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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촛불에 델까 두려운 이명박 정부

- 교과서 ‘수정 권고’ 너무 약하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지난 달 30일 편향성 논란의 대상이 되어 있는 고등학교 근ㆍ현대사 교과서에 대한 구체적인 수정권고안을 내놓았다. 그 내용은 각계에서 요구한 253개 수정 요구 항목 가운데 55개 항목을 수정할 것을 '집필진'에게 '권고'한 것이다. 이 같은 교과부의 조치에 대하여 '집필진'이 반발하고 나섰다.

물론 집필자들의 반발은 예상 되었다고 해도 문제는 교과부가 내놓은 '수정 의견'이 본질적 문제를 외면한, '쭉정이'와 같은 내용이라는 점에 있다. 달리 말해 왜 오래전부터 우리사회에서 역사교과서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었고 그 문제제기의 핵심이 무엇인가 하는 점을 좋게 말하면 깨닫지 못하고 있거나 나쁘게 말하면 알면서도 회피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의 핵심은 고등학교 학생들이 현행 교과서를 가지고 열심히 '현대사'를 배우고 익히게 되면 건전한 역사의식을 가진 건강한 시민이 되기 어렵다는데 있다.

다시말해 근ㆍ현대사 교과서 수정 논란의 핵심은 학생들에게 특히 현대사를 성공한 '대한민국 역사'로 가르칠 것이냐, 아니면 실패한 '좌우 합작의 역사'로 가르칠 것이냐 하는 문제다. 이런 점에서 그동안 잘못된 역사교육을 우려해왔던 뜻있는 사람들이 요구하고 있는 것은 소박하지만 단호하다. 미래의 시민인 고등학교학생들이 교실에서 배우고 시험도 치는 근ㆍ현대사를 당당하고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역사'로 재조명하고 재구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지금 교과부가 '수정 의견'으로 내놓고 있는 50개 항목의 자구수정 정도로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 있어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자명하다. 현행 '검ㆍ인정' 교과서들이 역사적 기술에 앞서 보다 근본적으로 역사를 바라보는 사관(史觀)에서 커다란 오류나 ‘반제민족해방’과 같은 이념적 편향성을 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부분적인 땜질로서는 ‘무뉘만 수정’이라는 우려되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오죽하면 문제의 역사교과서집필자들까지 나서서 “그 정도의 수정요구를 가지고 그동안 난리를 쳤느냐”라고 항변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번 논란이 잘못된 사실(史實)의 기술보다 잘못된 사관(史觀)의 문제에서 기인되었다는 점을 교과부가 몰랐다면 유감이다. 대한민국 현대사라면 우리가 피땀흘려 가꾼 '자랑스러운 한국인들의 이야기'가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진 대한민국이라는 점을 주지시키고 있다면, 잘못돼도 크게 잘못된 것이다. 표면적으로 볼 때는 실패한 '좌우 합작'의 중립적 입장을 표방하는 같으면서도 실제로는 성공한 자유민주의국가인 대한민국에는 정통성 결여를 암시하고 오히려 전체주의적 성향의 반인권국가인 북한에 정통성을 부여하려는 좌편향적(左便向的) 시각으로 기술되어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대한민국역사의 부끄러운 부분을 은폐하거나 왜곡하자는 것은 아니다. ‘역사적 나르시시즘(narssicism)’은 ‘역사적 매저키즘(masochism)’ 못지않게 금기사항이다. 따라서 학생들이 배우는 '현대사'라면 우리 역사의 부정적 사실들도 사실대로 기록하고 이에 대한 반성을 기술함으로써 앞으로 그 같은 부정적 역사가 재연되는 것을 경계하는 데 인색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 역사교과서의 문제는 자랑스러운 부분까지 수치스러운 역사로 덧칠되고 있다는 점에 있다.

상황이 이토록 심각한데도 잘못된 역사관을 수정하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구를 수정하라고 요구하는 정부의 태도는 비겁할 정도로 눈치보기에 급급하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다. 그나마 문제가 된 교과서의 집필자들은 그런 정도의 수정요구도 거부하고 있어 일이 간단치 않게 되었다. 궁금한 것은 교육과학기술부를 넘어서 이명박 정부의 입장이다. 노무현정부의 잘못된 편향성을 고치겠다며 공약함으로써 국민의 지지를 받아 출범한 정부가 왜 이리 당당하지 못하고 비겁한가. 지난 5월부터 100일 이상 지속된 촛불시위에 데서 그런가. 아니면 앞으로 촛불에 델까봐 그런 것인가. 도무지 그 이유를 알 수 없다는 것이 우리가 느끼는 불안감의 정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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