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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국제중 '탁구공ㆍ구슬' 색깔이 당락 갈랐다

신입생 추첨 현장…"귤색이네, 합격이다!" 환호성

 2009학년도 국제중학교 신입생 선발의 마지막 단계인 공개추첨이 26일 서울 대원중과 영훈중에서 열렸다. 이날 아침 수험생과 학부모들은 하얀 입김을 토하며 서울 광진구 대원중에 속속 모여들었다.

입장 마감 시간인 오전 10시30분 6층 강당에 옹기종기 모여앉은 어머니들은 자신감 있는 표정으로 이야기꽃을 피우다 학교 관계자들이 단상에 모습을 드러내자 숨겼던 긴장을 드러냈다.

또래 아이들 수백명이 한자리에 모였으니 놀이나 장난에 열중하는 수험생도 있을 법했지만, 어린이들도 모두 굳은 표정으로 시선을 들지 않았다.

이날 국제중 일반과정 입학생 선발 3단계 과정인 공개추첨에 참석한 수험생들은 애초 예정됐던 264명보다 43명 많은 317명.

학교 측은 국제과정 응시자 일부가 기본소양이 지나치게 부족한 것으로 드러나 40명이었던 정원을 22명으로 줄인 대신 일반과정 정원을 88명에서 106명으로 늘렸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지난 22일 2단계 과정인 개별면접을 통과한 학생 수도 정원의 3배수인 264명에서 318명으로 늘어났지만 1명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317명으로 추첨이 진행된 것.

본격적인 추첨은 오전 11시20분께 이 학교 김일형 교장이 비공개 석상에서 경찰 입회하에 미리 준비해 놓은 '흰색', '녹색', '귤색' 등 3가지 색깔의 탁구공 중 하나를 고르면서 시작됐다.

이어 수험생들은 미리 받은 순번 표에 따라 한 명씩 단상에 올라 순서대로 3개 중 하나를 받았으며 모든 수험생이 공을 손에 쥐자 김 교장은 상자에 숨겨뒀던 귤색 공을 내보였다.

귤색 공을 지니고 있던 수험생과 학부모들은 기쁨을 주체하지 못해 폴짝 뛰어올랐고 곳곳에서 환성이 터졌지만, 흰색이나 녹색 공을 가진 수험생과 부모는 어깨를 늘어뜨린 채 한숨을 내뱉었다.

이날 합격의 기쁨을 만끽한 동대문구 모 사립초교 출신 수험생 학부모는 "우리 아이는 외국경험 한번 없고 엄마가 집에서 영어를 같이 했을 뿐"이라며 "언론이 국제중을 두고 사교육 조장한다는 식으로 말하는 데 우리 애처럼 자질이 있는 아이들은 그만큼 (대우를) 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공립인 K초교를 다니는 A(12)양은 손위에 놓인 흰색 공을 보며 "허탈해요"란 한 마디를 남긴 채 입을 다물었고 어머니는 '속상하다'는 말을 연발하며 "차라리 성적순으로 뽑는게 깔끔하겠다"고 울분을 터뜨렸다.

한 학교 관계자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어머니와 풀죽은 아이들을 가리키며 "보세요, 애들이 마음의 상처를 입잖아요. 시험은 노력으로 만회할 수 있지만 이렇게 운으로 뽑아버리면 '난 운이 없는 사람인가'하는 생각을 하게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대원중은 32명을 뽑는 사회적 배려 대상자 입학생 선발 추첨은 비공개로 따로 진행했으며 국제과정은 추첨을 거치지 않았다. 국가유공자 자녀를 대상으로 하는 정원외 전형으로는 1명도 선발하지 않기로 했다.

이날 대원중과 마찬가지로 2단계 개별면접 합격자들을 대상으로 최종 합격자를 선발한 강북구 영훈중의 추첨 방식은 약간 달랐다.

수백개의 우황청심환 용기에 합격을 뜻하는 붉은 구슬과 나무 구슬을 1 대 2로 집어넣어 포장한 뒤 커다란 상자에 담고 수험생들로 하여금 하나씩 골라 열어보도록 한 것.

실시간으로 희비가 갈리면서 일부 수험생 및 학부모는 그 자리에서 울음을 터뜨리고 도망치듯 자리를 떴다.

영훈중 수험생과 학부모들 역시 당락 여부와 무관하게 운에 좌우되는 선발체계에 불만을 터뜨렸다.

광진구에 사는 주부 P(46)씨는 아들이 합격해 "기분이 좋다. 추첨 진행 과정도 공평했다"면서도 "하지만 운으로 뽑는 건 아니다. 로또도 아니고 애들 사행심을 조장한다"고 비판했다.

P씨는 "노력한만큼 결과를 얻는 걸 가르치는 게 아니라 운에 맡기니 국제중 신뢰도 떨어지고 교육의 취지에도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서대문구 불가좌동에서 온 J(38.여)씨는 떨어졌지만 "첫해니 시행착오도 있을 거고 영어 선생님을 확보했는지도 의심이 드는 데다 특별한 아이들만 있어 사회성이 길러질 지 애초부터 걱정이었다"며 "3차까지 온 것만도 실력이 검증된 것이니 충분히 만족한다"고 말했다.

J씨는 그러나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은 했지만 의지와 관계없이 운으로 (당락이) 결정된다는게 (아이들이) 상처받을 수 있는 부분인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편 사회적배려대상자 전형으로 영훈중에 합격, 어려운 형편에도 수준 높은 교육을 받으며 미래의 꿈을 키워나갈 수 있게 된 어린이들도 있었다.

은평구의 한 아동보호시설 출신으로 영훈중에 합격한 J(12)군은 "처음엔 나무색인줄 알았다가 알고보니 빨강이었다. 떨어진 친구한테는 미안하다. 나보다 공부 잘했는데 운이 안 좋아서 떨어진 것 같다"면서 "나중에 의사가 돼 다른 나라의 어려운 사람들을 치료할 수 있도록 국제중에서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하고 싶다"고 말했다.

영훈중에서 실시된 3차 공개추첨에는 88명을 선발하는 일반과정에 388명이, 40명을 뽑는 국제과정에는 45명의 수험생이 참가했으며, 사회적배려대상자 전형(정원32명)에서는 42명이 추첨에 응했다.

정원외 전형은 4명을 모집할 예정이었지만 2단계 개별면접을 통과한 수험생이 3명뿐이라 추첨을 실시하지 않았다. 대원중과 영훈중은 27일 최종 합격자 명단을 발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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