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48년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저소득층 자녀들을 위해 문을 연 사립 기숙학교 지라르 칼리지가 지난해 37세의 젊은 흑인여성 오텀 애드킨스가 교장으로 부임하면서 의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백인 소년들을 대상으로 운영되어온 이 학교에 처음으로 흑인 학생이 입학한 것은 1968년, 여학생이 입학한 것은 1984년이었다. 이 학교는 수개월에 걸친 시위와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방문, 미국 대법원의 판결이 있은 후에야 흑인 학생을 받아들였다.
오늘날 1학년에서 12학년까지 지라르 칼리지의 학생 620명의 대부분은 흑인이며 절반은 여학생이다. 모두 편부모나 후견인이 기르는 저소득 가정 출신이다.
애드킨스 교장은 "학교를 흥미있는 곳으로 만들기 위해 많은 에너지를 쏟아붓고 있다"고 말하고 "나는 여러 교직원들에게 말해 왔는데, 교사들이 학생들의 시간을 낭비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라고 강조했다.
프랑스 출생의 선장 스티븐 지라르는 1776년 필라델피아로 온 후 해운업과 무역, 은행업으로 막대한 재산을 모았다. 그는 1812년 영미전쟁 당시 미국에 재정을 지원했다. 1831년 그가 사망했을 때 그는 아마도 미국에서 가장 부자였을 것이다.
지라르는 주로 가난한 편모 가정의 백인 소년들을 위한 무료 학교를 건설하고 운영하기 위해 필라델피아시(市)에 약 600만달러(현 시세로 1억 4600만달러 정도)를 유산으로 남겼다.
초대 교장은 벤저민 프랭클린의 증손자였고 이후 교장은 모두 백인 남성이었다.
이 학교 이사회는 애드킨스의 열정, 노동관, 엄격한 기준, 그리고 버지니아대학, 컬럼비아 사범대학 졸업이라는 학력에 감명을 받고 그를 교장으로 임명했다.
흑인 노예의 후손으로 버지니아 교외 중상층 가정에서 자란 애드킨스는 청소년 시절 인근의 빈곤지역에서 자원봉사활동을 하면서 교육에 대한 열정을 갖게됐다.
그는 그곳 어린이들의 생활 경험이 제한돼 있는데 충격을 받았으며 대학 진학 시 입학지원서에 자신은 빈곤층 자녀들을 위한 기숙학교를 여는 것이 꿈이라고 썼다.
그는 지라르 칼리지를 통해 자신의 꿈을 실현하고 있다.
애드킨스 교장은 뉴욕의 엘리트 학교인 프렌즈 세미나리 스쿨과 워싱턴의 시드웰 프렌즈 스쿨에서 간부로 일하다 지난해 여름 지라르 칼리지에 교장으로 취임했다.
애드킨스 교장은 커리큘럼을 확대하고 시설을 현대화하며 교사들의 임금을 올릴 계획이다. 그는 또한 학생들이 졸업 후 학교 외부에서의 생활에 더 잘 대비하도록 할 생각이다.
이 학교의 연 예산 2500만달러는 거의 모두 지라르의 유산으로부터 나온다. 지난해 경기침체로 금융자산이 2008년 3억 900만달러에서 2억 400만달러로 줄어 애드킨스 교장은 공격적인 기금모금 계획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는 학교에서 학생들과 껴안거나 악수를 하거나 장난을 치기도 한다. 또한 소그룹으로 학생들을 교장 사택에 초대해 학생들이 경험하기 힘들었을 '가족' 식사를 나누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