송 등 선정적인 음란물이 도처에서 그들을 유혹하고 있다. 아직 성에 대한 가치관이 충분히 확립되지 않은 청소년들에게 유해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물처럼 맑아야 할 청소년들의 몸과 마음과 영혼이 오염되고 있는 것이다.
청소년과 관련된 성폭행 문제는 어제 오늘에 비롯된 것은 아니다. 산업화 과정에서의 잘못된 사회 환경과 서구 문명에 대한 맹종이 성문제를 급속도로 일탈시킨 면이 많다. 그렇다고 우리 사회가 외면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교육적으로 반드시 해결해야 할 중요한 과제이다. 이번 사건에서 보듯이 청소년들은 아무런 죄의식도 없이 성범죄를 저지르고 있다.
그 연령층도 점점 어려지고 있다는 데에 심각성이 있다. 경찰의 자료에 의하면 13세 이하 성폭력범이 2003년 14명이었는데 2007년엔 48명으로 늘었다. 그 위의 14~16세의 연령에서도 461명이 1019명으로 2배 이상 증가했다. 이런 상황에서 호기심이 많고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청소년들의 성과 관련된 문제를 단지 범죄적인 시각으로만 다루어서는 안 된다. 학교는 물론 가정과 사회가 공동으로 책임을 져야 할 일이다. 주위의 어른들이 행동으로 모범을 보여 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는 부모의 이혼으로 인한 결손 가정이 너무나 많다. 그로 인한 청소년들의 방황과 좌절은 말할 것도 없다.
청소년들의 바른 성장을 위해 성교육은 매우 필요하다. 현재 학교에서는 연간 10시간의 성교육을 하도록 돼 있다. 그렇다고 성교육 전담 교사가 배치된 것도 아니다. 재량활동 시간이나 관련교과 시간을 이용하거나 아니면 보건교사나 외부강사를 초빙해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다 보니 체계적인 지도가 어렵고 청소년들에게 올바른 성의식을 심어주는데 부족하다. 요즘의 청소년들은 몸은 어른처럼 커졌지만 성의식은 그렇지 못하다.
우선 청소년들의 성교육은 학교에서 체계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가정과 사회가 외면해서는 소기의 목적을 이룰 수 있다. 성이라고 하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는 가정과 사회에서부터 올바른 환경을 조성해 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청소년들이 건전한 성의식을 갖도록 교육적으로 뒷받침을 해줘야 한다. 건전한 놀이문화를 통한 정신적 긴장 해소는 물론 남녀 간의 성차(性差)를 잘 이해하고 성역할의 바른 태도를 길러 주어야 한다.
앞으로 정부와 각 기관에서는 청소년들에게 정신적 위해(危害)를 줄 수 있는 불건전한 음란물과 각종 미디어는 강력히 규제해야 한다. 사회의 모든 어른들이 영리에만 탐닉해 비교육적인 환경을 방치하거나 상품을 판매해서도 안 된다. 가정에서는 자녀들이 부모로 인해 마음의 상처를 입지 않도록 각별히 지도해야 한다. 이런 사회적 환경과 기풍이 진작될 때 우리의 청소년들은 바르게 성장할 수 있다. 이것은 학교와 가정과 사회가 삼위일체가 돼 같이 힘을 모을 때에 가능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