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불량 샤프심 논란 우려?"
교육과학기술부가 수학 교육을 암기나 계산 중심에서 논리적·창의적 사고능력을 키우는 방향으로 전환한다는 방침 아래 도입을 검토한 고교 수학시험의 전자계산기 허용방침을 일단 유보했다.
교과부는 19일 확정한 '공교육 강화-사교육 경감 선순환 방안'에서 지난 2월 시안에 포함시켰던 "고교 수학시험에서 전자계산기 사용을 허용한다"는 내용을 제외했다.
교과부는 "이 방안을 폐기했다는 의미는 아니며, 6월부터 전문가그룹을 구성해 본격 검토할 계획"이라며 "이번 확정안에서 제외한 것은 깊이 검토할 부분들이 많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언뜻 간단해 보이는 전자계산기 허용 문제는 자칫 큰 논란을 부를 수 있어 도입을 결정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교과부에 따르면 수학교육 학자들은 초등학교 수준에서는 기초적인 사칙 계산 능력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지만, 중학교부터는 단계적으로 계산기 사용을 허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데 대체로 공감한다.
홍익대 수학교육과 박경미 교수는 "고교 수학시험에서 측정하려는 능력은 단순계산 능력이 아니라 고차원적 수학 사고력이고, 문제를 푸는 과정에서 사칙계산은 비본질적 역할을 하기 때문에 계산기를 사용해도 무방하다"는 입장을 교과부에 전달했다.
박 교수는 "또 계산의 복잡성에 연연하지 않는다면 수학문제에서 실생활의 생생한 수치를 그대로 사용할 수 있고, 문장제로 된 응용문제를 풀다 보면 중간에 약분이 되기 시작하면서 간단한 정수가 답이 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미국에서는 1980년대 후반 계산기 허용방침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다 1990년대 중반부터 수학수업과 대학수학능력시험(SAT)에서 계산기를 쓸 수 있게 하고 있다.
영국과 싱가포르 등도 계산기를 허용한다. 반면 한국, 중국, 일본 등은 계산기를 허용하지 않는다.
다른 나라의 사례나 수학교육 학계의 의견과는 별개로 시험제도의 작은 변화 하나에도 학교 현장이 들썩이는 한국 교육 현실에서 계산기 도입을 망설이는 것에는 좀 더 현실적인 이유가 작용한다.
가깝게는 2010년 11월 치른 2011학년도 수능시험에서 필기구를 이용한 부정행위를 막으려고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수험생에게 한 자루씩 일괄 지급한 샤프를 둘러싸고 샤프심 불량 논란이 있었다.
당시 수험생들은 샤프심이 잘 부러져 불이익을 받았다며 항의를 쏟아냈고 중국산 저가제품을 준 것이 아니냐는 주장도 해 교육당국은 홍역을 치렀다.
계산기의 경우는 샤프심보다 논란거리가 더 많다. 고교 수학시험에서 계산기를 허용한다면 교육당국이 일괄 지급할지, 학생 개인부담으로 갖추도록 할지 결정해야 한다.
또 간단한 사칙연산만 가능한 사양을 허용할지, 보다 정교한 계산까지 가능한 사양을 허용할지, 시험 도중 예기치 않은 계산기 고장 문제엔 어떻게 대처할지, 샤프심보다 훨씬 고가인 계산기 구매와 업체 선정을 둘러싼 잡음은 없을지 등 논란의 여지는 무궁무진하다.
실제로 교과부 관계자는 "계산기 허용 방안을 접하고 수능 불량 샤프심 논란이 곧바로 연상돼 우려가 된다는 의견이 많았던 것은 사실"이라며 "몇몇 학교에서 시험적으로 도입해보긴 했지만 현장 교사들의 의견은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현행 교육과정에 계산기 사용을 허용하는 근거가 모호한 문제도 있다. 현재는 중등교육과정에서 "계산기 등 공학적 도구를 사용할 수 있다"는 정도의 원칙적이고 포괄적인 규정만 있기 때문이다.
교과부 권기석 수학교육정책팀장은 "어느 단원에서 어떤 방식으로 계산기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할 것인가도 많은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