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원이 교직을 떠나는 데는 자의든 타의든 다양한 원인이 있다. 그러나 일시에 많은 교원이 퇴직하는 데는 항상 부실한 정책적 문제가 대두된다. 1990년대 말 IMF 직후, 고령교원 1명이 퇴직하면 3명의 신규교원을 채용할 수 있다는 말과 함께 교원정년을 65세에서 62세로 단축했고, 2000년대 말에는 3~4년 동안 공무원연금개혁 논의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연금불안으로 인해 많은 교원이 교단을 떠났다.
1960년대에는 열악한 보수와 근무조건으로 인해 일시에 많은 교원이 퇴직하는 일이 벌어졌다. 1968년 2월 19일자 새한신문(한국교육신문 전신)에는 대한교련(한국교총 전신)이 각 시․도교육회(시․도교총의 전신)를 통해 조사한 교원퇴직현황을 보도했다.
“초·중등교원의 퇴직률이 1963년 2.43%, 1966년 4.47%, 1967년 7%로 늘어났다. 5천1백40명의 퇴직교원 가운데 정년퇴직 교원은 1백명 내외이고, 나머지 5천여명은 중도사퇴교원이다.”
중도사퇴 사유로는 ▲연금을 일시금으로 받을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순환근무제 운영의 불합리 ▲벽지교사에 대한 시책 불충실 등 여러 가지를 제시하면서도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타 직에 비해 보수가 매우 적다는데 있다고 했다.
2월 19일자 사설에는 “각급학교 교사의 평균봉급이 국민학교의 경우 1만2천80원, 중학교의 경우 1만5천4백10원, 고등학교의 경우 1만6천2백24원에 지나지 않는데 비해 생계비는 공히 평균 2만4천2백40원을 필요로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봉급이 생계비 대비 50~60% 수준에 불과함을 알 수 있다.
한편 1968년 4월 11일자 신문에는 동양방송 ‘라디오재판실’ 프로그램의 출연자들 발언을 요약하여 ‘방송재판에 비친 사퇴교사의 문제’라는 기사가 보도됐다.
검사로 출연한 김재만 성균관대 교수는 “사퇴의 경우에는 연금이라도 타서 장사를 해야겠다. 가정교사를 혹은 과외공부 선생을 해서 살아가야겠다는 것이 모두가 딱한 실정이다. 그래도 사범대학을 들어갈 때는 우리가 교직을 천직으로 지키겠다고 들어간 것인데, 인사이동에서 좀 좋지 않은 곳으로 전출되었다고 해서 교직이탈이 생기면 반성할 문제다”라면서 교직이탈을 고발했다.
반면 변호사로 출연한 김두희 서울대 교수는 “월급 기천원에 80명, 90명을 수용하는 교실에서 한주일의 담당시간은 수십시간으로 과로를 하고 있다. 물론 사범학교를 나올 때는 교육에 종사하려고 했다. 그렇지만 굶어죽고, 가족을 굶겨 죽이는 것을 사명으로 하려고 나오지 않았다. 나와 보니 뜻밖의 그런 사태에 직면함에 따라 부득이 눈물을 머금고 타직으로 전환하게 되는 것이다”라고 변론하면서 기소의 부당성을 역설했다. 검사든 변호사든 양측의 입장은 교원봉급으로는 생계를 유지할 수 없는 현실을 공통적으로 지적하고 있어 당시의 절박한 상황을 짐작케 한다.
봉급이나 근무조건이 열악해서 교직을 사퇴하는 1960년대의 상황은 기득권을 축소하는 2000년대의 정년단축이나 공무원연금개혁과는 분명 차이가 있으나, 교원이 교직을 사퇴함에 따른 교육력 위축에 공통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