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남부의 보수지역인 텍사스주가 교과서에서 토머스 제퍼슨 전 대통령을 삭제하기로 잠정 결정, 논란을 빚고 있다.
미국의 진보 인터넷매체인 '허핑턴 포스트'는 13일 텍사스주 교육위원회가 이번주 사회과목 교과과정 개편과 관련한 회의를 갖고 미국 사회에 영향을 준 계몽주의자로 서술돼 온 제퍼슨 전 대통령을 삭제하고, 보수 종교지도자의 아이콘이었던 존 캘빈 등을 대신 넣기로 잠정 결정했다고 전했다.
텍사스 교육위는 "존 로크, 토머스 홉스, 볼테르, 찰스 드 몽테뉴, 장자크 루소, 토머스 제퍼슨의 계몽사상이 1750년부터 현재에 이르는 정치적 혁명에 미친 영향을 설명하라"는 현행 교과서의 서술에서 제퍼슨을 삭제하고 토머스 아퀴나스와 윌리엄 블랙스톤 경을 넣는 방향으로 수정을 가했다.
토머스 제퍼슨은 미국의 제3대 대통령을 지냈던 정치가이자 철학자로, 미 독립선언문의 기초를 닦은 인물로 평가받고 있으나, 현 민주당의 효시 격인 민주공화당 결성을 주도한데다 정교분리 원칙을 내세웠다는 점 때문에 이 같은 수난을 겪게 된 것으로 보인다.
교육위원회는 또 미국 정부 형태를 서술하는 단어 가운데 '민주주의적(democratic)'을 빼고, '입헌 공화제(a constitutional republic)'로 대체하도록 했으며, "미국 행정부는 특정 종교를 다른 종교에 우선해 홍보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학생들에게 가르치도록 의무화한 종전 학습지도 규정도 거부했다.
이에 따라 일선 교사들은 이번 개정안이 최종 확정될 경우, 정교분리의 철학적 논거를 부각시키지 못한 채 유대-기독교가 '건국의 아버지들'에게 미친 영향을 설명하도록 요구받게 될 전망이다.
이와 함께 이번 교과 개정에서는 미국의 자유 기업 시스템은 정부의 과도한 개입이 없을 때 가장 발전할 수 있다고 서술하는 등 보수진영의 지론인 '작은 정부론'을 강조하는 내용도 반영됐다.
보수파 교육위원들은 개정안 논의과정에서 힙합을 중요한 문화운동의 사례에 포함하려는 시도는 물론 역사적으로 중요한 히스패닉계의 인물을 언급해야 한다는 진보성향 교육위원들의 주장도 묵살했다고 허핑턴 포스트는 전했다.
이번 결정은 교육위에서 공화당의 일방적인 지지 속에 10대5로 통과됐으며, 앞으로 두 달여 동안 일반인들의 의견수렴 과정을 거쳐 수정과 보완작업이 이뤄진 후 오는 5월 최종 표결이 이뤄질 예정이다.
'허핑턴 포스트'는 보수주의 교육의원들에 의해 주도된 이번 교과서 개정을 공포영화 '텍사스 전기톱 연쇄사건'에 빗대어 '텍사스 교과서 학살사건'이라는 제목으로 보도했다.
텍사스주는 미국 50개주 가운데 2번째로 큰 교과서 시장이어서 출판업자들이 이를 기준으로 교과서를 제작, 판매하는 경향이 있어 이번 교과과정 개편은 보수성향을 지닌 다른 주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이번 교과과정 개편논의 과정에서 민주당 소속 교육위원 일부는 회의장을 박차고 나가면서 "교과과정을 세뇌화하려고 하고 있다"고 비판을 가한 점 등으로 미뤄 앞으로 미국 내 보·혁논란으로 발전할 개연성도 배제할 수 없다.
텍사스주 교육위원들은 변호사, 치과의사, 주간지 편집인 등 주로 지역 여론주도층으로 구성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