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수준 학업성취도평가(일제고사) 둘째 날 시험이 14일 전국 9264개 학교에서 치러졌지만 산발적 시험거부에다 집단결시 은폐 의혹이 불거지는 등 학교 현장의 파행이 이어졌다.
민선교육감 시대를 맞자마자 교육당국과 일부 진보교육감의 정면 충돌로 야기된 이번 평가 파행 사태는 학교 현장에 큰 혼란을 불러오는 등 적잖은 상처를 남겼다.
둘째 날 시험에서는 시험거부 학생 수가 서울을 제외하고 288명으로 잠정 집계돼 첫날 434명보다 크게 줄었다.
전날 초6, 중3, 고2 학생이 국어, 영어, 수학 세 과목 시험을 친 데 이어 이날은 고2를 뺀 초6, 중3 학생이 사회, 과학 시험을 봤다.
응시대상 학생 수는 초6 61만 9000명(6141개교), 중3 67만 4000명(3123개교) 등 총 129만 3000명이다.
전날 시험거부를 주도한 진보교육감 지역인 전북과 강원에서 미응시 학생이 크게 줄었지만 서울에서는 전날 보고되지 않았던 집단거부 사태가 뒤늦게 밝혀져 오히려 파문이 커졌다.
■영등포고 '집단거부' 징계 불가피 = 학업성취도 평가 첫날인 13일 서울 남부교육청 관할 영등포고등학교에서 2학년 B반 학생 30여명 전원을 비롯해 60여명이 단체로 시험을 보지 않은 것으로 뒤늦게 드러났다.
이 학교는 B반 담임교사 A씨가 '시험을 보지 않아도 되느냐'는 학생의 질문에 "교육청 공문은 그런 뜻"이라고 답하면서 집단 시험거부 사태가 비롯된 것으로 알려졌다.
전교조는 서울시교육청이 일선학교에 내려보낸 '대체프로그램 마련 지침' 공문을 뒤늦게 번복한 탓에 이런 사태가 일어났다고 주장했지만,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교사가 사실상 미응시를 조장했다며 징계 방침을 시사했다.
서울시교육청은 2학년 10개 반 중 6개 학급에서 시험을 제대로 치지 않았음에도 정상적으로 시험을 진행한 것처럼 보고한 이 학교에 대해 감사를 벌였다.
이에 따라 시험거부를 조장하거나 허위보고를 한 교원에 대한 징계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첫날 이번 시험과 관련해 지침을 위반하거나 평가 거부를 유도한 교원이 없는 것으로 파악했지만 사후 조사 여부에 따라 추가로 징계 대상자가 나올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2008년과 2009년 일제고사 당시에는 각각 16명과 3명의 교원이 징계를 받았다.
■미응시자 첫날보다 줄어 = 첫날 전국적으로 434명이 시험을 보지 않은 데 이어 이날은 서울을 제외하고 15개 시도에서 288명이 결석 또는 미응시한 것으로 집계됐다.
첫날 172명이 시험을 거부해 전국 16개 시도 중 미응시자가 가장 많았던 전북에서는 이날 128명의 초·중학생이 시험을 보지 않은 것으로 집계됐다.
강원도 첫날 140명에서 이날은 86명으로 거부 학생 수가 확 줄었다.
이밖에 충남 22명, 경기·전남 각 12명, 부산 8명, 울산 5명이었고 인천, 광주는 거부자가 없었다.
둘째 날도 일부 지역에서는 일제고사폐지시민모임, 전교조 지부 등이 주축이 돼 시험을 거부한 학생들과 함께 체험학습을 떠났다.
그러나 이날 허위보고 파문이 일어나 감사가 이뤄진 서울시교육청은 오후 늦게까지 시험 거부자 수가 집계되지 않았다.
■교과부 "모든 가능성 열어놓고 조사" = 교과부는 이날 시험이 끝나자 '국가수준 학업성취도평가 시행에 관한 입장'을 공식적으로 내놓았다.
교과부는 "비교적 차분한 분위기에서 평가가 진행됐지만 시행 준비단계에서 일부 교육청이 사전협의 없이 평가계획을 변경한다든지, 지침을 제때 안내하지 않아 혼선을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교과부는 특히 "평가 관리업무에 문제를 야기하는 등 교육적으로 바람직하지 못한 현상이 나타났다"며 "향후 해당 시도의 구체적인 평가진행 상황에 대한 조사를 실시해 결과에 따라 '필요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교과부 양성광 교육정보정책관은 브리핑에서 "대체프로그램을 미리 만들어놓고 시험 불참을 유도한 것은 위법이다. 합당한 기준에 맞춰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교과부는 미응시자 안내·관리 지침을 일선에 전달하지 않거나 다른 내용으로 바꿔 내려보낸 강원·전북도교육감에 대해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조사하겠다"고 강조했다.
교과부는 이미 수차례에 걸쳐 '평가를 우회적으로 회피하거나 불참을 유도할 목적의 대체프로그램은 위법'이라는 공문을 내려보낸 만큼 지침 이행을 거부한 경우 '평가 대상기관의 장은 특별한 사유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평가에 응하여야 한다'고 명시한 초중등교육법을 위반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따라서 지침 이행을 거부한 일부 시도교육감에 대해 직무유기 등 혐의로 고발할 개연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양성광 정책관은 "구체적인 상황이 드러나지 않아 현재로서는 답변할 수 없다"며 "누구의 잘못인지는 현장 조사를 해봐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