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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쓰는 교사론> 선생은 죽어 제자를 남긴다

“예전같이 끈끈한 사제지간을 기대하기 어려운 시대. 선생님의 일거수일투족을 존경과 사랑으로 가슴에 새기던 아이들은 많지 않다. 선생 역시 세속화되고 현실화 되어 자신의 이익에만 민첩하다. 내가 맡은 아이들이 나로 말미암아 감동적인 삶을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교무실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선생님, 저 선구입니다. 이쪽 고등학교로 오셨다는 소식 듣고 연락드렸습니다.”
“아……, 선구! 그러니까 20년 전에 졸업한 선구!”

나의 목소리가 자못 떨리며 톤이 올라간다. 선구 역시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음색이 역력하다. 그는 지금 잠깐 찾아뵙겠다고 한다.

긴장된 마음으로 나는 교문 쪽으로 향한다. 잠시 후, 작은 트럭이 도착하는가 싶더니 운전석에서 그가 내린다. 좀 떨어진 거리이지만 한눈에 봐도 분명 예전의 얼굴, 선구가 확실하다. 녀석은 성큼 내 쪽으로 오더니 그냥 발치에서 넙죽 큰 절을 한다. 말릴 새도 없이 땅바닥에 엎드린 채 “선생님, 건강하시죠?” 안부를 묻는다. 나는 그의 옷이 더럽혀질까봐 얼른 일으켜 세운다. 그의 선하게 생긴 눈이 이미 물기에 젖어 있다.

그러니까 기억이 새롭다. 20년 전 아이들이 졸업하는 날, 반 아이들 이름을 마지막으로 호명하며 하나씩 안아주고 헤어질 때, 유독 마지막까지 교실에 남아 눈물을 흘리던 아이. 눈물의 의미를 나에게 일깨워주던, 그가 바로 선구다. 통속된 말로 남자가 흘리지 말아야 할 것이 눈물이라고 하지만, 더러는 흘려도 좋은 것이 눈물임을 그때 알았다.

선구는 그렇게 졸업을 했다. 그리고 다시 선구와 만난 것은 평택의 박애병원 앞 노상에서이다. 그것도 맞은 편 도로로 걸어가는 나를 “선생님!”하고 부르더니 차량들이 오가는 틈새로 서슴지 않고 달려와 또 그렁그렁한 눈으로 어쩔 줄 몰라 한다. 대체 무엇이 선구로 하여금 가슴 울먹이게 하는 것일까.

나이가 어느덧 마흔이 넘은 선구. 그와 내가 어느 조촐한 참치 횟집에 들어가서 식사를 했다. 식당에서도 선구는 바로 앉지를 못하고 나에게 큰절을 한 뒤 무릎을 꿇는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 “내가 너에게 특별히 잘해 준 것도 없는데, 너는 참 나를 끔찍이 기억하는구나” 했더니 “아닙니다, 선생님. 선생님께서 학창시절에 해주신 말씀은 너무 좋은 말씀이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잘못했을 때 종아리 때려준 것도 너무 감사했습니다.”

나는 “너처럼 착한 학생도 나한테 맞은 적이 있었니?”하며 웃었다. 그리고 그에게 술 한 잔을 따라 주었다. 그는 고개를 돌려 술을 마신 다음, “가끔씩 힘들 때에 선생님의 말씀과 매가 그리웠습니다”라고 한다. 생각해보니 그 당시 나는 아이들에게 매 맞는 것이 두려워 양심을 속이지 말라고 가르쳤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나태해지면 언제든지 와서 종아리를 맞으라고 했던 생각이 난다. 선구도 나에게 와서 매를 청했던 아이 중의 하나이다.

이제 신학기가 시작이 되고 새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교정을 쭈뼛거리며 몰려다니고 있다. 선생들도 새로 전입해 온 교사, 기존의 교사들이 업무를 준비하느라 북새통이다. 이렇게 모두들 바쁜 마음으로 1년을 준비하는 3월인데, 우리는 과연 아이들의 가슴을 경작할 준비가 되어있는가 반문한다.

하지만 예전같이 끈끈한 사제지간을 기대하기 어려운 시대. 선생님의 일거수일투족을 존경과 사랑으로 가슴에 새기던 아이들은 많지 않다. 선생 역시 세속화되고 현실화 되어 자신의 이익에만 민첩하다. 적어도 신학기 수업을 시작하기에 앞서 우리 모두 잠시 묵상해보면 어떨까. 내가 맡은 아이들이 나로 말미암아 감동적인 삶을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문득, 휴대폰 진동이 울린다. “선생님, 저 선구입니다. 오늘 시간 있으세요?”, “아, 선구!” 이 녀석이 또 전화를 하는구나.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선생은 죽어 제자를 남기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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