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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쓰는 교사론> 달라지는 교실-교사의 역할

“1993년 2학년7반 교실. 공자, 이생진, 조스캥 데프레가 함께했던 ‘즐거운 교실’은 이제 대한민국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다.”


2011년. 올 들어 연일 동장군이 맹위를 떨치고 있다. 이 엄혹한 겨울 한파를 뚫고 우리 학생들은 아침 8시부터 삼삼오오 교실로 찾아온다. 겨울방학 기간의 방과후학교 수업을 듣기 위해서이다. 필자도 이런 저런 방과후학교 수업으로 인해 방학 중 매일 출근하고 있다. 오가는 복도에서 그들은 해맑은 미소로 반갑게 내게 인사를 건넨다. 교사의 존재 이유를 그들이 깨닫게 해주는 것 같아 마음이 훈훈해진다. 반면 추위를 녹이는 이들의 향학 열기에 일견 대견하면서도, 갈수록 이들과의 교류가 단순한 수업 관계만으로 이루어지는 것 같아 마음 한편이 심히 허전해진다.

근자 들어 학교와 학생 그리고 교사 간의 삼자적 관계가 요동치고 있다. 특히 교사는 전통적 인성교육의 멘토에서 단순 기능인의 모습으로 그 역할이 아주 급격히 변모하고 있다. 특히 2000년대 후반 집중적으로 이루어진 교육 현장의 전산화는 교사들의 순진한 기대와는 달리 오히려 교사 역할의 끝없는 확대를 불러와 감당키 어려운 폭발적인 업무의 증가를 초래했다.

담임교사의 경우를 보자. 그들은 출석부와 같은 아날로그적 수기 업무 처리와 함께 에듀파인, 행정정보시스템, 교무업무시스템, 전자문서시스템 등 이름조차 다 열거하기 어려운 디지털화된 업무시스템을 다루어야만 한다. 주당 수업 시수는 변화가 없는 가운데, 학기 중 이들은 거의 전쟁을 치루기 마련이다. 그러니 오늘날의 담임들은 과도한 업무량에 밀려, 학생들의 수업이 소홀해지거나, 인성 지도를 포기하는 사태에까지 이르렀다. 수업과 인성지도가 뒤로 밀리는 본말이 전도된 상황이 발생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 지점에서 본 필자는 문득 지난 시절의 잊히지 않는 기억이 떠오른다. 1993년, 2학년 7반 교실이다. 그곳은 담임교사와 학생들이 만들어 낸 ‘즐거운 교실’의 현장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필자는 학생들을 대하면서 항시 “학이불사즉망(學而不思則罔) 사이불학즉태(思而不學則殆)”라는 공자의 말을 평생의 금언으로 가슴 깊게 되새긴다. “학문만 하고 사색하지 않으면 멍청해지고, 사색만 하고 학문하지 않으면 위태로워진다.”는 의미이다. 한마디로 학문과 사색의 조화, 곧 지식과 인성의 조화이다. 필자는 그들에게 단순한 지식을 넘어서서 문화적 소양을 길러 주고자 노력했다.

아침 교실 조회시간에 공자의 말씀 한 마디와 이를 번역한 아서 웨일리의 영역을 들려주었다. 한때 학문적 필요에서 암송했던 논어의 짧은 구절을 골라 교실 왼쪽 칠판 귀퉁이에 적어 주었다. 그리고 ‘오늘의 음악’이라 하여 조스캥 데프레, 캉프라, 쟝 질 등 르네상스 시기의 종교 음악과 세속 음악을 들려주었다. 정규 중간․기말시험이 끝난 이후에는 클래식 음악과 대중음악을 갈래별로 골라 들었으며, 이생진의 시 <그리운 바다 성산포>를 DJ 이성일의 읊조리는 멋진 목소리로 들었다. 그리고 브로드웨이 뮤지컬과 안무가 지릴 킬리얀의 발레를 영상물로 같이 보았다. 학생들과 함께 할리우드 영화 <클리프 행어>에서 이탈리아 영화 <메디테라니오>까지를 보러 다니기도 했다.

그들에게 준 문화적 세례는 인상적 결말을 맺었다. 한 학생은 르네상스 시기의 음악을 다시 듣고 싶어 작곡을 소망했노라 했다. 결국 그 학생은 서울대 작곡과를 들어갔다. 한 학생은 서강대를 거쳐서 예술종합학교를 졸업한 이후 무용평론가가 되었다. 그들은 절대적으로 담임교사의 영향을 입었다고 서슴없이 말했다. 교사의 보람을 느끼던 순간이었다.

2학년 7반의 학생들 - ‘레코드 음악’ 잡지에 실린 음악 관련 크로스워드 퍼즐을 잘도 맞추던 희나, 반장으로서 부드러우면서도 리더십이 있었던 윤진, 캉프라의 모테트 <살베 레지나>를 듣던 순간에 울던 방송반 지원, 아버지가 교사로 참으로 착한 심성을 지녔던 승희, 노력파이면서 유머가 있었던 여나, 현재는 호주로 이민 가 있는 풍부한 감성의 선령, ‘낮은 목소리’라는 가훈을 지녔던, 미국 시애틀에 유학 가 있는 서영 등등 - 일부는 여전히 연락이 되고 일부는 소식이 끊겼다. 그곳은 교사와 학생들이 만든, ‘즐거운 교실’의 현장이었다.

이러한 교실 현장은 대한민국 그 어느 구석에서도 찾을 수 없다. 이제 교사는 학생의 멘토라기보다는 교원평가의 대상이 되어 버렸다. 지난 시절의 교실을 생각해 보노라면, 현재와 대비되는 현장의 모습이 오버랩 된다. 가슴이 구멍이라도 뚫린 듯 먹먹해진다. 정녕 교실에서의 지난 즐거운 기억들은 이제 아스라한 추억으로만 존재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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