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3월부터 새로 도입되는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검정위원에 근현대사 전문가가 한 명도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돼 논란이 일고 있다.
한국사 교과서는 전체 9단원 중 7단원이 근현대사 관련 내용이라 검정 과정은 물론 교과서 내용의 신뢰도마저 도마에 오르게 됐다.
23일 역사교육연구소와 한국근현대사학회 등에 따르면 교과서 검정기관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지난달 30일 홈페이지를 통해 교수 6명과 교사 5명 등 한국사 검정위원 11명의 명단을 공개했다.
문제는 검정위원으로 위촉된 교수 6명 중 3명은 한국사와 무관한 전공을 갖고 있으며, 나머지 3명은 조선사 전문가로 근현대사와 별다른 관련이 없다는 점.
대전대 박모 교수는 국제정치·신문제작 실습 전문가이며, 건국대 이모 명예교수는 미국사를, 성신여대 황모 교수는 사회교육학을 전공했다.
또 서울산업대 김모 교수와 세종대 오모 교수는 조선사 전공자이며, 동양대 노모 교수의 전문영역은 개화기 초기인 1880~1890년대인 것으로 알려졌다.
교과서에 적합·부적합 판정을 내리는 검정위원뿐 아니라 검정을 위한 기초자료를 수집하는 연구위원으로 참여한 교수 4명 중에도 근현대사 전공자는 없다.
명지대 강모 교수는 서양사를 전공했고, 나머지 3명은 고려사나 조선사를 주로 연구한 이들이다.
결국 일제강점기 이후 현재까지, 한국사 교과서의 3분의 2 이상이 전문성 없는 검정위원과 연구위원에 의해 검정됐다는 것이 교육계의 지적이다.
한국근현대사학회장인 동국대 한철호 교수는 "한 나라의 역사교육을 좌우하는 교과서 검정이 해당 분야 전문가도 참여하지 않은 채 이뤄진 것은 어처구니 없는 일"이라며 "이대로라면 한국어 교과서에 대한 신뢰가 손상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이러한 지적에도 검정 결과에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평가원 관계자는 "고교 수준의 근현대사에 대해서는 전공영역이 아닌 교수도 충분한 전문성을 갖추고 있다고 본다. 또 검정 이후 국사편찬위원회에서 다시 전공자의 감수를 받기 때문에 문제가 있을 수 없다"고 해명했다.
그는 "연구위원으로 참여한 교수 4명 중 3명은 전공자는 아니지만 대학에서 근현대사 교양 강좌를 맡고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교육 전문가들은 이러한 해명이 어불성설이라며 반격하고 있다.
한 역사교육 전문가는 "전공자가 글을 써도 같은 전공자가 아니면 찾아내기 힘든 오류가 생기는데 주전공이 아닌 사람이 이를 찾을 수 있겠느냐"며 "국사편찬위에 의존할 거라면 애초 검정 자체가 의미가 없었던 셈"이라고 꼬집었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가 교육과학기술부와 평가원의 지나친 '코드 맞추기'에 따른 결과라는 주장도 제기한다.
역사교육연구소 소장인 신현고 김육훈 교사는 "한국 근현대사 전공자는 상대적으로 진보적 성향이 많아 친정부적 인사로 검정위를 구성하려다 보니 섭외가 어려웠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지난달 30일 한국사 교과서 6종의 검정을 완료했는데 이 교과서들은 내년 3월부터 전국 고교에 보급돼 사용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