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방학 기간 내내 학교는 ‘공사 중’이었다. 이제 2011학년도 새 학기를 맞아, 화장실 개보수 등 여러 작업도 마무리되었다. 활기찬 학생들의 발걸음과 까르르하는 웃음소리가 교정 곳곳에서 들린다. 문제는 학생을 맞는 내 마음이다. 학기 맞이의 새로움 대신 마음의 부담과 그늘만이 나날이 늘어간다. 외재적 내재적 요인에 의한 학교 현장의 물리적 변화에 대해 아직도 난 여전히 부적응의 혼수상태인가 보다.
2010학년도 지난 학기의 마무리는 참으로 유별났다. 연일 동장군이 맹위를 떨치는 가운데, 벽두 이래 나라 안은 구제역과 AI와 같은 치명적인 가축 전염병의 창궐로 인해 민심이 뒤숭숭하다. 나라 밖도 혼돈의 극을 달렸다. 폭설, 홍수, 기근, 화산, 지진 등 기상 이변과 중동 아프리카의 민주화 운동에 대한 대학살극으로 인해 혹독한 고통을 겪어야 했다.
일반적으로 볼 때 ‘겨울은 추워야 제격’이었다. 그게 맞다. 이태준은 ‘매화’에서 말했다. “차갑더라도 풀 먹인 옷은 다듬잇살이 올라야 하고, 덧문까지 봉하더라도 차야만 겨울 맛이”라고. 하지만 지난 2010학년도 교육 현장의 경우, 우리의 옷에는 다듬잇살이 지나치게 올랐고, 찾아온 겨울은 지나치게 찼다. 참으로 징하디 징하던 시절.
2011학년도 새 학기, 난 막중한 부담감에 짓눌리고 있다. 오늘의 이 순간 밀려오는 내 마음의 부담과 그늘은 교육 현장이 겪는 소통의 부재와 결코 무관치 않다. 교육 경력 24년차, 50대 중반을 바라보는 나이. 처음으로 자발적인 비담임 신청을 했다. 주변의 시선이 주는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어볼까 해서, 교내 방송반 지도교사의 업무까지도 떠맡게 되었다. 문제는 과에서 내게 부과되는 주당 19시간의 수업 시수 - 방송반 업무까지 고려하자면, 거의 죽음의 시수이다. 80년대 후반의 부임 초기, 주당 20시간의 수업 시수였다. 그 이후 정말 변한 게 없다. 참으로 징하디 징한 세월이다.
후배 교사들은 교과의 최고령자인 내게 일말의 미안함이나 주저함의 심리적 태도조차도 보이지 않는다. 비담임이니까 그 시간을 마땅히 감내해야 한단다. 하기야, 오면 오는지 가면 가는지 교무실의 가벼운 목례조차도 실종된 세월이다. 선배 교사의 경험과 노련함을 예우해 주던 후배 교사들의 겸양의 미덕은 이미 삼삼오오 모여 정글을 향해 제 살 길을 찾아 떠난 지 오래되었다.
새 학기를 위해 논술 수업용 자료를 챙기던 중, 힐러리 스웽크 주연의 영화 ‘프리덤 라이터스’를 다시 한 번 꼼꼼하게 살펴보았다. 이런 류의 영화들은 관습적으로 ‘현실적 좌절과 영혼의 상처를 지닌 학생, 학생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마주하는 교사’를 대칭 시킨다. 교사 그루웰의 모습은 헌신과 열정이라는 교사 행위의 당위성을 담고 있다. 그러나 내가 마음이 꼬여서인가. 그루웰 선생의 교육 행위의 한계가 명확하게 잡힌다.
우선 학교 상황이 너무도 단선적이다. ‘열정적인 한 명의 교사와 타성에 젖은 다른 교사들’ - 이런 식이다. 과연 학교가 그러한가? 더불어 교사가 행하는 소통의 과정이 일방적이다. 동료 교사들을 대하는 그루웰 선생의 태도에서는 타인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오타쿠적 외톨이의 잔영이 짙게 깔린다. 또 학생들과의 소통에 매달리지만 정작 본인은 동료나 가족들과의 소통 부재에 시달리고 있다. - 문제는 교육의 우선순위이다. 학생들에게 자비를 털어 책을 사주는 그루웰식 헌신과 희생이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교육 시스템이다. 좋은 시스템이 갖춰져야 좋은 교사가 나온다.
우리의 ‘시스템’ 교육청에서는 학교 현장과의 소통 부재를 자인하는 황당한 공문을 2011학년도 3월의 개학 직전의 시점까지 주저 없이 시달했다. ‘학교별 단체 수학여행 불허’, ‘수행평가 반영 비율 변동’ 등등 - 이게 진정 봄 학기 개학 일주일을 앞두고, 교육청에서 일선 학교에 내린 시행 공문인지 의심스럽기 그지없다. 교사라면 상식적으로 안다. 학교 현장의 수학여행은 활동이 있기 최소 1년 전, 수행평가 계획은 학기 개학하기 수개월 전에 계획이 수립된다는 것을.
상처 입은 영혼은 글이나 말로써 풀어버리면 치유된다. 우울증 환자라면 의사나 주변인에게 제 마음속 이야기를 쏟아내야 한다. 말을 할 데가 없으면 혼자서 글로써 제 생각을 밖으로 끄집어내고 훑어보아도 치유가 된다. 이른바 라이팅 테라피(Writing therapy)’라는 것이다. 하지만 교육에 대한 말을 하면 할수록, 글로 쓰면 쓸수록 치유는커녕 심사는 더욱 꼬이고 답답해진다.
지난 학기의 끝에 적잖은 선생님들이 명예퇴직 신청을 냈다. 받아들여진 경우는 30년 경력을 넘긴 한 분이 유일했다. 무상 급식 전면 시행으로 인한 교육청의 예산 부족이 원인이란다. 멀게는 정권에 따라, 가까이는 교육감에 따라 학교 현장은 정신없이 휘둘리고 있다. 백년지대계는커녕 당장 한 달 앞도 기약하기 어려운 교육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