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련병 총격 목 관통 중상입고 극적 생존
덤으로 얻은 생명 봉사 하고자 교직 입문
작전명 ‘오소리’, 임무는 김일성 암살. 작전 성공 시는 사형 취소 및 잔형 면제, 그러나 실패 시는 자폭할 것.
영화 ‘실미도’를 통해 우리가 알고 있는, 1971년 8월 23일 그 날의 사건은 대략 이렇게 요약된다. 그러나 당시 실미도 684부대에서 상병(위장계급은 하사)으로 태권도교육(당시 태권도 3단)을 맡았으며, 사건 당일 훈련병들의 총격에 목을 관통 당하는 중상을 입고 극적으로 살아난, 양동수(60․서울 창천중)교장의 이야기는 많이 다르다.
양 교장은 “실미도 훈련은 훨씬 더 혹독했다”며 “영화는 40%정도만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인두로 살을 지지는 장면, 훈련생의 출신 성분과 탈출 및 난동 사유, 마지막 훈련생들의 집단 자살 장면은 사실이 아니라고 털어놓았다. 그는 “영화에서는 남북 대치국면이 완화됨에 따라 684부대의 존재 가치가 사라져 당국의 정리 명령을 받은 것으로 그려졌으나 훈련병들의 제거 명령은 없었다”며 “영화는 극적 구성을 위해 각색한 것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매년 현충일과 사건이 일어났던 8월23일이면 현충원으로 자연스레 발길이 옮겨집니다. 지금도 그 때를 떠올리면 가슴이 서늘해요. 관통상을 입고 12시간이나 피를 흘리고도 살아난 것, 핏자국을 따라온 훈련병들이 제 존재를 알아채지 못한 것은 기적이란 말로 밖에 달리 표현할 수 없으니까요. 그렇지 않았다면 여기 바로 동료들 옆에 제 묘비도 함께 있었을 것이란 생각을 항상 한답니다.”
절체절명의 죽음 앞에서 극적으로 살아난 양 교장은 자신이 겪은 일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덤으로 얻은 생명을 봉사로 이어갈 수 있는 직업을 고민하다가 교사가 될 결심을 했다. 제대 후 1974년 서울 성동여실고 공예과 조교로 교편을 잡은 그는 이후 한양대에 편입 정교사가 되고, 홍익대 대학원을 졸업하며 교장에까지 이르렀다.
“어린 시절 어렵게 자라 말썽도 많이 피웠지만 실미도 사건을 겪으면서 살아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할 일인지를 깨닫게 됐습니다. 어려움을 극복하고 자신을 채찍질하며 살아가는 것의 중요성을 항상 아이들에게 이야기하곤 하지요.”
힘든 일, 남들이 하지 않으려 하는 궂은일을 도맡아 해온 양 교장은 올해 초 신설학교인 창천중학교에 부임했다. 유흥가가 많은 열악한 환경의 학생들을 위해 온돌 공부방을 마련하고 아침부터 밤 9시30분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아이들을 보살피며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게 양 교장의 요즘 하루 일과다.
“생사(生死)를 넘나든 경험 탓인지 아이들은 제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준답니다. 요즘처럼 교사의 말이 잘 먹히지 않는 시대에도 말이죠.(웃음) 나라의 미래를 이끌어갈 아이들에게 삶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저는 참 행복한 사람이 아닐까요? 정년 하는 그날까지, 제 목숨 다하는 그날까지,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 나갈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