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4년차 연구부장으로서 올 한해 본교의 교원능력개발평가(이하 평가)를 실무적인 차원에서 지원하고 진행하였다. ‘교원 정년’에 관한 사단 이래 가장 ‘뜨거운’ 교육 현장의 ‘감자’였던 이 평가를 마무리한 시점에서 본 평가가 지니고 있는 한계와 전망을 짚어 보기로 한다.
먼저 평가가 의미 있게 정착하려면, 교육 당국자들은 현장에서 드러난 다음의 문제점들을 직시하고 귀담아들어야 한다. 우선은 평가 진행의 실무 담당자가 안아야 할 정신적 물리적 부담이 너무도 크다는 점이다. 실행 과도기의 '불가피한 희생(컬래트럴 데미지)'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사안의 심각성이 너무도 컸다.
올 1학기 내내 본 필자는 학생들의 수준별, 선택별 과목을 일일이 수작업으로 학생과 교사 사이를 매칭하며 숱한 전산상의 오류와 싸워야 했다. ‘패치 이부장’은 교육청으로부터 패치 파일을 받고서야 문제가 해결된 경우가 많았기에 붙여진 별명이었다. 담당 부장이 담당 교사 1인과 더불어 보조 인원이나 외부 용역의 도움 없이 이 작업을 수행했다는 그 사실 자체가 기적적으로 느껴진다.
또한 학부모 평가와 동료 평가의 실효성 문제를 인지해야 한다. 학부모에게 학생의 수업에 들어오는 개별 선생님에 대한 판단을 부여했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다. 그러기에 학부모의 판단이란 결국 '제2의 학생 평가'라는 빌미를 주게 된다. 동료 평가의 경우, 수업 공개의 장(場)을 마련해 줄 수는 있어도, 이를 의미 있는 평가 수치로 이끄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결국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는 온정적인 평가의 틀을 벗어나려면 수많은 장치를 마련해야 하는데, 많은 교사들이 격무에 시달리고 있는 학교 현장의 현실에서 이러한 장치 마련은 결코 녹록치 않다.
더불어 학생 평가에 대한 보완을 해야 한다. 평가 문항이 지나치게 많고, 중복적이다. 객관식 문항이라면 간략히 핵심만 물어야 했다. 서술형으로 구한 의견은 나름대로는 의미 있는 평가이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익명성을 통해 학생들의 감정적 언사나 편파적인 공격 성향이 노출되지 않도록 사전 홍보를 강화해야 한다. 평가지에 남긴 학생들의 공격적 감정적 언사로 인해 마음의 상처를 입은 교사가 있음을 볼 때. 세심한 보완이 필요하다는 점을 새삼 느낀다.
끝으로, 교육 관계자들에게 학교 현장을 반드시 돌아보기를 권고한다.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교육은 그 실제에 있어 평가의 수치로 결코 계량화할 수 없는 수많은 영역이 있다는 점이 먼저 전제되어야 한다. 이에 본 필자는 평가를 위해 현실적으로 타당한 몇 가지 제언을 하고자 한다.
첫째, 교원능력개발평가의 범주에서는 학생 평가만을 문제 삼을 것을 당부하고 싶다. 객관성 담보라는 측면에서 보아 학부모나 교사 상호 간의 판단을 구하는 것보다는 훨씬 실용적이며 신뢰성이 큰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이 경우도 객관식 문항 활용보다는 학생들이 개별 교사에 대한 담임 활동, 학습 지도, 생활 지도에 대한 느낌, 요망 사항이라는 측면에서 열린 서술형 방식을 활용하는 것이 보다 타당하다. 단, 어떤 경우에라도 평가 참여도를 크게 높여 신뢰성을 제고하는 것이 가장 필요하다.
둘째, 학부모 평가는 학운위나 학부모 총회의 성격을 강화, 보완해야 한다. 동료 교사 간 평가는 기존의 연구 수업, 동료 장학의 기능이나 지구별로 이루어지는 교과 장학, 공개 수업 등에 평가 요소를 강화, 대체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다.
셋째, 평가 결과에 대한 처리가 상벌 중심의 인센티브로 귀결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평가 결과에 대한 강제적 추수 조치는 의도된 목적을 얻기 어렵다. 평가 결과를 성찰의 기회로 삼고 부족한 점에 대해 연수 기회를 부여하는 자발적 참여를 유도해야 한다. 대다수 교사들은 본 평가의 궁극적 진행 방향에 대해 의혹의 시선을 지니고 있다. 그 의심의 근간은 교육 정책의 성급성과 강공 드라이브에 대한 우려이다.
학교 현장은 다양한 모습을 지닌다. 선생님들도 마찬 가지이다. 수업을 잘 하시는 분, 행정에 밝으신 분, 담임으로 통솔력이 있으신 분, 생활 지도나 입시 지도에 탁월하신 분, 학생 문제 상담에 능통한 분 등. - 분명 학습이나 생활 지도라는 측면으로 수치화하기 어려운 혼합태(混合態)로서의 성격을 보이고 있다. 공자는 “나는 배움에 싫증내지 않으며, 가르치기에 지치지 않는다”라고 했다. 이 말은 교사의 직업적 자부심과 ‘교학상장’이라는 교육 현장의 역동성을 드러내는 요절이다. 그러기에 교육 현장에 ‘교육 수요자’라는 말을 내세우며 평가의 메스를 함부로 들이밀어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 필자의 여러 언급을 직업적 이기심과 요설로 매도한다면 할 말이 없다. 그저 침묵하는 수밖에. "진정이 알려지기가 힘들다면, 차라리 침묵해라" - 장자 제물론에서의 언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