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11일 등급제로 치러진 2008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의 원점수를 공개하라는 판결을 내림에 따라 현 정부 출범 이후 계속돼 온 수능 원자료 공개 논란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번 판결은 한나라당 조전혁 의원 등의 요구로 촉발된 수능 원자료 공개 논란과는 성격이 다르다는 점이다.
학부모 단체인 '학교를 사랑하는 학부모 모임'(학사모)은 2007년 11월 실시된 2008학년도 수능시험의 원점수와 등급구분 점수를 공개하라며 교과부에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거부당하자 법원에 거부처분 취소 소송을 냈고, 이에 대법원이 '해당 시험의 원점수를 공개하라'며 학사모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1·2심에서도 학사모가 승소했다.
학사모가 요구한 '수능 원점수'란 말 그대로 수능 각 영역에서 수험생들이 얻은 원래 점수를 뜻한다.
등급제였던 2008학년도 수능 성적표에는 원점수는 물론 원점수를 변환한 표준점수, 백분위 등의 정보가 일절 기재되지 않고 등급만 표시됐다.
대학입시에서 수능의 영향력을 최소화하고 1~2점 차이로 등수를 매기는 서열화의 폐단을 막는다는 당시 노무현 정부의 방침에 따른 것이었다.
하지만 실제 등급제 수능이 치러지고 난 뒤 학교 현장은 심각한 혼란에 빠져들었다.
등급만 표시된 성적표를 받은 수험생들은 '도대체 내 원점수가 몇 점이기에 이 등급을 받았는지' 의아해할 수밖에 없었고, 그에 따른 진학 지도에도 비상이 걸렸다.
1~2점 차이에 따른 서열화를 막는다며 등급제를 도입했지만, 되레 1~2점 차이로 등급이 달라지면서 지원 가능 대학 순위가 뒤바뀌는 모순도 속출했다.
이 때문에 시험을 주관한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는 '내 원점수가 몇 점인지 알려달라'는 민원이 빗발쳤고 학사모도 이런 취지로 교과부에 정보공개 청구를 했지만, 교과부는 등급제 취지에 맞지 않는다는 등의 이유로 거부한 것이다.
하지만 이번 판결로 교과부는 결국 어떤 방식으로든 수능 원점수를 공개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물론 공개 대상은 2008학년도 시험에 한한다는 게 교과부의 해석이다.
교과부 양성광 인재기획분석관은 "평가원의 채점 프로그램 자체가 원점수는 산출하지 않게 돼 있어 현재 원점수 데이터는 없다. 하지만 대법원 판결 취지는 프로그램을 다시 만들어서라도 원점수를 산출해 공개하라는 것 같다"고 말했다.
만약 채점 프로그램을 다시 만들어 원점수를 공개해야 한다면 교과부는 당시 수능의 등급구분 점수와 원점수에 따른 등급 산출 결과 등을 공개할 수 있을 것이란 입장이다.
학생 개인 신상에 대한 정보, 학교별 원점수 등 서열화 정보는 제외된다.
교과부는 "학사모가 공개를 요구한 것이 '수능 원점수'라고만 돼 있어 정확히 어떤 원점수 정보를 원하는 것인지 해석이 필요하지만 분명한 것은 개인 신상, 학교 서열화 정보는 해당 사항이 아니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따라서 정보가 공개되더라도 추가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해당 시험의 등급구분 점수 정도가 전부여서 이번 판결에 따른 파장은 그리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공개 범위도 이처럼 제한적이어서 정보가 공개되더라도 추가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해당 시험의 등급구분 원점수 정도가 전부이고, 2008학년도 수능이 치러진 지 2년이나 지난데다 수능 등급제는 2008학년도에 단 한 번 실시된 이후 폐지되고 다시 표준점수와 백분위, 등급을 매기는 점수제 수능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다만 노무현 정부 때와는 달리 현 정부가 '공개를 통한 경쟁주의'를 지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본다면 이번 판결은 이러한 정책 기조에 더욱 힘을 실어줄 수 있을 것이란 분석이다.
현재 대법원에는 조전혁 의원이 교수 시절이던 2006년 소송을 제기한 수능 원자료 공개 건도 계류돼 있다.
2002~2005학년도 수능 '원자료', 즉 학교별 표준점수와 백분위, 등급 정보를 연구 목적이라면 공개하라는 게 소송의 요지인데, 교육계에서는 이 역시 '공개하라'는 결론이 나올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물론 이미 조 의원실을 통해 학교별 수능 평균 성적 등의 학교 서열화 정보가 일부 잘못 분석된 채 보도되기는 했지만, 대법원 '공개' 판결이 나올 경우 법적으로 뒷받침된다는 의미에서 이번 학사모 판결 건과는 달리 파장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